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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17. 2019

케이팝, 팬을 위한 무대가 필요하다

제28회 서울가요대상 리뷰 : 주최사와 기획사의 과시용 무대를 넘어.


1월 16일 고척돔에서 열린 제28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2만여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도, 한 해를 사이좋게 마무리하자는 듯 기획사 별로 트로피를 나눠주는 장면도, 매주 돌아오는 음악 방송과 여러 연말 가요제, 시상식에서 접했던 스페셜 무대들도 익히 접할 수 있던 모습이었다. 스크린으로 전사되는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퍼포먼스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 클립을 큰 화면으로 옮겼다는 의의 이상은 없었다.


요약하자면 현장에서 일어날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익숙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2019년의 가요 시상식 한가운데의 경험은 꼭 그렇지가 않았다. 시상식이라는 형식과 정형화된 축하 무대 틀에 아쉬움을 표할 새도 없이, 거대한 케이팝 콘서트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흥분이었다. 아이돌 스타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팬덤의 열띤 환호에 얼마간 이성을 놓고 구호를 따라 외치다 보니 어느새 목이 쉬어 있었다.



케이팝은 놀랍도록 대중화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변방에 존재했던 케이팝은 소셜 미디어의 확산을 타고 세계적 서브 컬처로 자리 잡았다. 영미권 팝 시장이 붕괴하며 틈을 치고 들어선 힙합, 라틴 팝과 같은 대안의 음악으로 급속히 세를 굳혔다. 그 선두에 방탄소년단이 있었고 그들은 모든 예측과 가늠을 뛰어넘어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견인하고 있다.


이 날 서울가요대상이 익숙하고도 낯설었던 이유다. 시상식으로는 평범했다. 힙합 알앤비 부문의 드렁큰 타이거와 밴드 부문의 크라잉넛,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밴드 아도이(ADOY) 정도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케이팝 퍼포먼스의 장으로는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팝은 이제 세계와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됐다’며 방탄소년단의 최우수 앨범상을 인도하던 배우 류승룡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젊은 아이돌 스타들의 뜨거운 열정과 퍼포먼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스트레이 키즈와 몬스타엑스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가 인상적이었고 세븐틴과 트와이스의 칼끝 같은 군무도 빛났다. 워너원의 마지막은 팬덤 워너블이 아니더라도 감동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방탄소년단의 무대는 더 설명해 무엇하랴. ‘방탄 안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하는 건데’라는 어떤 팬의 증언처럼 압도적이었다. 빽빽하고 고된 일정 속에도 젊음과 프로 의식으로 완벽히 무장한 케이팝 스타들의 무대였다.



그러나 이 즐거웠던 공연도 낯설었던 건 왜일까. 그것은 결국 이런 케이팝의 경험이 한국에선 좁은 제도 아래 경직되어있는 탓이다.


시상식이 난립하고 온갖 가요제, 페스티벌은 늘어가는데 그 무대는 언제나 비슷하고 제한적이다. 시상식 무대에는 상을 받기로 예정된 가수들만 온다. 연말 가요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주관에 맞춰 아티스트 순서와 방영 분량을 조절한다. 진정한 축제의 장도 아니고 진중한 시상식도 아니다.


고척돔에서의 무대라면 한국에서 잠실 주경기장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콘서트 중 하나다. 그 공연에 참가한 팬들에게 허락된 건 앉아서 응원봉을 흔들거나 커다란 ‘대포’ 카메라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것, 그리고 전광판에 나의 아이돌이 등장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는 것뿐이다. 멜론 뮤직 어워즈부터 지니뮤직 어워즈, 소리바다 베스트 케이뮤직 어워즈,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개별 아이돌 그룹의 단독 콘서트를 가면 이 문제는 상당수 해결된다. 그러나 케이팝의 고장 한국에서 아티스트들의 합동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이런 시상식과 가요제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설사 2020년 9월 착공을 목표로 하는 ‘케이팝 아레나’가 생긴다 해도, 기획사와 방송사 등 주최 측의 기호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런 대규모의 라인업은 불가능할 것이다.



케이팝의 역량과 에너지는 거대한데 이를 담아낼 제도와 시스템은 아직도 구식이다. 기업의 기호에 맞춰 난립하는 시상식은 아이돌 그룹에게 가혹한 일정을 강요하고 이것이 팬들과의 소통을 열어주거나 대중음악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다. 아티스트를 위한 것도, 팬들을 위한 것도 아닌 시상식과 무대지만 아이돌 그룹은 ‘회사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팬들은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즐기는 문화가 아닌 감상의 문화다.


이 날 최고 영예인 대상을 수상한 방탄소년단은 ‘우리도 아미(ARMY)의 팬이며, 팬 여러분들로부터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다. 모두가 팬들의 덕이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비단 방탄소년단뿐 아니라 이 날 수상한 대부분 그룹들이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현재 케이팝의 위상을 확립한 주체가 기획사, 시상식 주최사가 아닌 팬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팬덤의 존재로 인해 오늘도 수많은 케이팝 그룹과 연습생들이 땀을 흘려 내일을 준비한다.


모국의 팬들을 위한 무대와 시상식을 기대할 순 없는 걸까. 케이팝은 보다 거대해질 것이고 그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개별 그룹을 축하하는 무대를 넘어, 주최사와 기획사의 과시용 무대를 넘어, 모든 ‘가요 팬’ 들을 아우를 수 있는 무대. 바로 그런 기획이 케이팝의 저력을 오롯이 담아내고, 세계에 케이팝의 존재를 각인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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