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오기로 한 결정은 제가 오로지 행복 회로만 돌려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가서 배워야지, 뭐", "부딪히다 보면 다 알게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제가 챙긴 유일한 준비물이었습니다. 원래도 계획이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타지 생활 역시 눈앞에 닥쳤을 때 몸소 체험하듯 배우는 편이 훨씬 빠르고 정확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뒤에 마주한 현실은 제 상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12월 말의 밴쿠버는 매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안개는 늘 건물 사이를 파고드는 것처럼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오자마자 부랴부랴 계약한 텅 빈 집에 가구 하나 없이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깔고 누웠을 때의 그 기분은, 설렘보다는 암담함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하루 종일 푹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계획이 없다는 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첫발을 디딜 곳이 어딘지 몰라서 모든 게 불안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지뢰 찾기 처음 시작할 때, 첫 클릭을 어디 눌러야 할지 몰라 마우스를 멈춰 세운 막막함 같았어요. 다채로운 해외 생활을 기대했던 저는 그렇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멈춰버린 일상을 한동안 마주했습니다.
막막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저는 제가 이 도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백지상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몸으로 직접 부딪혀 배우겠다"던 패기는,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웠던 꽤 그럴싸한 변명이었던 것 같아요.
만만치 않은 현실을 직시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그제야 제가 해야 할 일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게 제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다는, 약간 남아있던 자존심같은 것도 다 내다버리고, 그때부터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시시콜콜한 질문을 올리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구직자들끼리 서로 서포트하면서 정보를 나누는 그룹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자 기꺼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 외롭고 거친 해외살이를 헤쳐 나간 선배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나눠주고 싶어 했습니다.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부분은 역시 가장 막막했던 '구직 활동'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검색도 하고 AI도 활용해가며 북미식 레쥬메 형식을 흉내 내 보기는 했지만, 그 이면에 담긴 본질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특히 내 성과를 어떻게 수치화해야 할지, 나의 단점이나 과거의 갈등 상황같은 건 어떻게 풀어내야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어서 헤맬 때, 구직자 그룹에서 만난 동료들은 제게 실질적인 돌파구와 팁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직접 답해주기 어려운 문제일 때면, 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전문가나 지인들을 연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이분께 여쭤보면 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라는 다정한 안내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제 레쥬메에도 모호한 문장 대신 구체적인 데이터와 성과들이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밴쿠버에서 제 세계가 풍성해졌다는 점입니다. 용기 내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연결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만큼 제게 도움을 주는 손길도 늘어났습니다. 낯설기만 하던 도시에 조금씩 내가 아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고민과 진통을 이미 통과해온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와 응원이 되었어요.
여기에 덤으로 밴쿠버라는 도시를 즐기는 법도 함께 배웠습니다. 카페와 맛집, 여행지, 그리고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취미 활동들을 추천받아서, 저도 조금씩 이 도시랑 상호작용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모임 속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로를 세심하게 돌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누구도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모든 걸 혼자 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구나"라는 깨달음은, 막막함과 불안함에 잠시 멈춰 섰던 저에게 다시 걸음을 뗄 수 있게 해준 가장 단단한 마음의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도움을 주고받을 동료들이 생기고 레쥬메에도 구체적인 성과들이 채워지면서, 멈췄던 일상도 조금씩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속 불안이 갑자기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낯선 땅에서 여전히 구직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제가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돌이켜보면 불안이 없는 도전이 있을까요. 해외살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불안한 신분과 어설픈 소통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단지 그때 제가 그 무게를 깊게 알지 못했을 뿐이죠. 이제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든 건 아주 작은 힘이었습니다. 제겐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는 평범한 연결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나누고, 누군가의 경험담과 고생담 속에서 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방향을 찾아갔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걸을 용기가 나지 않던 어두컴컴한 길을 사람들의 조언이라는 손전등(?)에 의지해 하나씩 더듬어 가다 보니, 불안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채워졌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어 할 만한 일이라면 그건 도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도전이란 게 원래 내 역량을 뛰어넘는 지점에 도달하려는 시도이니까, 불안은 도전의 동료쯤 될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내 한계를 넘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도전이 끝날 때까지 내내 함께 할 감정일테니까요.
안개 자욱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한 걸음을 떼는 행위는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근육이라는 게 원래 고통 뒤에 따르고, 수없이 찢어지는 과정을 반복해야 비로소 단단해지는 법이니까요. 불안한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고 여러 번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무너졌다가 다시 다져지기를 반복하다보면 제 마음 근육도 조금씩 튼튼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이 불안을 기꺼이 안고 부딪히다 보면, 저도 언젠간 단단하고 용감해져 있을겁니다. 지금은 겨우 한 걸음을 떼는 수준일지라도, 언젠가는 그 어떤 길이라도(거친 비포장도로든 막판 스퍼트를 올려야 할 결승선 앞이든) 나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