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역사 속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팬덤들
방탄소년단은 올해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아티스트다. 12월 5일 트위터 측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2년 연속 가장 많이 트윗 된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멤버 지민은 개인 계정이 없음에도 미국에서 9번째로 많이 언급된 셀러브리티다.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힙합 스타 카니예 웨스트, 드레이크, 비욘세를 제친 순위다. 172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BTS의 ‘글로벌 팬덤’이 대단한 수치를 보여준 한 해였다.
BTS의 인기는 한국의 다방면 플랫폼을 활용하는 조직적 아이돌 팬덤 문화가 SNS 발달로 역수출된 모습이다. 우리에게 팬덤은 아이돌 그룹과 아티스트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팬덤의 범위는 문학, 영화, TV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있으며 해외에서의 전통과 역사도 상당하다. 대중음악 역사 속 팬덤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남거나, 그 지나간 시대에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최초의 팬덤 현상을 꼽자면 19세기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피아노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리스트는 공연마다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는데, 이들은 리스트의 장갑과 끊어진 피아노 줄, 마시던 홍차를 차지하려 몸싸움을 벌였음은 물론 리스트의 머리카락과 몸에 손가락이라도 닿고자 애원했다고 한다. 대중 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도 저명했던 이 현상을 두고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최초의 팬덤 이름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를 선사했다.
현대적인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아이돌’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는 프랭크 시나트라다. 20세기 최초의 팝 슈퍼스타였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1940년대 토미 도시 밴드(Tommy Dorsey Band)와 함께한 음악 활동 시기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인기와 추종을 누렸는데, 언론은 팝스타에 열광하는 그들을 ‘팬덤’이라 부르는 대신 여성 팬들의 짧은 양말을 지칭해 ‘바비 삭서(Bobby Soxer)’라 이름 지었다.
이후 이 거대한 팬덤 현상은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와 영국의 클리프 리처드로 이어진다. 대중음악 최초의 록스타였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TV의 보급과 함께 현란한 춤사위와 훤칠한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영국에서만은 엘비스가 부럽지 않았던 클리프 리처드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1969년 서울 시민회관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펼쳐진 내한 공연은 해외 팝스타의 첫 내한 공연으로 기록된다.
비틀즈의 팬덤 ‘비틀마니아’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거대한 팬덤 현상이다. 비틀마니아들은 기존 팝 스타들을 따라다니며 환호하는 소녀 팬들과 차원이 달랐다. 비틀즈의 콘서트가 예고된 공연장 일대는 수천 명의 팬들로 곧장 마비됐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1964년 2월 7일 수천명 비틀마니아의 환송회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떠난 비틀즈는 뉴욕 JFK 공항에 운집한 5천여 명의 비틀마니아들의 환호와 함께 첫 발을 디뎠다. 2월 9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비틀즈를 보기 위해 당시 미국 인구의 40%인 7천만 명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비틀마니아의 집단 현상은 선물로 공연장 출입구를 막아버리고 비틀즈 멤버들이 묵던 호텔의 손잡이까지 떼어갈 정도였다. 1965년 뉴욕 셰이 스타디움에서의 역사적인 공연은 그 절정으로, 팬들의 환호성 때문에 멤버들조차 무슨 곡을 연주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으며 너무나도 감동한 팬들은 콘서트 도중 기절해 실려 나갔다. 비틀마니아는 모든 현대적 팬덤의 효시다.
1960년대 히피 문화를 상징하는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팬덤 데드헤즈(Deadheads)도 팬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집단이다. 이들은 밴드가 공연을 벌이는 어느 곳이든 순례하듯 따라다니며 모든 내용을 녹음해 해적판 CD로 재생산하며 공유 했는데, 그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밴드 티셔츠와 넥타이 같은 소품을 자체 제작해 판매하는 것은 콘서트 굿즈(영어로는 머천다이즈)의 시초가 됐다.
이후에도 팝 역사에 유명한 스타들은 그들만의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키스의 팬덤이 대표적이다. 현대에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스위프티스(Swifties), 케이티 페리의 케이티 캣(Katy Cat), 저스틴 비버의 빌리버(Belieber) 등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2018년 최고의 스타 드레이크의 팬들은 팀 드리지(Team Drizzy)라 불린다.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돌 팬덤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해외 음악계에서 팬덤의 이름은 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개인을 넓게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케이티 페리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을 케이티 캣, 비버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을 빌리버라 부르는 것이다. 팬클럽 가입 절차와 자체 홍보 활동, 집단 성명을 발표하는 등 조직적인 절차로 운영되는 한국의 팬덤 문화와는 다르다. SNS 투표를 독려하고 자체 펀딩을 통해 기부 활동과 아티스트 선물을 제작하는 경우는 생경하다. BTS의 글로벌 히트가 한국형 팬덤 문화에의 주목을 불러온 것이다.
팬덤의 달라진 위상은 그들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고 있다. 리스토마니아, 바비 삭서, 비틀마니아 등 팬덤을 지칭하는 용어는 대체로 팝스타들을 쫓아다니는 여성 팬들을 일컫는, 다분히 비하적인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한국 역시 ‘빠순이’와 같은 곱지 않은 멸칭이 사용되는 광경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현대의 팬들은 주체적 호칭을 결정하고 기존 미디어가 수행하지 못한 거대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대중음악 역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팬덤이 있음을 무시해선 안될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