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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17. 2018

OK Computer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대답

영국 밴드 1975의 세번째 정규 앨범을 듣다.


제목대로 간략하게 조사해보자(Brief Inquiry). 프론트맨 매티 힐리와 세 친구들은 1975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 앨범은 숨 가쁘게 달려 나가면서도 로맨틱하며, 느긋한 템포로 그려낸 독특한 템포로 방구석 ‘힙’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림과 동시에 수만 관중을 기립하게 만들 송가를 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제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거친 물결에 표류하는 동세대 ‘디지털 유목민’들의 정서에 집중한다.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재활원 신세를 진 매티의 고통으로부터 출발한 앨범은 ‘록이 아닌, 좋은 팝을 쓴다’는 철칙을 하루에 한 번씩 소리내서 읽은 듯한 결과물이다. 총천연의 재료를 동원해 각 트랙마다 상이한 스타일을 각인하면서도 이들을 인기 밴드로 만든 멜로디는 언제나 고감도를 유지한다. ‘Give yourself a try’의 거친 기타 리프가 살갑게 들리고, ‘Tootimetootimetootime’의 잘게 쪼개진 샘플과 비트가 균질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매끈한 선율과 매티의 부드러운 보컬 덕이다.


하늘하늘한 재즈적 관악기 터치로부터 출발해 가스펠 코러스로 연약한 불안을 묘사하는 ‘Sincerity is scary’가 그 정점이라 생각할 때쯤 ‘It’s not living’의 상쾌한 터치가 아련한 레트로 향수를 가져오고, ‘I always wanna die’의 잔잔히 밀려오는 큰 파도를 목도하며 감탄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를 안정되게 정합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The 1975 - Sincerity Is Scary


곡마다 확실한 주제 의식을 정해두고 이에 맞춰 장르와 표현 방식을 조합하는 방식 역시 흔치 않은 재능이다. SNS ‘좋아요’가 만드는 인간관계 미묘한 균열에 집중한 ‘TOOTIMETOOTIMETOOTIME’은 조밀한 전자음과 신디사이저 샘플로 잔잔한 메인 선율을 긁어대고, 잔잔한 리프 위 빅 비트를 활용한 ‘Love it if we made it’에선 방탕한 삶을 내지르며 ‘현대성이 우릴 망쳤어(Modernity has failed us)’라 절규한다.


보코더의 몽환적 메시지와 에이펙스 트윈 스타일의 IDM 일렉트로닉을 한 곡으로 융합한 ‘How to draw / Petrichor’는 1990년대 BBC 라디오의 음악 채널을 오마주했다. 미국의 허울뿐인 총기 규제를 비판하는 ‘I like america & America likes me’를 최신 유행의 트랩 비트로 꾸미는 능청스러운 재치도 보인다. 저음의 보컬과 미묘한 리듬 섹션, 오케스트라와 거친 기타 리프를 혼합해 천천히 나아가는 ‘Inside your mind’도 상대의 마음 터널을 천천히 탐구해가는 감정을 아로새긴다.


이쯤 되면 이 앨범의 시대성을 눈치챘을 것이다. 밴드는 이 모든 사회 균열과 삭막한 감정의 기원을 타이틀 속 ‘온라인 관계’로 전제한 후, 그 디지털 시대에서 방황하는 본인과 20대의 여린 감정을 그려나간다. 굳이 눈치채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과 2010년 디지털 반항아들의 모습을 교차 제시하는 ‘Give yourself a try’의 뮤직비디오, 음성 비서 시리(Siri)의 목소리로 소셜 미디어와 로봇 세대의 공허한 동화 한 편을 들려주는 ‘The man who married a robot / love theme’만으로도 앨범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The 1975 - It’s not living (If it’s not with you)


장르 다양성, 안정된 완성도, 한 해를 대표하는 메시지까지. 간략한 조사대로라면 <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 >는 여러 매체의 찬사처럼 명반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그런데 상세 조사로 들어가면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별 반개를 덜어내야 한다. 앞선 논의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혁신의 부재와 레트로의 잔향 탓이다.


이 앨범의 전체 아이디어와 사운드스케이프는 새롭다고 평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밴드는 인터넷과 미래 세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나 사실 그들의 작법은 영국 선배 밴드들의 장점을 다양하게 수집한 레트로다. ‘Give yourself a try’의 까칠함은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의 포스트 펑크를 부정할 수 없고 ‘Tootimetootimetootime’은 펫 샵 보이즈의 팝이다. ‘Love if we made it’의 빅 비트는 티어스 포 피어스나 디페시 모드의 그것을 연상케 하며 ‘Sincerity is scary’의 터치는 애시드 재즈의 흥취를 물씬 풍긴다. 앞서 언급했던 에이펙스 트윈의 일렉트로닉과 1990년대 매드체스터의 영향 역시 지대하다.



종래의 거대한 감동 트랙 ‘I always wanna die’ 또한 오아시스의 대곡 ‘Champagne supernova’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곡이다. 뉴웨이브 터치의 ‘It’s not living’은 토킹 헤즈의 라이브 무대를 패러디하며 과거로부터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앨범 테마도 새롭지 않다. 전자 기기의 공포와 새 시대를 맞이하는 두려움은 ‘브릿팝을 살해한’ 라디오헤드 < OK Computer >의 복제품이다. 시리의 차가운 음성 역시 ‘Fitter happier’의 전례가 있다.  


그렇기에 <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 >는 미래를 살아가는 젊은 밴드가 겪어보지 못했던 좋은 시절에 바치는 헌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탁월한 장르 배합과 멜로디 센스를 덮을 정도의 치명적 단점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과거를 활용하고 큐레이팅 하는 1975의 능력은 동세대 레트로 마니아들 중에서도 으뜸이다. 잘 만든 앨범이고 밴드 최고의 작품이다. 다만 걸작이라 할 순 없고, 수작이라 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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