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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Mar 10. 2024

졸음쉼터

삶의 운전대를 잡고 피곤하면 마음의 졸음쉼터에서 쉬어가는 여유

더는 운전하지 못해 졸음 쉼터를 찾는 형국이다. 

버틸 수가 없다.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고산증이라도 걸린 듯 메스꺼움으로 괴롭다. 예민한 피부 부위마다 물집이 솟아오르고 헛배와 엉덩이 통증은 커다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다. 신장염이 도지는 것인가, 대상포진은 아닌가, 속까지 더부룩해지니 이상한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수술이나 입원을 하는 게 낫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안간힘을 내어서 시간을 간신히 붙잡고 시료에 매달린다. 몸에 저항력이 떨어져도 그럴 수 있다는 진단에 생전 모르고 살던 보약도 지었다. 약봉지에는 이런 문구가 씌어있다. ‘편안한 마음이 보약입니다’ 그러고 보니 피부과에서나 내과에서의 진단을 종합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마음을 크게 다치고 몸을 혹사시켰다는 것을. 한의원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강조하지 않던가. 환자가 속속들이 말하지 않아도 의사는 몸의 신호를 보고 진단을 내린다.


마음을 끓이면 속은 시커멓게 탄다. 지금도 심신이 천근만근이다. 근심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던 생각을 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내게도 해당되는 것 같았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각자의 몫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려 해도 어디 그게 될 법이나 하던가. 도무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내가 바라는 효도는 자식이 문제없이 살아주는 거였다. 한데 아들네가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육아 문제라 했다. 항간에 육아문제로 이혼한다는 얘기를 허투루 들었던가.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국내라면 당장 데려와 키우고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 좌불안석이었다. 아직도 앙금이 가시지 않았던지 그 일이 잠잠해질 무렵이 되니 내 몸에서 이렇게 빨간불이 켜진 셈인 것이다. 졸음쉼터에서 거침없이 내달리는 자동차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꼴이다. 뭔가 잃어버린 듯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멍해진다.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헛배는 앞서 간 언니를 떠올리게도 한다. 언니는 마흔아홉 나이로 플라타너스 잎이 갈맷빛으로 너울대던 날 떠났다.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을진대 생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몹시도 부대끼고 통증이 심할 때는 만사가 귀찮아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댄다. 허리 협착증도 잘못된 자세에서 빚어진 결과라니 문제는 다 내게 있었음이다.


죽을병도 아닌 것이 여간 골탕을 먹이는 게 아니다. 어중간함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를 내 몸에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어중간한 인생으로 산 표징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도 깊어진다. 한의원에서 통증 완화시키는 시침을 받을 때였다. 원장은 조용히 의중을 살피며 한마디 건넨다.

“허리 협착증 외에도 온몸의 증상에 맞는 시침을 할 겁니다.”

고요히 믿음으로 몸을 맡기리라 눈을 감는다. 신경 지나가는 관이 좁아져서 나타난다는 통증처럼, 헉헉대던 굴곡진 지난날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인생은 고뇌라 한다지. 나머지 삶도 육신의 길이 그럴 테지.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 이치에 순응하며 겸손해야겠지. 마음이 허허롭다. 나는 평소 은연중에 병원서 말하는 가족력에 대한 건강 염려 증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어머니는 치매로, 언니는 위암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매였는데. 마음이 맑고 육신이 밝으면 건강은 절로 따라오는 것을. 양방과 한방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고약한 고비는 얼추 넘긴 듯하다. 오랜만에 살포시 잠에 빠졌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이 한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물을 건너다 깨었다. 꿈이다. 방금 샤워하고 나온 기분이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때마침 아들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한테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했다고. 그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부디 그래야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감사 기도가 나온다.


오늘은 몸이 우선하여 연배가 있는 분의 책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가족 동반하여 축하받는 모습이 훈훈하고 보기 좋다. 예전 같으면 내 일처럼 기쁘게 박수를 치면서도 나는 여태껏 뭐 했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관대해지려고 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것만이 내게 이로울 테니까. 숨 쉬고 있음에 웃을 수 있고, 살아 있음에 다닐 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산다는 것은 시작의 연속이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난다. 절정의 갈맷빛이 눈부시다. 수풀은 바람에 의해 파도가 일렁인다. 노약자 돌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리라. 이제야 의욕이 생긴다. 호되게 앓고 나니 한 뼘 더 커진 아이처럼 성숙해진 느낌이다. 인체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 내 영혼도 쉬 주저앉으면 아니 되겠다. 삶의 운전대를 잡고 피곤하면 마음의 졸음쉼터에서 쉬어가며 느긋하게 여유도 부려야겠다. 처음 겪는 체험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질병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끄럽게도 세상에 나만 당한 것처럼 의연하지를 못했다. 신은 맘껏 아프게 하여 정신을 차리게 한 것 같다. 아이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다. 욕심은 저 아래로 내려놓고 영혼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아픔은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끝이 보이는 그날까지 심신을 새롭게 가꾸어야겠다.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폭염이 지나가니 매미 울음소리도 잦아든다.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시침

 지은이: 양순례


시침할 때 용의 송곳니 따끔따끔

골골마다 정직하게 짚어주면


붉은 동공 깊숙이 들어가는 관문에서 성실하게

호위병 자처하면


시침을 하고 가봉까지 하고 나서 부위부위

정성을 꽂아 확인하고 얼추 끝이 나면


부시시한 근육 살리고

노골노골해진 뼈대 시치미 떼고 능청스레

잠꼬대, 용하디 용해

龍 한의원


施鍼ㅡ 침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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