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u, next'가 상징하는, 돌아온 뮤직비디오의 전성시대
아리아나 그란데(이하 아리아나)의 ‘thank u, next’는 연말 최고의 히트곡이다. 2013년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이래 'Problem', 'Dangerous woman' 등 히트곡으로 인기를 누린 아리아나지만 아쉽게도 빌보드 1위 곡이 없었는데 이 곡으로 처음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적 통계 기업 닐슨에 따르면 ‘thank u, next’가 지난 한 주동안 기록한 스트리밍 수는 9300만 회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Look what you made me do’의 8450만 회를 넘어 여성 아티스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 애인들과의 관계를 허심탄회하게 고백한 메시지와 은은한 트랩 비트, 중독성 있는 후렴부로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실시간 차트 10위권 내에 자리하며 인기다.
하지만 ‘thank u, next’의 진짜 의미는 유튜브에 있다. 지난 11월 30일 공개된 ‘thank u, next’의 뮤직비디오는 24시간 만에 5540만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방탄소년단이 ‘Idol’로 세운 24시간 내 최다 조회수 (4590만)를 뛰어넘은 것이다. 12월 4일에는 1억 조회수를 돌파하며 싸이의 ‘Gentleman’이 갖고 있던 최단기간 1억 조회 기록도 돌파했다. 스트리밍뿐 아니라 유튜브 조회수로도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2000년대 미국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오마주한 이 뮤직비디오는 유명 토크쇼를 비롯, 수많은 셀러브리티들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패러디를 통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개봉한 지 십 몇여년이 되어가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브링 잇 온>, <금발이 너무해>가 아마존닷컴 인기 판매 순위에 오르고, 과거 발표했던 아리아나 그란데의 뮤직비디오를 재조명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thank u, next’ 말고도 올해는 유독 인상적인 뮤직비디오가 많았다. 비욘세와 제이지 부부의 프로젝트 카터스의 ‘Apeshit’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통째로 빌려 촬영한 예술 작품이었다. 다양한 그래픽 기술과 초현실적 미장센, 1960년대 모타운(Motown)과 2010년대 블랙 커뮤니티를 혼합한 트래비스 스캇의 'Sicko mode' 역시 올해의 뮤직비디오로 손꼽힌다. 4분짜리 영상 한편으로 세계에 충격을 안긴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훈훈한 자선 다큐멘터리로 꾸민 드레이크의 'God's plan'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뮤직비디오의 황금기’가 다시 돌아왔음을 공표한다. 1981년 음악 전문 채널 MTV의 개국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면, 2018년의 뮤직비디오 전성기는 곡을 홍보하는 개념을 넘어 아티스트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특정 담론을 일으키기 위한 효과적 도구로 활용된다. 그리고 그 핵심 플랫폼은 단순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넘어 하나의 ‘제도’로 등극한 유튜브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와 웅장한 배경, 참신한 그래픽 기법이 등장하는 현대 뮤직비디오는 거대 프로덕션의 힘을 빌려 시각적으로도 압도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과거 뮤직비디오 시대가 텔레비전의 수직적 정보 전달을 전제로 했다면, 유비쿼터스 시대의 뮤직비디오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각자의 PC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하고 공유된다.
1980년대 MTV가 젊은 층의 소비 스타일과 기술 취향을 연구했듯, 유튜브 뮤직비디오 공개 역시 체계적인 예고와 대대적 홍보를 수반하며 수많은 ‘움짤(움직이는 사진)’과 캡처 화면로 구성된 밈(Meme)이라는 인터넷 놀이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thank u, next’의 뮤직비디오를 예로 들어 2018년의 뮤직비디오가 어떻게 유행으로 자리매김하는지를 살펴보자. 11월 7일 ‘breathin'’ 공개 후 곧바로 촬영에 들어간 'thank u, next'는 19일 아리아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처음 예고됐다.
동시에 유튜브는 유료 구독 서비스 ‘유튜브 프리미엄’을 통해 ‘데인저러스 우먼 다이어리’라는 투어 다큐멘터리를 공개했고, 뮤직비디오 발표 후에는 곧바로 ‘비하인드 더 씬(Behind the scenes)’의 후기 영상을 업로드하는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은 유튜브의 음악 서비스 ‘유튜브 뮤직’의 책임자와 아리아나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스쿠터 브라운의 ‘SB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됐다.
MTV가 견인한 대중음악의 영상화는 ‘MTV의 총아’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를 통해 완전한 정점에 올랐다. 반면 지금까지 ‘유튜브 시대의 총아’로 꼽을 만한 인물은 없었다. 이유는 유튜브가 처음부터 제도화된 미디어의 기능을 수행한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 디지털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도래하며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 회사는 유튜브 플랫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강력히 활용하는 중이다. 2018년을 수놓은 뮤직비디오 대작들은 스트리밍 시대 속 더욱 강화된 ‘보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
<빌보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정규 앨범 <Sweetner>를 ‘2018 올해의 앨범 리스트’ 1위로 발표한 동시에 그를 ‘2018년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진솔한 여성상과 더불어 소셜 미디어의 적극 활용을 통해 25세 나이로 경쟁자 없는 슈퍼스타의 지위에 오른 아리아나 그란데가 유튜브 시대를 상징하는 팝스타로 기억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