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2020년 여름을 싹 쓸어가다.
MBC 예능 프로그램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이름이 한 시청자의 의견 ‘싹쓰리’로 결정된 것은 불길한 신호였다. 그 뜻대로 싹쓰리의 음악은 올해 여름을 완전히 지배했다. 7월 11일 듀스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여름 안에서’, 4주 연속 가온차트 디지털 차트, 스트리밍 차트 1위에 올라있는 ‘다시 여기 바닷가’가 8월 말로 향해가는 현재도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있다.
끝이 아니다. 후속 싱글 ’그 여름을 틀어줘’ 역시 인기 절정이고 멤버들의 개인 곡 ‘듀리쥬와’, ‘Linda’, ‘신난다’ 까지 차트 상위권에서 연전연승 중이다. 기세를 이어 이효리, 엄정화, 제시, 화사로 구성된 여성 그룹 '환불원정대'를 예고하는 내용까지 방송을 탔다. 8월 21일 방탄소년단이 신곡 ‘Dynamite’로 돌아오기 전까지 가요계 그 누구도 싹쓰리의 아성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싹쓰리의 성공에서 음악계의 위기를 토로한다. 하지만 재미로 만든 기획, 음원 수익을 모두 기부하는 선한 영향력,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며 일련의 주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그런데 싹쓰리는 잘되지 않기가 더 어려운 기획이다. 대중의 선택은 맞으나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보긴 어렵다.
국내 최정상 엔터테이너 유재석, < 효리네 민박 >, < 캠핑클럽 > 등 예능 프로그램으로 ‘제주댁’으로의 이미지를 굳힌 이효리, 음악으로도 영화로도 연전연패하다 유튜브에서 ‘깡’이 유행하며 기사회생한 비가 모였다. 멤버들은 유명 댄스팀 나나스쿨에게 안무를 전수받고 BTS의 주요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온 룸펜스(최용석)이 ‘다시 여기 바닷가’의 감독을 맡는다. 이 과정이 매주 시청자들과 유튜브 영상 클립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된다. 그 목적은 명확히 실패 없는 데뷔를 겨냥하고 있다.
< 놀면 뭐하니? >의 김태호 PD는 이미 <무한도전> 시절 가요제,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요다)’ 특집을 성공시키며 예능의 음악 침투가 성공적인 전략임을 입증한 바 있다. 싹쓰리 전에도 이 프로그램은 세종문화회관을 통째로 빌린 ‘방구석 콘서트’를 열었고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을 화제로 만들었다. 뉴미디어의 선전에 밀려 2년 연속 수천억 대 적자에 시달리는 방송국에게 김태호 PD의 음악 기획, 차트 독점은 회심의 한 수이며 그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장 간편하고도 안전한 방법이다.
싹쓰리 기획이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현 주류 문화 소비층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시 여기 바닷가’와 싹쓰리의 성공은 곧 음악계의 실패를 뜻한다. 첫 번째는 노래로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져서고, 두 번째는 그 ‘재미로 만든 기획’조차 인기곡 자리에서 밀어낼 수 없는 가요계의 적나라한 현실 때문이다.
< 놀면 뭐하니 >는 방송을 통해 린다G(이효리)’, ‘유두래곤’, ‘비룡(비)’가 뮤지션들과 함께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 과정에 참여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냉정히 그 곡들은 완성도가 높지 않다. 숱하게 리메이크된 듀스의 ‘여름 안에서’ 리메이크부터 전혀 새로운 부분이 없다. 이상순이 곡을 만들고 지코가 노랫말에 참여한 ‘다시 여기 바닷가’에서 세 멤버들은 젊은 감각의 가사와 복고적인 멜로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1990년대 가요를 ‘연기’하고 있다. 베테랑들의 모임이라 칭하기엔 그만한 관록도 실력도 없다.
신우상의 원곡을 개성 없이 리메이크한 ‘두리쥬와’에서 유두래곤과 S.B.N(광희)의 보컬 역시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한다. 코드 쿤스트의 감각적인 비트와 신예 가수 드비타(DeVita)의 백그라운드 보컬 위 린다의 가창은 윤미래의 힘 있는 랩과 비교되어 더욱 맥이 빠진다. 비룡의 ‘신난다’ 정도가 그나마 들어볼 만한 트랙이나 게스트로 참여한 마마무의 존재가 곡의 주인공을 압도한다.
이런 노래들이 예능 프로그램과 유명세에 힘입어 차트를 지배하는 동안 가요계 어떤 노래도 이들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박문치, 블루, 기린 등의 아티스트들이 방송의 수혜를 입었고 실제로도 ‘Downtown baby’ 같은 곡은 살아남았지만 대다수가 잠깐 언급되는 데서 그쳤다.
싹쓰리에 싹 쓸려버린 가요계의 현실은 어둡다. 이들의 기획에 새로움이나 혁신, 음악에 대한 고민은 없다. 노스탤지어 유행을 포착해 말 그대로 재미와 시청률을 목표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과거 문법과 방송이 2020년 음악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미 음악은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을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코로나 시대 고민 없고 밝은 콘텐츠가 인기라 해도 흥미 이면의 진지한 고민까지 희석해서는 곤란하다. 음악계는 ‘올여름을 싹 쓸어버리겠다’며 등장한 싹쓰리와 < 놀면 뭐하니? >의 선언에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