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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Jan 10. 2024

봄은 가는데

지난 세월 환청으로 지난 추억 환상으로

혼자 사는 지적장애자다. 

좌우 구분 없이 신발을 신고 다녀도, 앞뒤 상관없이 셔츠를 입고 다녀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풍채 좋은 허우대는 모양새만 갖추었다. 바람이 불면 넘어지고, 모래밭에 놓이면 휘청거리는 영혼. 비 오는 날이면 허우적대고 눈이 오면 좋아라 뛰어다닌다. 젖을 뗀 지 수 십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젖내 나는 아이로 머물러 있다. 똥 싸고 팬티 바지는 발목까지 훌러덩 까내리고 화장지 죽죽 떼어, 서서 서툴게 뒤처리를 하는 사람. 늘 팬티는 항문 쪽이 누렇게 베어 냄새를 풍긴다. 밤이면 환상과 환청에 젖어 엄마를 만나는 어른 아이. 엄마 냄새를 맡으며 이불을 덮고 모로 눕는다. 불쌍한 내 새끼 볼기를 토닥이던 엄마의 소리를 상상하며 잠든다.

"아직까지 자는 거야?"

아침인가 보다.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는데 이럴 때는 요양보호사가 귀찮다.

"밥 먹자. 우리 원구 씨“

눈이 번쩍 떠진다. 먹는 게 제일 흡족하다.

"아 아이 시 심심해 "

현관문을 밀어보지만 갈 곳이라곤 노인들이 모이는 곳. 할머니들이 각종 심부름시키면 마냥 좋기만 하다. 비어있는 머리와 가슴은 육신만 떠다닌 채 세상과 동떨어졌다. 봄은 오고 가는데, 어른 문턱은 높기만 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희망은 있는 것인가.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그냥 이대로가 자유로운 것인가.

"어디 갔다 오는데?"
"싸 싸웠어요."
"누가?"
"미 미장원 하고 수 순덕이 어 엄마하고."

욕지거리로 싸움질하는 날이면 우리 원구 씨 구경거리로 쏠쏠하다.


장애는 세상을 탓할 수도, 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다. 하여 나라의 도움을 받는다. 생계비 의료비 생활지원 등등. 하지만 정작 받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빠져있다. 고기 잡아주는 것에서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제도가 아쉽다.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게 해서 삶의 질을 높이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생계비와 물질을 손에 쥐여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개개인의 장애에 맞는 단순노동이라도 하게 하여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내가 일한 대가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일깨워 줘야 한다. 어린아이로 영원히 살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커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대책이 필요하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다 보면 머릿속은 더 허예지고 좋지 못한 생각들이 지배할 것 같다.

"우리 원구 씨 병원 가자."

오늘은 정기적으로 가는 날이다.

의사 선생님은 가만히 살피며 묻는다.

"어떻게 지냈어요?"
"자 잠이 아 안 와요."
"왜 그렇죠?"
"여 여자 생각나서 가슴 두 두근두근 혀 해요."
"그래요! 잠을 좀 잘 자도록 약을 바꿔 볼게요 오!"


풋감 

지은이: 양 순 례


부슬부슬 빗낱 떠는 날

발 앞에

풋감 하나 툭 떨어진다

텃새 놀라 푸르르 날아간다


익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방금 떨어진 풋감

빗물에 구르다가 발에 체이다가

오토바이 바퀴에 펑 튕겨 나가다가


지난 세월 환청으로 지난 추억 환상으로

삽짝 거리 아이들 노는 소리 넋 나간 빗물 둥지

허둥지둥 오리궁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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