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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08. 2019

블랙 히스토리, 자밀라 우즈

앨범 <Legacy! Legacy!>의 블랙 프라이드 만신전


Jamila Woods ‘EARTHA’


유산(遺産)을 일컫는 다양한 영어 단어가 있다. 문화유산의 뜻으로는 헤리티지(heritage), 재산 상속의 의미로는 인헤리턴스(inheritance)를 자주 사용한다. 자밀라 우즈의 선택은 레거시(Legacy)다. 시카고의 젊은 작가 모임을 이끄는 시인이자 찬스 더 래퍼, 사바, 노네임, 도니 트럼펫과 함께 '시카고 힙합 학파'를 일군 이 아티스트는 네오 소울과 힙합, 재즈의 다채로운 문법으로 20세기 블랙 아트, 블랙 프라이드, 블랙 페미니즘을 이끈 선구자들의 만신전을 건축한다.


베티 데이비스, 소니아 산체스, 니키 지오바니


첫 번째 외침 : 크게, 이름 부르기


< Legacy! Legacy! >에는 제목처럼 두 번의 외침이 있다. 첫 번째는 호명(呼名)이다. 트랙 리스트를 수놓은 블랙 커뮤니티의 전설들은 자밀라 우즈의 벅찬 자부심과 충만한 존경의 목소리에 화답하여 억압의 역사 속 꽃 피운 창작의 영감을 하사한다. 뮤지션, 소설가, 시인, 화가, 사상가들의 유산 앞에 자밀라는 간결하고 현대적인 < HEAVN >의 뼈대 위 풍성한 사운드 재료들로 제단을 꾸민다. 그다음 각 위인의 개성을 정교하게 구성하며 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단출한 쓰리 코드 피아노와 드럼 비트 위 영적인 보컬로 역사를 소환하는 첫 트랙 'Betty'가 주술적인 이유다. 시대를 앞선 내스티 걸(Nasty Gal), 베티 데이비스의 영혼을 '난 전형적인 그런 여자가 아냐 / 머릿속 관념을 지워버려'라는 메시지로 각인하는데, 이때 자밀라 우즈는 빙의를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로 역사 속 인물에 깊이 몰입한다. 시인 소니아 산체스를 통해 속박의 역사를 천진하게 노래하는 'Sonia',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한 가수 어사 키트를 노래하는 'Eartha'도 유사한 형태의 발화를 가져간다. 흑인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사상을 차분히 고백하며 경배하는 모습이다.

정점은 여류 시인 니키 지오바니의 테마 'Giovanni'다. '선조들이 나를 지켜보지 / 동화 속을 걷는 / 블랙 골디락스라네'라는 자긍심을 차분한 그루브의 보컬로 각인한다. 섬세한 하이햇 샘플로 강도를 중화한 후 다시금 투쟁과 증명의 시를 읊어나가다, 격정적인 기타 솔로를 배치하며 니키의 대표작 '자신감에 넘쳐(Ego tripping)'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구성이 탁월하다. 우아함과 정치성의 훌륭한 배분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머디 워터스

두 번째 외침 : 나를 던져, 기록하도록.  


이렇듯 강단 있는 언어로 역사의 이름을 부르던 자밀라 우즈는 두 번째 외침을 통해 스스로 예술가들의 붓과 펜, 악기를 자청한다. 일렉트릭 건반의 도발적인 사운드 'Miles'로 < Bitches Brew >의 마일스 데이비스를 소개하더니 공격적인 욕설과 까칠한 블루스 기타의 'Muddy'를 이어 전개한다. 물론 주인공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머디 워터스다.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메시지를 사이 파이(Sci-fi) 신스 리프로 정확히 묘사하는 'Octavia'까지 달하면 작품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아티스트를 목격한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그루브로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을 받드는 'Baldwin', 신비의 재즈 아티스트이자 차별과 구속의 현실 속 공상 과학과 우주를 꿈꾼 선 라(Sun Ra)의 테마 역시 상징적이고 몰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두 번째 외침은 집중으로의 부름, 체험으로의 소리 내기다.


옥타비아 버틀러, 제임스 볼드윈



이런 실험과 예술의 극단적인 형태가 6분 46초의 'Basquiat'다. 여기서 자밀라는 뉴욕 이스트 사이드의 치열한 삶을 투영해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그은 '블랙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긴장을 머금은 베이스 리프와 재즈 드럼, 사바(Saba)의 타이트한 랩은 치열한 탐구와 현실 인식의 과정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가깝게 위치시킨다.

존경과 야망을 동시에 담았다. 실존했으나 잊혀야 했던, 혁신적이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아티스트들을 역사 속 위대한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헌사의 의미가 강하다. 동시에 자밀라 우즈는 독보적이고자 한다. 자유롭고도 탄탄한 보컬 퍼포먼스, 현학적이지 않고 간결 명확한 메시지는 모든 트랙에서 안정감과 놀라움을 동시에 확보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몸소 익힌 시카고의 이 박학다식한 아티스트는 < Legacy! Legacy! >로 그의 위상을 유산(遺産)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시대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를 고양하는,
찬란한 블랙 히스토리(Black History)의 기록.




장 미셸 바스키아, 선 라


우리에겐 이 노래로 가장 친숙하다.


어사 키트,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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