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다시 보는 ‘비첼라’의 역사적 순간
오늘이 끝나면
코첼라 페스티벌을
비첼라(Beychellla)라고 불러야겠어요.
2018년 4월 14일,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가 팝의 여왕에게 봉헌됐다. 퀸 비(Queen Bey) 비욘세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메인 스테이지는 미국 내 아프로 아메리칸들의 위대한 현대사를 기념하는 상아탑이요, 인종 차별에 맞서는 유색 인종 인구의 거대한 행진이었으며 억압된 여성들을 대변하는 페미니즘 선언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4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 비욘세의 홈커밍 >(이하 < 홈커밍 >)은 왜 이 날의 퍼포먼스가 21세기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순간인지를 역설한다. 영화 리뷰 종합 사이트 < 로튼 토마토 >는 100점 만점에 98점을 선사하며 ‘비첼라여 영원히(Beychella Forever)’를 바쳤고, 평론지 점수를 종합하는 < 메타크리틱 > 역시 92점을 수여했다.
40곡짜리 라이브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4위로 데뷔했고 평론지 < 피치포크 >로부터 10점 만점에 9.3점, < 롤링 스톤 >에선 5점 만점에 4.5점을 획득했다. 2018년의 ‘비첼라’가 2019년의 코첼라를 이겼다.
< 홈커밍 >으로 부활한 ‘비첼라’에 대해 < 와이어드 >지는 ‘세계 모든 이들이 즐기고 기념할 수 있는,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펼친 평생 단 한 번의 무대’라는 격찬을 보냈다.
그러나 < 홈커밍 >은 비욘세가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도 비범한 아티스트임을 증명한다. 휘황찬란한 라이브 영상 사이사이 아티스트의 회고와 독백을 삽입해 미국 흑인 교육의 역사와 흑인 여성의 삶, 블랙 셀러브리티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비욘세의 삶을 집약한다. 디지털 시대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를 만든 셈이다.
‘비첼라’의 주제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학이자 교육 기관 HBCU(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로의 귀향과 존경을 집약했다.
HBCU는 부유한 백인들과 교육을 갈망하던 흑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교육 기관으로, 건국 1776년 이후 61년 만인 1837년에서야 펜실베니아에 처음 설립되었으며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는 노예제에 신음하던 미 남부 흑인들을 대상으로 그 수를 넓혀갔다. 남북전쟁 전까지 이른바 '남부 연맹'에선 흑인을 교육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욘세는 'HBCU에 입학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라 고백하지만, 8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와 솔로 커리어를 거친 탓에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2018년 코첼라를 아예 거대한 대학교 홈커밍 축제로 꾸몄다.
마칭 밴드(Marching Band)를 소개하는 솔로 드러머의 단독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면, 200여 명에 달하는 백댄서, 연주자, 코러스 싱어들과 함께 프랑스 브랜드 발망(Balmain)이 디자인한 단체 후드 티를 입고 무대 중앙에서 'Crazy in love'를 열창하는 비욘세가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자랑스러운 졸업생으로서 인사를 건넨다.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에게 교육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역사상 수많은 기득과 기성 집단은 피지배층에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앗아왔다.
배움과 습득, 비판과 토론의 장을 제공한 HBCU의 존재로 인해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연대하며 기성의 사회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앞장선 시민 운동가들은 대부분 HBCU가 배출한 존재들이었다.
극 중 등장하는 교육자 W.E.B. 두 보이스의 목소리를 주목하자.
교육은 단순히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삶을 가르쳐야 한다.
아프로-아메리칸들이 쟁취한 배움의 자유는 그들에게 씐 노역의 굴레를 절단했고, 창조적 사고와 평등의 가치를 심어주었다.
비욘세가 그 정점의 순간을 '비첼라'로 선포한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더 깊은 뿌리를 향한다. 현대의 민권 운동과 근대의 교육 과정을 퍼포먼스와 무대 장치 및 의상으로 구현했다면, 아프로-아메리칸의 문화적 자긍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40곡의 플레이리스트로 완벽한 음악의 문법이다.
뉴올리언스의 재즈부터 가장 고도화된 현대의 팝, 남편 제이지(Jay-Z)가 대표하는 뉴욕 브루클린의 힙합과 자메이카의 댄스홀(Dancehall)이 무대 중간중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스테이지에 역사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 마스터 펠라 쿠티(Fela Kuti)의 'Zombie' 메인 리프를 빌려와 댄스 스테이지를 꾸미고 댄스홀의 고혹적인 리듬이 디플로가 프로듀싱한 ‘Hold up’의 포문을 연다.
2018년 라틴 팝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제이 발빈(J.Balvin)의 ‘Mi gente’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무대’ 임을 천명한 비욘세는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며 발표된 시에 곡을 붙인 ‘Lift every voice and sing’을 열창했다. 이 곡은 ‘흑인들의 국가’로 여겨진다.
‘비첼라’의 중심엔 이 모두를 관조하는 ‘여성의 시각’이 있다. 극 중 ‘Don’t hurt yourself’와 겹쳐지는 흑인 민권 운동가, 말콤 엑스의 성난 목소리를 들어보자.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계층은 흑인 여성이다.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것도,
가장 무시당하는 것도 흑인 여성이다!
이어 극 중 등장하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최초의 흑인 여성 변호사 마리안 라이트 에델먼의 명언 역시 흑인 여성들이 겪어온 이중의 차별을 촌철처럼 묘사한다.
볼 수 없는 건 될 수도 없다.
코첼라의 비욘세는 ‘Bowdown’을 부르며 ‘아름다운 여왕님들을 위한 곡’이라 선언하고, 공연 도중 ‘여성들이여, 소리 지르세요. 우린 너무도 많이 참아왔어요. 그렇지 않나요?’라며 당당히 행진한다.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의 외침을 삽입하고,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동생 솔란지(Solange Knowles)를 무대로 불러 자매애를 과시한다.
그러고 보니 ‘비첼라’의 포문을 열었던 마칭 밴드 드러머도 여성이고, 극 중간 비욘세와 함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백댄서들 역시 여성들이다.
비욘세의 투쟁은 공적인 연설을 거쳐 진솔한 삶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휘황찬란한 ‘비첼라’ 아래에는 육아와 임신, 출산을 병행하는 워킹맘이 있다.
몸무게가 90kg까지 늘어나고 임신중독에 괴로워하며, 긴박한 제왕절개의 순간을 겪으며 쌍둥이를 출산하는 한 여성이 있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숭고한 삶과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자체로 < 홈커밍 >은 한 층 더 묵직해진다.
대중음악의 역사는 섬광처럼 번득이는 ‘창조적 순간’으로 기억된다. 1964년 2월 7일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 내리는 비틀스 네 멤버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던 지미 헨드릭스, 1983년 모타운 25에서 최초의 문워크 댄스를 선보인 마이클 잭슨, 1985년 거대한 라이브 에이드를 통째로 훔친 퀸과 프레디 머큐리, 1990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로 분한 마돈나, 2007년 수퍼볼 하프 타임 쇼를 지배한 프린스가 대중의 기억 속 선명히 남아있다.
‘비첼라’는 이런 최고의 순간들 속 흑인과 여성의 언어를 추가하는 순간이다. 이제 HBCU 학생들과 흑인 지성인, 흑인 여성들은 흑인 여성 최초의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비욘세의 무대를 그들의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당당히 꼽을 수 있다.
2018년 최고의 무대, 2010년대 최고의 무대를 펼친 아티스트가 누구인가?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 세 아이의 엄마,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일원이자 세계 최고의 솔로 가수 중 한 명, 비욘세다. 창조의 순간을 영민하게 담아내는 < 홈커밍 >은 향후 21세기를 상징할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