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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24. 2021

천용성 '수몰', 가라앉는 노래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두번째 정규 앨범 '수몰'


댐이 지어져 호수 아래로 가라앉은 유령 도시의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신작로, 드넓은 논두렁길을 따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학교, 삶의 터전이 되어주던 논밭 모두가 거대한 댐이 물길을 가로막으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는 이야기.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나게 된 수몰민들은 고향을 떠나며 뿔뿔이 흩어지고, 빈자리에는 기억의 파편을 붙잡는 망향비만이 우두커니 서있게 됐다는 이야기. 가끔 극심한 가뭄에 인공 호수가 마르게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 수몰 >은 그 유령 도시가 부르는 노래다. 모두가 새로운 세계, 반짝거리는 추억, 잡히지 않는 식상한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요즘 ‘수몰’ 같은 앨범은 메마른 호수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낯선 고향처럼 생경하다. 1980년대 후반 발라드, 1990년대 서정 가요와 포크, 2000년대 인디의 오래된 필름이 서보경의 색소폰, 정수민의 베이스, 최규민의 트럼펫, 황예지의 바이올린, 박기훈의 플루트와 클라리넷 연주로 현상된다.


어떤날의 서정성, 하나음악의 구도자적 순례, 동물원의 포크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가 담담하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가져온다. 모두가 장르를 고민하는 듯한 시기에 '팝'을 고민하는 작품이다. 아, 재즈 터치와 뮤지컬 < 라 라 랜드 > 속 한 넘버를 떠올리게 하는 한겨울의 '식물원'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이야기가 ‘분하고 더러운 팝’이라는 사실이다. 앨범의 빛바랜 사진 속에는 잊힌 사람들, 죄악시되었던 감정들, 사라졌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함께 투쟁하던 동지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던 염원은 '거북이'처럼 느린 시간 속 흐려졌고, 코로나19 팬데믹을 핑계 삼아 오래도록 마주하지 못한 친구는 식어버린 '보리차'처럼 묽어져 간다.


장엄한 풍경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흔한 겨울밤의 기록 같은 '붉은 밤', 그 시절에는 지옥 같았으나 훗날에는 사춘기의 치기 정도로 격하되고 마는 '중학생'의 감정이 차분하게 소용돌이친다. 노래로 표현하기에는 충분히 극적이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흘려보내기는 안타까운 미묘한 순간이다. 그래서 <수몰>은 '분한' 팝이다.


동시에 <수몰>은 '더러운' 팝이다. 옅어져 버린 상실을 기록하는 카메라는 고장 나있다. '반셔터'만 눌리는 듯 앨범은 뿌옇고 선명하지 않다. 그것이 ‘수몰’의 이야기를 서글프게 만든다.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의 고독한 독백으로부터 무너지고 마는 '어떡해'의 마음과 같다. 김창완의 동요, 동물원의 우화 같은 천진한 가수의 가창은 더욱 비극이다. 아. 이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구나. 가라앉은 것들, '일반'과 '보통'의 허들을 넘지 못한 것들의 절규가 아우성친다.


그러나 <수몰>은 '분하고 더러울'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 '싫어요'로 하루에 하나씩은 나아지고 싶다는 개인의 용감한 고백이 있고, 명절날 어머니와의 평범한 대화를 담은 '설'의 풍경처럼 일상은 계속된다. 앨범은 '가라앉음'의 기록이지 '사라지기'의 연대기가 아니다. 대지가 메마를 때 낮아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령 도시처럼 <수몰>의 기억도 상상이 아닌 실존이다.


[MV] 천용성 (Chun Yongsung) - 있다 (We're) (feat. 시옷과 바람 Siot and Breeze) / Official Music Video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천용성이다. 1994년으로부터의 기억을 되짚어 툭 내놓은 <김일성이 죽던 해>로 태어난 뮤지션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던 그의 내밀한 고백과 레트로는 당시 내겐 지나간 일을 붙잡아 노래로 기록하는 어떤 필사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수몰>을 듣고 나서 그것이 오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천용성은 집요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순간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덤덤함 시선의 이면에는 순수한 연민과 연대의 의지가 존재한다. 그의 노래 덕에 세상은 유령 도시처럼 가라앉지 않고 이렇게 단단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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