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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31. 2020

'어떻게 생각해'라 묻기 전에

슈가, 어거스트 디(Agust D)의 존스타운 대학살 샘플링 논란


방탄소년단 슈가, 랩 네임 어거스트 디(Agust D)가 최근 발표한 믹스테이프 'D-2'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가 논란이다. 1978년 9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존스타운 대학살'의 주범이자 사이비 교주였던 짐 존스의 육성을 곡 시작 부분 샘플링하여 삽입한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봐도 옹호하는 쪽의 입장을 납득하기 어려운, 안이한 결과물인데 뭐가 문제냐는 말이 많다. 크게 세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된다.





1. 짐 존스의 육성을 쓸 이유가 없다.


1978년 11월 17일, 짐 존스는 존스타운으로 간 신도들의 안전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리오 라이언 및 일행 5명을 살해했다. 이후 그는 신도 전원을 불러모은 다음, 함께 청산가리를 탄 쿨에이드를 마시고 집단 자살했다. 그런데 짐 존스는 그저 집단 자살을 권한 궤변론 사이비 종교 수장이 아니다. 존스타운 대학살 과정에서 그는 무장 경호원들을 동원해 반강제적으로 사람들에게 독극물을 권하고 자살을 강요한 살인자에 가깝다.


워낙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에 문화계에서도 꽤 큰 영향을 줬다. 음악만 해도 브라이언 존스타운 매서커라는 팀이 있고 프랭크 자파, 푸 파이터스, 베이퍼스 등 다양한 뮤지션이 이 사건을 언급했다. 해외에서는 '쿨에이드를 마시다'라는 관용어구까지 생길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선 인지도가 낮은 사건이다.


슈가가 글로벌 스타 BTS의 위상을 알고 짐 존스의 육성을 샘플링했다면 지금 미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처럼 피해자, 유가족들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그런 복잡한 생각 없이 내수 시장용으로만 사용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굳이 9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물의 목소리를 사용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누군가에겐 성숙하지 못한 재현의 윤리로 비칠 위험이 있고, 어떤 문화적 맥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2. 작품 내 맥락에서도 맞지 않다.


짐 존스의 음성, 존스타운 학살.
다른 아티스트들도 많이 언급하고 샘플링했잖아.
뭐가 문제야?


당연히 샘플링할 수 있다. 어쩌면 앞서 '왜 굳이?'에 답이 될 수도 있겠다. 해석하기 나름이기도 하고.


래퍼 포스트 말론은 두번째 정규 앨범 'Beerbongs & Bentleys'에 'Jonestown'이라는 제목의 인터루드를 실었다. YG, G-Eazy와 함께 허무한 LA의 삶을 노래하는 이전 트랙 'Same bitches'에 이어 황량하고 방탕한 탕아 캐릭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짐 존스의 육성은 없다.


'Eternal Atake' 앨범에서 릴 우지 버트는 'Leaders'라는 곡을 통해 '짐 존스처럼 교단을 이끌어'라며 자신의 인기를 과시한다. 짐 존스의 육성은 없다.


짐 존스의 연설을 샘플링한 곡은 힙합 그룹 브록햄튼의 '1998 Truman'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곡은 영화 '트루먼 쇼'로부터 영감을 받아 거대한 환상같은 현실 속 방탕한 삶을 사는 청년들의 현실을 폭로한다. '너흰 자유가 아냐, 너흰 노예야!'라 외치는 짐 존스의 목소리가 삽입되어있는데, 사실 이것도 논란이라면 논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의도는 명확하다.


슈가는 '어떻게 생각해'에서 짐 존스의 육성 이후 '어떻게 생각하던지 난 미안한데 X발 X도 관심없네'라며 슈퍼스타가 된 자신을 과시하고 헤이터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혹자는 이 샘플링을 '비판적 대중의 죽음'을 은유하기 위한 죽음과 궤변의 상징이라 해석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짐 존스는 단순히 세뇌만 시켜서 900여명에게 쿨에이드를 먹인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슈가가 그렇게 심오한 비판의 곡을 의도했다고 보기엔 전체적인 표현이 너무 평면적이다. '빌보드 1위', '그래미', '돈 자랑들은 뭐 귀엽지' 등의 자화자찬이 이어지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한 비판을 저주하고 비난하며 거친 말을 쏟아낸다.


숱한 해외 아티스트들도 짐 존스와 존스타운 대학살을 활용하고 언급하지만 그것은 1번에서 언급했던 문화적 맥락과 분명한 주제 및 목적이 있다. 짐 존스의 연설 음성을 샘플링으로 사용한 경우는 드물다. 슈가가 '어떻게 생각해'에 굳이 짐 존스의 목소리를 넣어야 했다면 그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곡으로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기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다를 수 있어도 많은 이들의 '뜨악'하는 반응은 직관적인 것이다.


"BTS와 슈가는 가사 한 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샘플링에도 깊은 의미를 담는 참된 아티스트"라는 결론을 미리 내놓은 상태에서 주장하는 순환 오류처럼 들린다.



3. 몰랐어도 문제가 된다.


이미 지난해부터 팬덤은 이 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짐 존스의 육성도 샘플링으로 사용될 것임을 인지했다. 슈가 본인이 이 샘플을 몰랐을 리가 없다. 물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짐 존스고, 그가 누구이며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랐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시기 팬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안이한 선택이었다.


슈가는 '어떻게 생각해'의 작곡 및 프로듀서 진에 이름을 올렸다. 설사 그가 가사만 썼고 작곡 및 프로듀싱은 El Capitxn과 Ghstloop이 담당했다 해도 그들이 짐 존스의 육성을 샘플링하여 비트에 삽입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다. 더 나아가면 내부 모니터링 과정과 음원 필터링을 진행해야 할 빅히트 내부에서 이 사안을 크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뜻도 된다.


알고 썼다면 1번과 2번에서 말한 대로다. 모르고 썼다면 그것도 문제다.



4. 결론


슈가는 2016년부터 또 다른 자아 어거스트 디를 통해 억눌린 감정과 분노를 거칠게 표현하며 아이돌 아닌 래퍼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노력해왔다.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키운 [D-2]는 더 세고 더 강하다. 그러나 그를 공격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해’라 질문을 던지기 전에, 본인 스스로와 팀에게 이 곡과 샘플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 물어야 했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개인의 문제든 시스템의 문제든, 가볍게 여길 논란은 아닌 것 같다.





+ 추가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믹스테이프 ‘D-2’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What do you think?)’ 중 도입부 연설 보컬 샘플은 해당 곡의 트랙을 작업한 프로듀서가 특별한 의도 없이 연설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곡 전체의 분위기를 고려해 선정하였습니다.

해당 연설 보컬 샘플을 선정한 이후, 회사는 내부 프로세스에 따라 내용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정 및 검수 과정에서 내용상 부적절한 샘플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곡에 포함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결론이 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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