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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27. 2018

마미손에서 저항의 텍스트를 읽다

2018년을 '계획대로' 움직인 복면 래퍼


‘계획대로 되고 있어,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2018년을 대표하는 래퍼는 ‘폭염에 복면 쓰고 불구덩이 처박힌’ 마미손이다. 2분을 조금 넘는 ‘소년점프’의 유튜브 조회수는 3천만을 넘겼고 그로 발생한 총수익은 한화 1700만 원을 넘는다.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의 화제를 끌어오기 위해 창조된 가상의 캐릭터 마미손이 오히려 본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마미손의 ‘계획’에도 이런 시나리오는 없었을 것이다. ‘소년점프’는 단순한 인터넷 히트곡을 넘어 2018년 후반기 대중문화의 현상이었다. 선풍적인 유튜브 조회수 상승세에 주목한 크리에이터들이 먼저 패러디 영상을 제작하더니, 이후 이름 있는 여러 시민 단체들이 ‘~~손’의 ‘~~점프’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단순 흥미를 위한 패러디부터 캠페인, 대학교의 선거 활동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핑크색 복면을 뒤집어쓰고 ‘계획대로 되고 있어’를 외친다.



흥행은 바이럴 마케팅으로도 이어졌다. SK텔레콤이 마미손과 함께한 유튜브 광고 ‘복면 안에 누구’는 305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마케팅 클립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12월 4일 마미손은 본인의 계정을 통해 ‘소년점프’의 조회수와 그로 얻은 수익을 공개했는데, 이는 홍콩의 여행 스타트업 기업 클룩(KLOOK)’이 기획한 ‘더러운 자본주의 PPL’ 홍보의 인트로 격 영상이었다.


심지어 마미손 기념상품도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은 12월 4일부터 12월 7일까지 ‘핵인싸템 마미손 굿즈’ 기획전을 통해 마미손 핸드폰 케이스, 마미손 복면, 마미손 인형 등을 한정 판매했다. 12월 14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백여 명의 핑크 복면 백댄서들과 함께 등장한 마미손의 퍼포먼스는 2018년을 대표하는 한 장면이다.



마미손은 본인을 ‘무명의 신인 래퍼’라 칭하지만 그의 복면 속 진짜 얼굴은 익히 알려져 있다. 다만 모른 척할 뿐이다. ‘소년점프’는 <쇼미더머니 777>에서 가사 실수로 탈락한 신인 래퍼라는 설정을 통해 이 숨겨진 정체를 일종의 인터넷 놀이이자 어떤 대표적 기믹으로 만들었다. 대중은 그의 정체를 알면서도 본인의 말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로 그를 받아들였고, 이를 활용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공감을 느꼈다.


그 서사는 ‘폭염에 복면 쓰고 불구덩이 쳐박’혔음에도 소년 만화의 오랜 관습처럼 고난 끝 성공을 거머쥔다는 전복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저항, 반전 대신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는 현세대에게 어설픈 복장과 춤사위로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마미손의 존재는 분명 신선하고도 저돌적이었다. 거친 기타가 주도하는 록 반주와 배기성의 괄괄한 목소리, ‘한국 힙합 망해라’와 같은 메시지 또한 반동의 인상을 더한다. 



<쇼미더머니>의 역대 최고 수혜자가 우승 래퍼들이 아닌 마미손이라는 사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은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중화했지만, 그것이 음악 자체로 소비된 것인지 혹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소비되어왔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많은 래퍼들이 등장해 음원 차트 1위에 올랐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꿈꾸기 힘든 성공을 거뒀음에도 그 인기는 지속되지 못했다. ‘쇼미더머니 출신’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본인이 지향하는 음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마미손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은 현상을 역으로 이용했다. 그 자신도 <쇼미더머니>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애써 실력을 증명하기보다 복면을 쓰고 미디어 제도권에 저항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이것이 일곱 시즌째 계속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진부함을 받아치며 묘한 호평을 가져왔다. 한국에서 힙합이 인기 있는 것이 아니라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것이라는 듯, 역설적인 ‘한국 힙합 망해라’의 외침은 일종의 저항 메시지로도 읽힌다. 



복면 속 ‘그’의 처음 계획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신 그 주목도를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정도에 그쳤다. 실제로 ‘소년점프’ 이후 별도의 후속 작품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영상은 아주 효과적인 바이럴 마케팅의 사례가 되었고 2018년 유튜브 플랫폼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기술적 영역의 성공을 넘어 저돌적인 메시지 역시 패배감과 열등감, 무한 경쟁의 논리에 지친 청춘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마미손의 ‘계획대로 되고 있던’ 201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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