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지의 2003년 오리지널 재구성, 시선은 변한다.
미국 <롤링 스톤>지가 9월 22일(현지 시각) 새로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리스트를 공개했다. 2003년 록 뮤지션, 음악 평론가 및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투표를 종합해 특별 발매판에 게재한 리스트 이후 2012년 한 번의 개정을 거친 다음 8년 만의 개정판이다. 전체적으로 힙합을 위시한 흑인음악의 강세가 눈에 띄는 가운데 여성 뮤지션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 한 해만 6,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리스트는 <롤링 스톤> 지를 대표하는 콘텐츠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간되어 52년 동안 미국 대중문화 전반 및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잡지로 명성을 떨쳐온 <롤링 스톤>이 21세기에도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로 입지를 굳히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2005년에는 리스트가 도서로 출간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변형 리스트가 존재한다.
<롤링 스톤> 관계자들은 새로운 리스트 공개에 부쳐 “스트리밍 감상, 단편적인 취향의 시대에 점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작업을 더욱 흥미롭게 했다”는 감상을 더했다.
이번 재구성 작업에는 300여 명 이상의 음악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유명 뮤지션들부터 <타임>, <뉴요커>, <피치포크>의 저널리스트, 워너뮤직, 유튜브, 소니 뮤직 등 음악계 각지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에게 '각자 선호하는 50장의 음반'을 질문하여 투표 결과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03년과 2012년 모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1위로 손꼽힌 비틀즈의 1966년 작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17년 만에 정상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1위의 영예는 소울 가수 마빈 게이의 1971년 작 ‘와츠 고잉 온(What’s Going On)’이 거머쥐었다.
‘와츠 고잉 온’은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과 인종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미국 사회를 포착한 작품으로 긴 시간 동안 명반의 지위를 놓치지 않은 앨범이다. 2003년 5위에 올랐던 작품이 네 계단을 올라 1위에 올랐다. 총 네 장의 앨범을 톱 텐에 포함시켰던 비틀즈는 이번 개편 과정에서 ‘애비 로드(Abbey Road)’ 한 장을 남기고 10위 권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2020년 리스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들의 약진이다. 기존 순위표 10위권 내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은 마빈 게이 단 한 명뿐이었다. 새 순위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송즈 인 더 키 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4위), 프린스의 ‘퍼플 레인(Purple Rain)’ (1984, 8위), 로린 힐의 ‘더 미스에듀케이션 오브 로린 힐(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10위) 등 총 네 장이 톱 텐에 진입했다. 비욘세의 2016년작 ‘레모네이드(Lemonade)’는 50위 권 내 등재된 가장 최근 작품의 영예를 안았다.
힙합 음악의 강세도 두드러진다. 10위에 이름을 올린 로린 힐은 힙합 그룹 푸지스(Fugees)에 몸 담았던 여성 래퍼다.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잇 테익스 어 네이션 오브 밀리언스 투 홀드 어스 백(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도 48위에서 15위로 높게 평가됐다.
20위 권 내 등재된 유일한 2010년대 작품은 모두 힙합 뮤지션의 것이다. 카니예 웨스트가 2010년 발표한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17위, 래퍼 켄드릭 라마의 2015년작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To Pimp a Butterfly)’가 19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1994년작 ‘레디 투 다이(Ready to Die)’, 그룹 우 탱 클랜의 1993년 데뷔작 ‘엔터 더 우탱(Enter the Wu-Tang)’ 각각 22위, 27위에 오르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가장 극적인 상승폭을 보여준 작품 역시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의 작품이다. 네오 소울 가수 디안젤로가 2000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Voodoo’는 2003년 리스트에서 488위에 그쳤으나 이번 리스트에서 무려 460계단 오른 28위에 선정됐다. 록 중심 과거의 시선과 달리 유행을 선도하는 힙합, 알앤비, 소울 음악을 새 순위에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들과 더불어 여성들의 목소리도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룹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Pet Sounds)’(1966)에 이어 3위에 오른 앨범 ‘블루(Blue)’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의 앨범이다. 마빈 게이의 ‘와츠 고잉 온’과 동일한 1971년 발표된 작품으로 우울한 감정을 포크 음악에 실어 음악의 주도권을 개인에게 돌려놓은 평을 받는 명반이다. 30위에서 3위로 지위를 높였다.
로린 힐의 ‘더 미스에듀케이션 오브 로린 힐’ 역시 음악계 여권 신장을 상징하는 지표다. 그룹 푸지스를 떠나 발표한 이 솔로 앨범은 미국 사회 속 유색인종 여성으로의 정체성을 설파하며 그 해 제4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다섯 개의 트로피를 로린 힐에게 안긴 작품이다. <롤링 스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위로 선정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1967년 작품 ‘아이 네버 러브드 어 맨 더 웨이 아이 러브 유(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도 13위에 오르며 위대한 가수의 위대한 성취물임을 인정받았다.
2003년 리스트 속 1위부터 50위까지 여성 아티스트는 조니 미첼과 캐럴 킹 단 두 명뿐이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조니 미첼, 로린 힐, 아레사 프랭클린 외 캐럴 킹 (25위), 패티 스미스 (26위), 비욘세 (32위), 에이미 와인하우스 (33위) 등 총 7명의 여성 뮤지션이 이름을 올렸다. 다양한 여성 아티스트들이 활약하며 메시지를 전파하는 현재 대중음악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이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은 2012년 리스트에 없던 154개의 앨범을 새로 추가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했던 구 순위표와 달리 21세기에 발매된 작품도 86개나 포함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가수 자넷 잭슨의 경우 원 리스트에선 256위 ‘더 벨벳 로프(The Velvet Rope)’(1997)가 최고로 인정받았는데, 2020년에는 세 번째 앨범 ‘컨트롤(Control)’이 111위로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9년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그래미 주요 4개 부문 (앨범, 레코드, 노래, 신인)을 섭렵한 빌리 아일리시가 397위, 아이돌 그룹 원 디렉션의 멤버에서 솔로 가수로 거듭난 해리 스타일스의 ‘파인 라인(Fine Line)’이 491위에 올랐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재구성 작업에 참여한 <롤링스톤> 리뷰 에디터 존 돌란은 작업 과정에 대해 “‘대중음악에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는 시선으로 임했다”라 밝히며 새로운 순위표의 지향점을 밝혔다. “현재 흐름을 솔직하게 반영했다. 록 순수주의자가 아니라 같은 시간대 공존했던 서로 다른 역사를 훑어보고 취향을 연대하는 과정”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