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가 꿈꾸는 입체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
지난해 하이브는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와 함께 네이버 웹툰과 함께 '슈퍼캐스팅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티스트의 세계관이 아닌 레이블 전체를 관통하는 지적재산권이다. 'BTS 웹툰'이라는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소속사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받아 창조한 새로운 이야기에 가수들이 섭외되는 개념이다. 그룹 고유 세계관이나 활동과 느슨한 연결고리는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곤란하다.
방탄소년단을 주연으로 하는 근미래 사이버펑크 장르의 '세븐페이츠: 착호',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캐스팅 된 마법 세계 아이돌 '별을 쫓는 소년들', 엔하이픈의 판타지 학창 물 '다크문: 달의 제단'이 지금까지 연재 중이다. 국내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지만, '착호'는 연재 이틀 만에 1,50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웹툰 OST 'Stay Alive'는 올해 전 세계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3곡 중 하나다. 각 웹툰에 해당하는 OST의 퀄리티도 상당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Free Falling', 엔하이픈의 'One In a Billion')
그럼에도 슈퍼캐스팅 프로젝트가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는 느낌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야 국내에서 큰 화제를 얻고 비로소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김초엽 작가의 프롤로그, 프로모션 비디오 등 많은 공을 들여 공개한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크림슨 하트'다.
르세라핌이 5월 Fearless로 데뷔했을 때부터 나는 그들의 슈퍼캐스팅 프로젝트 '크림슨 하트'가 그룹은 물론 하이브 레이블즈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프로젝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첫째로 크림슨 하트는 첫 걸그룹 웹툰이다. 둘째, 기존 활동 중인 아티스트를 서사에 캐스팅한 전작들과 달리 크림슨 하트는 그룹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콘텐츠다. 원래대로라면 크림슨 하트의 출시일은 5월 중이었다. 르세라핌이 데뷔 앨범부터 세계관곡 'Blue Flame'을 발표하고 끝없이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힌트를 던진 이유도 그만큼 이 프로젝트의 무게감이 상당한 탓이었다.
이번 프로모션 비디오의 퀄리티는 웬만한 뮤직비디오 이상이며 멤버들의 비주얼로 유추해보았을 때 오래전에 준비한 콘텐츠임을 알 수 있다. Antifragile 앨범에서만 세 곡의 퍼포먼스 (Antifragile, Impurities, No Celestial)를 선보이는 르세라핌이 첫 세계관곡 Blue Flame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푸시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 예상 공개일이 5월에서 10월로 하염없이 미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모험을 하면서 생긴 상처'를 노래하는 Impurities가 공개됐다는 데서 타이밍을 한 번 놓쳤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김가람의 학교폭력 의혹과 그룹 탈퇴가 크림슨 하트 일정에 차질을 안겼다.
지금까지 슈퍼캐스팅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는 엔하이픈과 하이브 레이블즈의 일본 보이그룹 &TEAM 주연의 '다크문 : 달의 제단'이다. 우선 ‘다크문’은 재미있다. ‘SM 플레이어’, ‘기담항설’, ‘니나의 마법서랍’ 등 작품으로 유명한 랑또 작가가 스토리에 참여하여 매력적인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학원물을 만들었다. 둘째로 웹툰에 캐스팅된 그룹의 콘셉트와 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다크문’의 아이디어는 2021년 싱글 ‘Drunk-Dazed’ 뮤직비디오에서 이미 모두 암시되었다. 웹툰을 정주행하다 보면 ‘아, 이래서 이런 뮤직비디오를…’ 싶은 지점이 상당히 많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방탄소년단처럼 이질적이거나 브랜드 홍보 콘텐츠의 느낌이 없다.
팬덤은 자신이 응원하는 그룹의 활동을 즐기다 곳곳의 미장센과 복선을 한 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즐길거리가 많아진다.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다. 자사 콘텐츠의 가짓수를 늘려 의식하지 않는 소비 경험을 늘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협업과 확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크림슨 하트는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에 중요한 분기점이다. 시작은 좋다. 굴곡을 딛고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가는 르세라핌 덕에 많은 화제가 됐다. 서사도 흥미진진하다. 자타공인 덕질 마스터 민송아 작가는 ‘나노리스트’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SF 액션 로맨스 서사를 그린 바 있다. ‘이두나!’의 독자라면 알겠지만 팬들을 ‘조련’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작화는 구구 작가가 맡아 자칫 무거운 호러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을 친근하게 풀어낸다.
최근 나는 '좋은 케이팝'을 '각 제작 분야가 정교하게 맞물려 떨어져 튀는 부분 없이 듣는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콘텐츠라 보고 있다. 하이브가 오래 공들인 오리지널 스토리를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입체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크림슨 하트’는 일단 재미있고, 기대가 되는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