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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11. 2021

정세균의 '수상록'

무엇이 올바른지를 기준으로 분석하게나.



제목을 ‘수상록’이라 붙였으니 이 장르를 개척한 몽테뉴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진솔한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쓴 것이다.’….


응당 수상록은 성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의 ‘수상록’은 의심스럽다. 매년 시대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삶을 애써 돌아보는, 그마저도 성실하지 못해 대부분 타인의 손을 거치는 에세이와 회고록이 쏟아진다. 정치자금 모집, 지지층 결집, 정치 철학 고집의 목적이 진실 앞에 우선한다. 저자도 편집자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책에 독자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수많은 책들이 선거 벽보의 한 줄에 그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어떤 창작물이든 접하기도 전에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정세균의 ‘수상록’을 처음 접하는 마음도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수상록’을 집어 들고는 책의 맨 뒤편 300페이지에 수록된 ‘편집 여담’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


우리는 이 책을 꽤 오래전부터 기획했습니다. (…) 정치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우리 한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함에도 막상 정치인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치’에 관한 책이 아니라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을 책에 담는 직업이었습니다.


편집자들의 소회처럼 ‘수상록’은 정치인 정세균과 인간 정세균의 구술을 기록한다. 총 5장의 목차 아래 1950년 11월 5일부터 시작된 베테랑 정치인의 삶이 빼곡한 소주제들로 압축되어있다. ‘조용한 신사’라는 이미지와 달리 제15대부터 제20대 의원까지를 역임한 5선 위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제46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그의 인생이 단출하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수상록’은 차분하다. 위기의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역임, 2010년 6.2 지방선거,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제19대~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승리, 코로나 19 범유행 와중의 국무총리직 수행. 그의 삶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극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극적인 순간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과장하지 않는다. 허투루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다. 



편집인들도 ‘타고난 것이 그런데’(262p.)라는 대답의 정치인에게 그 이상을 이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수상록’을 여타 진부한 정치인들의 회고록과 구분 짓는다. 길게는 세네 장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 두 페이지로 마무리되는 각 주제 속 정세균의 말은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차분히 전개하는 정치 철학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 바람에 꺾이지 않는 갈대밭의 울림이다.


여전히 ‘수상록’을 진실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오래도록 준비한 ‘수상록’ 기획임에도 코로나 19와 범여권 대선주자로의 행보 등 ‘정치인 정세균’의 행보가 더해지며 책은 기록보다 수단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져 간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의 에세이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에세이를 권한다. 수상록의 주인공보다 그의 말을 담아내며 읽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한 편집인들의 의도가 꽤 깊이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단단히 부착된 안구 위의 렌즈가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 이전에 가치 판단을 먼저 포착하는 건 아닐까. 


‘수상록’은 분명 성실한 마음으로 쓴 책이다. 정세균의 삶도 흥미롭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편집’‘여백이 많은 책’의 목표 아래 결과물 자체로 오롯이 평가받고자 한 이들의 노고가 나에게는 우선한다. 편집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정세균의 문장 중 책의 표지 뒷날개에 이 내용을 담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로 
분석하지 말고,

무엇이 올바른지를 
기준으로 분석하게나.
그러면 단순해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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