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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28. 2018

장기하와 얼굴들, 개운치 못한 해체

더 큰 담론 대신 정말 '갈 길만 갔다.'


죽을동 살동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며(‘아무것도 없잖어’) 한탄하던 20대 장기하는 10년이 지나 그냥 니 갈 길 가라는(‘그건 니 생각이고’) 30대 중반이 됐다. 팀 단위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 자평한 <mono>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종언을 고한 그는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하다. 스테레오 대신 모노로 전 곡을 믹싱 했고 쓰고 싶었던 악기를 마음껏 사용했으며 윤종빈 영화감독이 선사한 매끈한 뮤직비디오도 얻었다. ‘빠지기는 빠지더라’ 탈취제 광고는 덤이다.  

사실 장기하의 패배 담론은  <별 일 없이 산다>가 대성공하자마자 막을 내렸다. 토킹 헤즈의 댄스, 산울림의 메시지를 그대로 가져온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청승이 88만 원 세대의 적극적 온라인 호응에 힘입어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거창한 칭호를 수여받은 것은 분명 기이한 현상이었다.


전 세대만큼 정교하지 않고 전 세대만큼 재치 있지 않던 가창이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장기하가 패배를 의도했고 패배한 세대의 담론을 노래한 덕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다르게 <별 일 없이 산다>는 1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때문에 그는 차기작 <장기하와 얼굴들>의 1번 트랙에서 ‘이렇게나 멋지게 해낼 줄은 몰랐었어 / 더 이상 예전에 니가 알던 내가 아니야’(‘뭘 그렇게 놀래’)라며 조속히 기존 담론을 폐기했다. 이후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관심은 내레이션을 줄이고 일상 속 소소한 재미를 찾아다니며 사운드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토킹 헤즈와 텔레비전은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로 대체됐고, 싸구려 커피의 허탈함은 텔레비전과 전화번호부, 외투와 이모티콘의 소소한 외로움이 채웠다. 오케이 고(OK Go)의 뮤직비디오를 활용하며 ’참신’의 형용사도 잃지 않았다. '엘리트 밴드' 다운 행보였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를 거쳐 <mono>까지 이어지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핵심 테마다. 그러나 이미 성공한 인디 록스타의 커리어는 종종 애매한 딜레마처럼 느껴졌다. 록의 역사를 모조리 재현해 보겠다는 사운드는 새로울 데 없는 재현에 그쳤고, 독특한 메시지 역시 일상 포착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웠다.


전자는 아무리 도전해본들 레트로라는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면 후자의 경우는 거대한 데뷔 작품의 담론을 넘을 수 없었다. ‘싸구려 커피’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의 최고 히트곡은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 리메이크다. 그것도 영화 <범죄와의 전쟁>으로 알려졌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승리한 밴드다. 그리고 성공한 밴드가 해를 거듭할수록 로큰롤의 뿌리를 찾아 스튜디오 기술에 집착하는 것은 대중음악 역사 속 숱하게 반복되어온 장면이다. 더 이상 밴드에게 새로움이나 독창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워져갔다.


그럼에도 장기하와 얼굴들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건 장기하와 하세가와 요헤이, 그리고 밴드 멤버들의 개성 덕이었다. 독특한 가창에 가려졌지만 장기하는 꽤 좋은 멜로디를 써내는 작곡가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곡들은 미니멀한 구성 속에도 각 구성원의 개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요약하자면 진부함으로 향하는 흐름 속 번득이는 개개인의 능력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장기하는 1집의 성공 이후 실패의 이미지를 해체함과 동시에 1인 밴드 체제를 유기적인 팀플레이로 재구축했다. 이 덕에 밴드의 음악은 데뷔작처럼 널리 입에 오르진 못했어도 ‘웰메이드’라는 호칭은 어렵지 않게 확보해왔다.


그 결정적인 작품이 <mono>다. 앨범에는 그간 장기하와 얼굴들이 보여준 모든 스타일이 있다. 오묘한 네오 사이키델릭의 향취부터 미니멀한 팝 록, 댄스 록과 재치 있는 노랫말, 서정적인 멜로디가 고루 갖춰져 있다. 밴드가 이 앨범을 본인들의 최고작이라 자부한 이유가 이해 간다.

다만 이 마지막 앨범은 훌륭한 마침표이지 좋은 앨범이라 말하긴 어렵다. 전곡을 모노로 녹음하고 앨범 타이틀에까지 ‘모노’를 강조했지만 그것이 스테레오와 비교하여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볼 순 없다. 오히려 그 ‘모노’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거에 대한 찬사로 들린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뒤를 돌아보며 그들이 참고하는 과거 로큰롤의 영웅들을 흠모하는 작법이다.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사운드에 대한 고민은 지난해 언니네 이발관의 <홀로 있는 사람들>과 여러 모로 닮았다. 인디 록의 전설적인 밴드가 그들의 마지막 앨범을 일말의 새로움과 가능성 대신 그들의 커리어 속 어느 지점으로 설정한 것은 곡의 세련된 만듦새와 소리의 즐거움을 깎아내는 단점이었다.


‘그건 니 생각이고’가 ‘환상 속의 그대’를 재치 있게 한 구절 가져왔다고 해서 장기하의 능력을 찬미하는 것은 과잉이다. ‘깊은 밤 전화번호부’와 ‘ㅋ’의 서사를 반복하는 ‘나와의 채팅’도 재활용의 요소일 뿐 새로운 시도라 평가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홀로 있는 사람들>과 <mono>는 모두 ‘홀로’의 정서를 짙게 풍긴다. 숱하게 듣는 고나리질을 ‘그건 니 생각이고’라 무시하고, 내가 내키지 않으면 거절하며 나와의 채팅을 보며 언제나 혼자라 노래한다. ‘아무도 필요 없다’와 ‘나 혼자’, ‘별 거 아니라고’도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굳이 최후의 작품,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보다 용기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mono>의 장얼은 ‘뭘 그렇게 놀래’만큼 도발적이지도 않고 ‘내 사람’처럼 무언가를 열망하지도 않는다. 그냥 갈 길 가고, 할 일 하고, 사람은 어차피 혼자이므로 알아서 잘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청년실업’ 장기하와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의 결정적 차이다. 데뷔작의 성공 이후 그는 급격히 노쇠했다.

‘밤은 깊어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며 보이지 않는 내일을 살던 그는 곧바로 그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약간의 도발 이후 너무도 빠르게 안정된 실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부터 장기하가 그의 곡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며 해석의 폭을 좁힌 것도 이를 반증한다. ‘싸구려 커피’에는 답이 없었지만 ‘내 사람’에는 명시된 예시 풀이가 있다. 그 형식이 성실하게도 마지막 앨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그렇고 그런’ 밴드였다면 이런 담론을 제시할 필요조차 없었을 테다. 장기하는 짧게나마 한 세대를 대표한 인물이었고 그의 메시지는 88만 원 세대를 바라보며 미래를 두려워하던 유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장얼이 성공하면서 인디 씬에 모처럼의 생기가 돌았고 에너지 넘치는 신인 밴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은 씬을 주도하지 않았고 예외적인 존재로 머무르는데 그쳤다. 장기하의 성공이 인디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리뷰는 불행하게도 정확한 예언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앞둔 장기하는 이 이상의 좋은 앨범을 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활동을 중지하게 됐다. 본인에게 쓴 가사라는 '그건 니 생각이고'처럼, 그냥 갈 길만 우직하게 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초심’에서 ‘나는 옛날이랑은 다른 사람 / 어떻게 맨날 똑같은 생각 / 똑같은 말투 똑같은 표정으로 /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가 있겠어’라 그들을 변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초심 따위 개나 줘버려’라고까지 단언할 필요 또한 없었다.


분명 나 같은 누군가는 정해져 있는 기상시간을 두려워하며 뜬눈으로 싸구려 커피나 마시던 청년실업 시기의 장기하를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 같이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 노래하던 수염 난 청년은 결국 말쑥하게 각자도생을 노래하는 것으로 커리어 1막을 마무리했다. 개운치 못한 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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