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변속기를 모는 여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지 모를 매력이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수동변속기 조작하는 여성을 봤다. 안락한 시트에 앉을 때만 해도 별다른 시선을 끌지 않았는데 핸들 브레이크를 내리고 1단 넣는 순간 멋지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왼발이 수시로 움직이더니 오른손으로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보는 모습도 색달랐다. 왼발과 오른손의 조화로움 속에는 어떻게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하얀색 액센트를 끌고 나왔다. 기어봉을 한번 높인 수동기어를 품고 있었는데 힘차게 기어를 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차 역시 수동이었지만 기어봉은 순정 그 상태였기 때문에 아내 차를 운전했을 때 처음에는 어색했다. 기어봉이 길었기 때문에 손잡이는 더 많은 궤적을 그렸다. 내 차가 후진에서 1단으로 10센치 정도 움직였다면 아내차는 20센치는 움직여야 했다. 그만큼 기어 주변에서 그려지는 운동성이 커서 뭔가 더 있어 보였다.
"기어 좀 천천히 넣으면 안 돼?"
내가 아내의 운전을 보고 한 말이다.
"그렇게 팍팍 넣다가 기어봉 부러지겠어."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얼마나 기어를 세게 넣던지 자칫 사제 기어봉이 부러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원래 운전을 그렇게 배웠다고 하니 할 말은 없었지만, 나와는 운전습관이 참 다른 사람이었다. 아내는 기어를 손으로 쥐고 변속했고, 나는 손가락만으로 변속했다. 나는 기어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듯이 자연스럽게 넣는 스타일이다. 짝수단으로 내릴 때도 손가락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당겼다. 그런데 아내 차를 운전하고 알았다. 궤적이 크고 기어봉이 동그란 모양이라 손바닥으로 쥐고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런 터프한 운전 실력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서 수동기어 차량을 모는 젊은 여성은 처음이었다. 운전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자기 차를 모는 여성은 더 없었다. 더구나 수동변속기라니. 덕분에 아내는 내 차를 운전하는데도 어렵지 않았다. 데이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차를 운전한 적도 많았다. 처가에 첫인사드리러 간 날에도 술 취한 나를 내 차에 태우고 서울 집까지 바래다주고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든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남자들끼리는 수동변속기를 운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같은 날 운전면허를 딴 친구는 여직 수동변속기를 운전해 본 적이 없다. 한때는 그걸 안주로 술자리를 대신한 적도 있으니,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기술이다. 군대를 다녀온 것이 벼슬이 되기도 했으니 오죽했으랴. 아무튼 수동 운전이 가능한 덕분에 친구 트럭도 몰았고, 직장에서 대리운전도 몇 번 했다. 술 마신 직장 상사의 차를 몰았다는 말이다.
대부분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변속기로 차를 출고하기 시작했다. 트럭이나 수동변속기를 쓰지 누가 불편함을 감수한단 말인가? 세상은 어찌 되었든 편한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트럭도 모두 자동변속기를 채택한다고 한다. 이제 수동변속기 차량은 특수하게 주문해야 겨우 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끌리는 순간들이 있다. 자동변속기는 참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말이 진짜로 옳다. 결혼한 후 내 차를 가족차로 바꾸고 난 뒤에도 아내가 운전하던 액센트 수동을 일부러 끌고 다닌 적이 많았다. 차 없는 고속도로에서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바꿔주면서 치고 나가는 느낌은 달랐다. 특히 내 차가 9인승 가족차였으니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하얀색 액센트는 가볍고 날렵했다.
이후에도 수동변속기 차량을 두 대나 운영해 봤다. 비록 마트 주차장에서는 식은땀이 났지만 달리는 재미는 어디다 비할 데가 없다. 특히 작은 차일수록 재미가 더하는 것 같다. 경차 수동은 저렴하기도 하지만 연비도 잘 나와준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중고차 가격이 재미없다는 것. 하지만 아내는 액센트 이후로 더 이상 수동변속기 차량에 손도 대지 않았다. 차 막히는 서울에서 수동변속기로 몇 번 고생하더니 쳐다도 보기 싫다고 했다. 결혼 전에는 경기도에서 살았고, 동네에서 출퇴근 만했던 아내는 서울의 지옥 교통에 녹다운이 되고 말았다. 자동변속기를 가지는 것일 아내의 소원이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이 간다.
수동변속기는 매번 기어를 바꿔주어야 하기에 오른손을 쉴 수 없다. 그래서 연애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운전하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하는 방법은 아내의 손을 기어봉에 얹고 그 위에 내 손을 두는 방법이 있다.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다. 아내의 왼손은 기어를 바꿀 때마다 내 오른손과 함께 춤을 췄다. 그래서 오래 잡고 있기는 힘들었다. 자동변속기로 바꾼 이후로는 이점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이미 손을 잡고 있어도 전기는 흐르지 않았다.
가끔은 운전하며 끼니를 해결해야 할 순간이 있다. 특히 운전량이 많은 사람에게는 필수코스가 된다. 수동차량을 운전하며 햄버거를 먹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다. 왼손은 핸들을 잡고 방향지시등을 조작해야 한다. 오른손은 기어를 바꿔줘야 한다. 왼발은 클러치, 오른발은 악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한다. 쉬는 사지가 없는 와중에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먹어야 한다. 차라리 김밥이라면 하나씩 쉴 때마다 집어먹으면 되지만 햄버거는 종이도 까야 하고, 내려놓기도 불편하다. 햄버거를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잡기도 하고, 가끔은 손날로만 기어를 조작하기도 한다. 왼손으로 햄버거를 잡은 채 손날로 핸들을 고정하고 왼손 새끼손가락이나 오른손으로 방향지시등까지 조작할 수 있다.
가솔린 수동은 가끔 타이밍을 놓치면 시동이 잘 꺼진다. 나는 가스, 가솔린, 디젤까지 모두 수동으로 운전해 본 경험이 있다. 그중에서도 디젤 수동은 울컥거리기는 해도 시동이 잘 꺼지지 않아 편하다. 하지만 승차감이 자동에 비해 다소 거칠다. 디젤은 알피엠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만 악셀을 밟으면 엔진음이 거칠어진다. 상대적으로 가스나 가솔린은 알피엠을 높이 써도 되기 때문에 운전이 더 부드럽다. 그래서 오히려 자동변속기는 디젤에 더 맞아 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옆 차의 기어 변속 소리를 들으면 수동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끔은 그런 차에 눈이 간다.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