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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12. 2020

힙합, 록스타를 찬탈하다

록스타를 자칭하는 힙합 스타들의 헤게모니 계승


2020년 6월 2주 차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곡은 래퍼 다베이비(Dababy)의 ‘Rockstar’다. ‘네가 언제 한 번 진짜 록스타를 만나봤겠어?’라는 도전적인 외침 아래 그는 신세대 록스타가 갖춰야 할 조건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새로 산 람보르기니, 허리춤에 찬 권총,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독한 마음가짐… 분명 우리가 알던 ‘록스타’와는 다른 존재다. 


비단 다베이비만 신세대 록스타를 자청하는 것이 아니다. 퍼렐 윌리엄스가 속한 힙합 그룹 엔이알디(N.E.R.D)는 2002년 ‘넌 내가 될 수 없어, 난 록스타야’라는 가사의 ‘Rockstar’라는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2017년 래퍼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히트 싱글의 제목 역시 ‘Rockstar’였다. 이 곡에서 포스트 말론은 전설적인 밴드 AC/DC의 전 보컬 본 스콧(Bon Scott), 도어스(The Doors)의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빌려 자신을 과시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래퍼 창모가 'Can't you see I'm a rockstar'라는 곡을 발표했고 2018년에는 한요한이 'Baby I'm rockstar'로, 올해는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가 ‘Rockstar’를 자청했다. 


힙합록스타를 찬탈하다



사실 힙합 진영에서 록스타의 삶을 동경하는 가사는 흔했다. 1980년대 런 디엠씨(Run-DMC)의 ‘King of rock’부터 에미넴, 엔이알디(N.E.R.D)부터 에이삽 라키(A$AP Rocky)에 이어 최근 포스트 말론과 다베이비(Dababy)까지 스스로를 록스타로 일컫고 있다. 오죽 흔했으면 작년 힙합 전문 매거진 ‘XXL’은 ‘사라져야 할 힙합 가사 클리셰’로 ‘록스타처럼(Like a Rockstar)’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2020년 스스로 록스타를 자칭하는 힙합 스타들의 기세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기타를 잡지 않고 가죽 재킷도 입지 않는다. 그들 곁에는 베이스, 드럼, 건반 주자 대신 비트메이커와 프로듀서, 이미 성공했거나 성공하고 싶은 신예 래퍼들이 있다. 차고를 개조해 만든 합주실에서 연주를 맞추던 선배들과 달리 이들은 녹음실과 스튜디오에서 새벽을 지새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빠르게 침투했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오래된 노래처럼, 랩스타들은 기존 록스타를 죽이고 그 왕관을 빼앗아 쓰려한다. 올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20장의 앨범 중 15장이 힙합 아티스트의 작품이고,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11곡 중 7곡이 힙합 아티스트의 노래다. 


리스트를 살펴보자. 드레이크(Drake),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퓨처(Future), 포스트 말론은 이미 음악을 넘어 문화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슈퍼스타다. 다베이비,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Youngboy Never Broke Again), 로디 리치(Roddy Ricch),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같은 신예들의 기세도 무섭다. 리스트 속 힙합 음악을 주로 앞세우는 방탄소년단, 신세대 알앤비를 대표하는 위켄드(The Weeknd)까지 범주에 포함하면 비중은 더욱 커진다. 


힙합이 록스타를 가져올  있는 이유는?



록은 그 어원부터가 불온하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가스펠과 블루스로부터 태동한 로큰롤(Rock’n Roll)은 ‘격렬한 섹스’를 지칭한 말이었다. 이것을 보다 빠르고 거칠게 연주하며 기성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더하되, 백인들의 음악 컨트리 포크의 정갈한 멜로디를 더하며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만든 것이 록의 출발이었다. 


당연히 록 음악을 한다고 모두가 록스타는 아니었다. 더 과감하고, 더 파워풀하며, 더 도발적인 이들이야말로 록스타라는 영광의 칭호를 쓸 수 있었다. 비틀스가 등장하며 대중음악의 중심에 굳건히 내린 록은 1967년 ‘사랑의 여름’과 2년 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전설적인 연대로 그 위상을 굳건히 했고,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등의 전설들이 방탕한 생활 끝에 요절하며 ‘록스타 신화’를 써 내려갔다. 


지금까지 음악의 역사에서 록스타라 불리는 아티스트들은 십중팔구 록 뮤지션들이었다. 프레디 머큐리, 로버트 플랜트,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보위, 커트 코베인 등이 ‘록스타’ 하면 금세 떠오르는 이름이다. 이상의 인물들은 기성에 반항하고 제도에 불복종하면서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세상에 거대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부터 빠르게 상업화되며 상당수 가치를 포기했다. 1990년대 너바나, 펄 잼 등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록 진영 최후의 저항이었다.


힙합이 록스타의 지위를 찬탈할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1970년대 말 파티 음악으로 출발한 힙합은 1980년대부터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고 1990년대 조직적인 저항을 통해 칼을 갈아온 후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시대정신을 대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인종 갈등으로 신음하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불평등과 고통, 성공신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음악계에서 세상을 향해 도전하고 과시하며 성공하는 음악가들 중 다수가 악기를 잡지 않고 랩을 한다. 무궁무진한 화합과 확장, 자유로운 창작의 바탕 아래 힙합은 지속적인 연대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록이 가졌던 상당수 음악의 정신을 가져왔다. 


2010년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록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장대한 구성과 실험을 힙합에 이식했다. 현세대 최고의 래퍼로 손꼽히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2015년 <To Pimp A Butterfly> 앨범을 통해 미국 내 인종 갈등과 블랙 커뮤니티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록이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를 힙합에 넘겨준 결정적인 두 순간이었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힙합의 선언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을 ‘힙합 스타’라 칭하지 않고 ‘록스타’라 칭하는 것은 지금까지 대중음악의 큰 별 혹은 상징적인 인물들이 대부분 록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대중음악을 이끈 장르는 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디지털 음악 시대가 열리고 누구에게나 빠르고 쉬운 창작의 길이 열리며 소수였던 힙합은 주류가 되었다. 


과거 힙합이 록스타를 동경했다면, 지금의 힙합은 록스타를 가져와 대중음악에 일종의 선언을 날리고 있다. 지금 음악을 이끄는 것은 우리이며, 새 시대의 우상 역시 우리가 될 것이라는, 가벼워 보이나 묵직한 선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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