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첫차의 기억. 젊은 날의 표상

by 행동하는독서

거리에서 1세대 아반떼를 마주쳤다. 아마도 족히 25년은 되었을 텐데, 깨끗하게 잘 굴러가는 모습이 기특하게 보였다. 주인이 얼마나 잘 관리했으면 저리 멀쩡할까? 나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100만 킬로 가까이 타지 않았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솟아올랐다.


IT로 전향하고 입사하자마자 첫차로 아반떼를 구입했다. 출장이 많아 꼭 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는 내게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중고라도 할부 구입이라 신입에게는 꽤나 부담이었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 형 차를 빌려 탈 때 첫 사고가 아반떼라 보기도 싫었는데 하필 아반떼가 내 첫차를 될 줄은 몰랐다.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로 나온 아반떼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뒤에서 보면 불빛이 사무라이 눈 같아 남성적이란 느낌도 받았다. 뒷모습을 보면 은근히 기분 나빠 보였는데, 내 차가 되고 나니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전 차주가 젊은 사람이었는지 차량을 투톤으로 도색을 했다. 그게 멋져 보여 구매했는데 막상 타고 다니려니 너무 튀는 것 같아 살짝 부담스러웠다. 글자 스티커를 사서 옆에도 붙였다. 어쩌면 주변 운전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누가 봐도 젊은이의 차였고, 과속할 것만 같은 차였다. 더구나 수동변속기라 기어를 낮은 단수에 놓고 밟으면 소리까지 시끄러웠다. 내가 그나마 난폭운전하는 성향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겉보기에는 그럴만한 차량으로 보였으리라.


멀리 출장을 가면 유류비 지급이 되었기에 기꺼이 차를 끌고 다녔다. 뒷자리에 노트북을 던져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돌아다녔다. 테이프에 음악을 넣어 수없이 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밤, 서해안 고속도로에 차가 없으면 과도하게 속도를 내본 적도 많았다. 젊은 시절의 피 끓는 청춘을 도로에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직장 상사들이 대부분 대우정보 통신 출신이라 대우차가 많았다. 현대자동차 남양 연구소에 출장 갈 때는 현대차가 필요했다.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 써야 했다. 연구소에 들어가는 날은 이사님까지 내 차에 태우고 다닌 적도 있다. 비록 매그너스에 비해 조촐했지만, 잘 나간다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비록 중고로 가져왔던 차였지만, 얼마나 세차에 신경 쓰고 닦았는지 모른다. 주말이면 손세차장에 끌로가서 열심히 물 세척했고, 겨울이면 스프레이 세제를 뿌려가며 걸레로 닦아냈다. 가죽 시트도 수시로 왁스 칠 했고, 에어컨에도 스프레이를 뿌려 곰팡이 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지금은 더 비싼 차를 타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첫차의 관리는 내게 특별했나 보다.


가끔은 트럭을 운전하던 친구에게 빌려준 적도 있다. 갑자기 지방 가야 한다는 친구에게 보험도 처리하지 않은 채 빌려줄 수 있었던 건 젊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지금 같아서는 그런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그때는 그런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내와 강릉으로 첫 데이트를 갈 때도 이차와 함께 했다. 강릉 바닷가에서 처음 손을 잡았고, 수동 기어 위의 손을 올려 맞잡은 채 돌아왔다. 아내에게도 하얀색 엑센트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데이트는 내 차로 다녔다. 아내와 함께 했던 부산, 거제도, 영덕, 춘천, 내린천, 가평 등 많은 곳에서 아반떼가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내린천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돌아오는 길에 물난리를 맞은 적도 있다. 주유를 위해 강남에 들어갔을 때 무릎까지 차오르는 재난을 내 차로 감당해야 했다. 다행히 시동 꺼지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바래다 주워 무척 고마웠던 은인 같은 자동차였다. 차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우리 부부의 희로애락을 같이했기에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일 년 연애 후 결혼했고 그 이후에도 아반떼는 일 년 동안 별 탈 없이 잘 달려주었다. 이 차로 6만 킬로를 탔다. 지금도 옛날 사진에 멋진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아내는 너무 튀는 거 같은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탔는지 신기하단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운 색상이긴 하다. 젊은 날의 표상으로 자리 잡은 아반떼… 지금도 거리에 굴러다닌 아반떼를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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