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한국 서비스 시작한 스포티파이, 네 가지 전망.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가 지난 2일부터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 3억 2천만 명 이상 유저를 보유, 6천만 곡 이상의 음원과 40억 개 이상의 플레이리스트를 확보한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지난해 3월부터 저작권 신탁 단체들과 음원 제공 저작료 배분 관련 논의를 시작하며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스포티파이는 지난 1월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온라인 광고 대행사 선정, SNS 계정 개설 등 약 2년 간의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첫 발을 디뎠다.
스포티파이는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옵션을 준비했다. 결제 정보 없이도 7일간의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한다. 요금제의 경우 1인(1만 1,190원)과 2인(1만 7,985원) 두 가지로 결제정보 입력 시 무료로 3개월 이용이 가능하다. 유료 요금제를 결제할 경우 광고 없는 음악 재생이 가능하며 오프라인 환경에서의 음악 감상을 제공한다.
세계 최대 플랫폼의 한국 진출을 두고 다양한 예측과 반응이 나오는 중이다. 2월 8일 스포티파이 뉴스룸의 첫 기자 간담회를 앞두고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의 스포티파이를 전망해본다.
스포티파이의 등장은 국내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에게 경계대상이다. 국내 도합 1,5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멜론, 지니, 플로와 더불어 네이버 바이브, 카카오뮤직, 벅스 등이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에 시장 점유율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도입 전부터 가상 사설망(VPN)을 통해 스포티파이를 이용해 온 소비층이 있기에 음원 시장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스포티파이가 유의미한 수치로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첫째 이유는 요금이다. 스포티파이는 해외 서비스와 달리 국내 서비스에서 광고를 청취하면 별도 비용을 내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무료 정책을 제외했다. 1만 원 이상의 요금제는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평균 이용권 가격에 비해 비싸다. 메신저 서비스, 통신사와 결합된 기존 스트리밍 업체들이 통신사 할인, 무료 이벤트 등 저렴한 옵션을 다수 제공하는데 반해 스포티파이는 가격 면에서 메리트가 없다.
둘째는 음원이다. 스포티파이는 현재 국내 최대 음원 유통 업체 카카오엠(KakaoM)과 계약을 맺지 못한 상황이다. 카카오엠은 아이유, 임영웅, 지코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유통을 맡고 있기에 스포티파이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 국내 스트리밍 업체들이 대부분 음원 유통도 겸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3일 카카오엠과의 음원 공급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초기 고객 확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국내 음원 보유 미비는 도입 초기 음원 확보에 실패한 애플 뮤직(Apple Music)의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확실한 강점은 큐레이션과 플레이리스트다. 3억 명 이상의 유저, 40억 건 이상 플레이리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포티파이의 개인화 기능과 추천, 취향 발굴은 어떤 서비스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이다. 2008년 서비스 초기부터 스포티파이는 차트 중심 환경을 과감히 타파하여 사용자 중심의 환경을 구축하고, 인공지능 기반의 데이터 필터링과 머신러닝을 통해 자동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여 제공하고 새로운 음악을 추천해왔다.
국내 음원 서비스들의 개인화 중심 개편이 음원 사재기 논란이 이후인 2020년부터였음을 돌아보면 상당한 격차가 있는 셈이다. 이멜론은 상징적인 서비스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이용량 중심의 ‘24히츠(Hits)’ 차트를 가져왔으며, 지니뮤직은 ‘뮤직 컬러’ 업데이트를 통해 퍼스널 컬러를 활용한 초개인화 큐레이션을 제공했다. 플로의 경우 개인 취향에 맞춰 앨범 및 플레이리스트 순서를 변경하는 ‘내 취향 Mix’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전히 질적으로 스포티파이가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서비스들도 양적으로 규모는 갖춰 둔 상황이다. 다수 청취 경험이 있는 경우 스포티파이의 추천에 견줄만한 서비스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사용자를 확보한 추후에 드러날 강점이다.
종합했을 때 당장 음원 시장에서 스포티파이가 높은 점유율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스포티파이가 단순히 스트리밍 수익을 위해 한국 진출을 선언한 것이 아니다. 케이팝 산업 및 국내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스포티파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 및 경계 없는 세계 팬덤 구축, 새로운 형태의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201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케이팝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2014년부터 케이팝 허브 플레이리스트를 선보였던 스포티파이는 현재 1,800억 분 이상의 스트리밍 횟수, 1억 2천만 개 이상의 케이팝 플레이리스트를 확보했다. 같은 해 빌보드 매거진 역시 빌보드 차트에 스트리밍 건수를 반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거대한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블랙핑크, 슈퍼엠 등 다양한 케이팝 그룹들이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한국 지사 설립 및 서비스 제공을 통해 스포티파이는 케이팝 기획사들과의 긴밀한 공조 및 발 빠른 소통을 위한 전초기지를 확보하게 됐다. 여기서 스포티파이의 역할은 한국 그룹을 세계에 소개하는 중간 플랫폼이다. 방탄소년단이 스포티파이의 국내 진출 당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스포티파이의 한국 도입을 환영한 모습은 케이팝과 스포티파이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한다.
팬덤 역시 적극적이다. 스포티파이의 차트 중 ‘글로벌 차트’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서, 과거부터 해외 케이팝 팬덤이 일찍이 공유하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가이드라인’을 번역하여 공유하는 등 해외 시장으로의 확장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지난 연말 빌보드가 신설한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더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스포티파이의 국내 진출은 한국 음악이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으로의 편입을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만 스포티파이를 반기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월 열 번째 정규 앨범 ‘에픽하이 이즈 히어(Epik High Is Here)’를 발표한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미국 스포티파이 앨범 데뷔 차트 톱 텐에 오르며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인했다. 이미 스포티파이는 ‘레이더(RADAR)’ 기능을 통해 국내 진출 전에도 비비, 알렉사 등 아티스트들을 해외에 소개한 바 있다.
동시에 스포티파이는 한국 서비스와 함께 ‘In The K-인디’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하며 인디 아티스트들에 대한 지원의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지난 11월 스포티파이는 ‘월 160억 명 이상의 새로운 뮤지션을 이용자에게 소개하고 있다’라 밝히며 아티스트들에게 플레이리스트 및 노래를 추천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 모드’를 새로 공개하기도 했다. 뮤지션들이 국내 시장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로로 전 세계 팬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자연히 아티스트들의 브랜딩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