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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04. 2021

테일러 스위프트 'evermore'

신중하고도 찬찬하다.



'곡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수줍은 고백과 함께 테일러 스위프트는 해가 가기 전 < folklore >의 자매작(Sister Records)을 공개했다. 비틀즈, 엘튼 존, 톰 웨이츠,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한 해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전설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자아로 왕성한 창작욕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구전(口傳)'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던 테일러는 31세의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과 같은 이 작품으로 '영원'을 꿈꾼다.



< folklore >와 동일한 재료로 지어진 < evermore >의 세계는 언뜻 단순한 속편처럼 들리나 그 아래에는 훨씬 깊고 정교한 세계가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 있다. 자전적인 고백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는 'Love story'의 하이틴 컨트리 로맨스와 'ivy'의 불륜, 'no body, no crime'의 살인극, 대프니 듀모리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모의 이름을 붙인 'marjorie' 등 다양한 설화가 21세기의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을 꿈꾸는 태피스트리 위 수놓아진다. 다면의 페르소나를 규합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휘 아래 전작의 설계도를 그린 더 내셔널의 아론 데스너, 본 이베어가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포크, 재기 발랄한 소녀의 컨트리, 1990년대 얼트 록의 반항기와 일말의 진지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willow'의 '1990년대 트렌드보다 더 강하게 돌아왔다'라는 선언이 조곤조곤하나 굳은 확신으로 가득 찬 이유다. 글로켄슈필, 프렌치 혼, 첼로 등 클래식 악기와 아론 데스너의 미니멀한 정서를 교합하며 데뷔 초 과거의 자취를 가져온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감독한 이 곡의 주도권은 온전히 테일러에게 있다. 현 연인 조 알윈의 가명 윌리엄 바워리(William Bowery)와 함께한 챔버 팝 'champagne problems'에서 캠퍼스 커플의 선택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잭 안토노프의 리듬감 있는 박동 위 부와 명예를 경계하는 'gold rush'로 자의식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며, ''tis the damn season'과 'cowboy like me'에서는 유년기 내슈빌의 베테랑들이 사사한 보편의 연애담을 읊는다.



상상과 현실을 분주히 오가는 스토리텔링은 < folklore >의 보편보다 아티스트의 개인과 밀접히 맞닿아있다. 이는 앨범을 더욱 복합적이고 흥미롭게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가슴 아픈 'exile'을 따라 여린 떨림으로 눈물을 삼키는 'tolerate it'까지 목가적인 무드 속 여류 시인의 면모에 안심할 때쯤 하임(HAIM) 세 자매와 함께한 'no body, no crime'으로 비정한 서부극의 한 장면을 가져온다. 더 내셔널을 초청한 'coney island'를 통해 'Blank space'로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전 연인들의 명단을 다시금 슬쩍 꺼내보이기도 한다.


테일러의 짓궂은, 또는 야심으로 가득한 구성은 앨범의 끝단에서 분명한 반전을 의도한다. 잘게 부서지는 노이즈로 충격을 안긴 다음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5/4박자의 차분한 전반부로 돌아가는 'Closure', 작품을 마무리하는 'evermore'에서는 전작에서 잔잔히 테일러와 호흡을 맞추던 본 이베어에게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고독을 허락하며 짙은 흔적을 남긴다. 서두의 고백이 더 이상 수줍게 들리지 않는 지점이며, 지적인 < evermore >의 세계가 충동과 파토스 대신 정교하게 쌓아 올린 로고스와 야심의 건축물임을 체감하며 감화를 멈추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일말의 이질감은 전체적으로 < folklore >의 상징성과 견줄, 훌륭한 적응 및 확장의 면모를 보이는 이 작품 앞에서 덮고 넘어가도 될 정도의 흠이 된다. 아티스트가 완벽히 타인을 연기했다면 그 인공미가 두드러졌을 터나, 그는 분명히 수많은 등장인물들 속에 본인의 페르소나를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투영하고 있다. 빠른 노선 전환과 다작(多作) 속 풍부히 끌어안고, 섬세히 세공하며, 끝내 자신의 정체성으로 빚어내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창작 과정은 그가 우리 시대 드문 탁월한 재능의 팝스타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원'을 위한 발걸음이 신중하고도 찬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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