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Dec 12. 2018

그래미 어워드에 남은 '골든 타임'은?

제61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작 발표. 혹시가 역시는 이제 그만.

현지 시각 12월 7일,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작이 발표됐다. 2018년 한 해를 정복한 힙합 스타 드레이크와 카디 비, 포스트 말론은 물론 켄드릭 라마가 제작한 영화 <블랙 팬서>의 사운드트랙, ‘This is america’로 충격을 안긴 차일디시 감비노와 신예 알앤비 아티스트 H.E.R 등 힙합 부문이 강세다.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의 <스타 이즈 본> 대표곡 ‘Shallow’와 컨트리 가수 브랜디 칼라일 역시 주요 부문의 후보들이다.

그래미 어워드는 대중음악 최고 영예의 시상식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그래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악화일로였다. 컨트리 스타 출신 테일러 스위프트, 고전 소울 가수 아델이 주요 부문을 휩쓸던 반면 카니예 웨스트, 켄드릭 라마, 비욘세 등 걸작을 남긴 블랙 아티스트들은 언제나 빈손이었다. 대중 호응은 물론 다수 매체의 호평을 획득한 작품이 후보작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수상 결과는 언제나 특정 아티스트 몰아주기로 결정되며 그 저의를 의심케 만들었다. 


당장 올해 2월 열린 제60회 시상식을 살펴보자. 라틴 팝, 힙합이 주류 시장을 장악한 걸 의식한 듯 여느 때보다 후보지에 유색인종 아티스트들의 비중이 높았던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혹시가 역시’였는데,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본상 4개 부문 중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부문을 싹쓸이한 것이다. 2017년 제59회 시상식에서 아델이 <25>로 같은 부문을 휩쓴 장면의 데자뷰였다.  

베테랑 래퍼 제이지(Jay-Z)는 8개 부문 후보로 최다 노미네이트의 영예를 얻었으나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했다. ‘Despacito’로 글로벌 히트한 루이스 폰시, ‘Humble’로 빌보드 싱글 차트 첫 정상을 밟은 켄드릭 라마, ‘This is america’ 이전 영화 <겟 아웃>의 ‘Redbone’으로 인기를 얻은 차일디시 감비노 역시 고배를 마셨다.

후보 선정과 수상작을 결정하는 미국 레코딩 예술 과학 아카데미(NARAS)는 다양한 장르와 음악 스타일 대신 제59회 시상식에서 ‘Uptown funk’로 이미 상을 가져갔던 브루노 마스에게 모든 영예를 넘겼다. 브루노 마스 역시 유색 인종 아티스트지만 그의 음악은 타 후보지에 비해 가장 안전하고 튀는 구석 없으며 ‘근심을 잊게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매끈한 팝이었다. 결정적으로 ‘랩’이 아니기도 했다. 

‘불통’과 ‘인종차별’의 비판이 쏟아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카니예 웨스트와 드레이크, 저스틴 비버는 그래미 시상식을 보이콧한 대표 아티스트다.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시상식은 나날이 그 권위를 잃어간다. 세계적 기업 닐슨의 통계에 따르면 제60회 그래미 시청률은 전년 대비 21%나 하락했다. 그래미에 대한 기대는 ‘누가 상을 탈까’에서 ‘누가 어떤 무대를 꾸밀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래미의 권위는 건재하다. 처음으로 그래미 어워드에 이름을 올린 젊은 팝스타 숀 멘데스와 마렌 모리스, 두아 리파는 벅찬 소감을 남겼다. 특히 ‘I’m a mess’의 주인공 비비 렉사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의 한 장면처럼 감동에 오열하는 장면을 SNS에 업로드했고, 올해의 신인 후보에 오른 두아 리파 역시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며 감동을 전했다. 그러나 그 위상이 어느 순간부터 ‘전통’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올 한 해 가장 히트했던 여성 래퍼 카디비는 법정을 나서며 자신이 5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고, 개인 SNS 계정에 ‘상을 타든 못 타든, 적어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어 기쁘다’는 덤덤한 소감을 남겼다. 지난해 무관의 제왕 제이지는 아내 비욘세와 함께한 프로젝트 그룹 카터스의 ‘Apeshit’에서 ‘8개 부문 수상 제로, 그래미에게 꺼지라고 전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는 관심도 없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지는 여느 때보다도 급진적이다. 예년과 유사하게 다양한 아스트와 장르를 포함했으며, 그중에서도 대중음악 중심 문법으로 거듭난 힙합 작품의 비중이 높다. 다만 올해와 마찬가지로, 기대감을 높인 다음 <스타 이즈 본>과 브랜디 칼라일에게 트로피를 건네는 모습이 자꾸만 그려지는 건 너무 냉소적인 시선일까.

미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4대 시상식 (에미 어워드, 토니 어워드, 아카데미 어워드) 중 그래미 어워드는 가장 권위적인 모습으로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번 시상식은 다를까. 그래미에 남은 '골든 타임'은 현지 시각 내년 2월 10일 확인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독한 언어의 탑, 숭고한 폭력으로 빛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