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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Jul 11. 2020

가장 좋을 때인 20대는 없다

어느 20대의 건강하지 않은 몸

    

철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들 한다. 한창 날아다닐 때라고, 지금이 제일 좋다고,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지금을 즐기라고. 20대 초반인 나는 그런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열아홉부터, 첫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지금까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을 만나면 흔하게, 서두처럼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와 튼튼한 몸을 당연하게 연결한다. 건강이 최고지- 밤새도록 놀아도 피곤하지 않고, 오래 앉아있어도 허리 아플 일도 없고, 맵고 짠 음식을 먹어도 탈이 안 나고…….



안녕하세요, 건강하지 않은 스물셋 야기입니다. 작년 건강검진을 통해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반절제 수술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예, 뭐……. 수면시간이 조금만 떨어져도, 여상하게 잠을 설쳐도 다음 날 아침 무서울 정도로 컨디션이 나빠지고 매일 아침 호르몬제를 챙겨 먹는 데다 조금만 기름지고 자극적인 걸 섭취하면 식도부터 위장, 대장까지 난리가 나고 기후 변화에 몹시 취약합니다. 그리고 나름 적당히 살고 있고요.          


      




건강이란 뭘까. ‘어린 나이에 어쩌다’라는 얄팍한 동정을 받기 좋은 나이에 암 판정을 받고 이전과는 다른 몸에 적응하면서 건강이란 무엇인가, 건강한 몸만을 긍정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아픈 몸이 차별을 받는 건 온당한가? 따위를 머리 아프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는 당연스레 ‘정상’과 다른 몸을 배제한다. 여기서 ‘정상’은 몹시 좁고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최대한의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몸, 남들과 다르지 않는 몸. 흔히 2-30대 비장애인 남성의 몸으로 대변되는, 더 세세하게 읊자면 장기간 초과근무를 하고 하루걸러 술을 마셔도 다음 날 멀쩡하게 출근할 수 있는 체력 또는 정신력이 있으며 여성으로 보이는 이와 ‘정상적으로’ 연애를 하는, 뭐 대략 이쯤 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은 몸-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은 몸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태어난 이래 아픈 적 없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스로 드러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연컨대 그런 인간은 없다. 우리는 모두 아프게 되어있다. 인간의 몸이 왜 그렇게 디자인되었는지는 과학 내지는 종교의 영역이지만 우리는 아프지 않을 것, 건강해야 함을 거의 강령처럼 뼈에 새긴다. 



건강이 최고예요, 건강 꼭 챙겨요. 나 역시 애정과 염려를 담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숱하게 그런 인사를 건넸다. 어쩐 일인지 내 주위에는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로 식사를 때우고 생체리듬이 이어폰 줄처럼 꼬인 인간들로 넘쳐났다. 새벽 2시에 깨어있는 인간이 더 많다는 말이다. 그들은, 우리는 핸드폰을 하거나 내일 출근 혹은 등교를 해야 한다는 걸 부정하거나 과제를 하거나 자의 혹은 타의로 얻게 된 일감을 처리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학생 때는 내신 관리와 수행평가와 자격증 시험 따위로 새벽 두 시에 자서 다섯 시 오십 분에 일어나는 생활을 지속했고 회사에 다닐 때는 이대로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 게 억울해서 새벽 두 시까지 하는 일도 없이 잠을 끝없이 미루곤 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집요정이 되어 본가로 돌아가며 놀고먹고 쉴 땐-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취침 시각과 기상 시각이 들쭉날쭉했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서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나를 계속 깨어있게 한 건 초조함이었다. 직장에 머리를 처박던 시절은 우울이 그 동력이었고, 나는 대개 무언가는 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을 거름 삼아 적게 자고 과로했다. 초과근무가 없다고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파츠가 맞지 않는 상황에 놓이면 계산이 무의미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일한다. 여기서 ‘멀쩡하게’ 근무하라고? 모두 그렇게 다니니까? 착실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만 사람을 극한까지 내몰고 다른 사람도 다 그러니 그게 당연한 거라 말하는 사회구조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되나?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사람만, 그래서 조직에서 요구하는 극한의 생산량을 죽어서라도 맞추는 사람만이 보상을 얻을 자격과 빵과 장미를 가질 기회를 얻는 건가? 정상을 향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건가? 지구력이 약한 나는 중간에 도태되어야 마땅한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는 문장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원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한다니, 그만큼 아득하고 가슴 떨리고 부조리한 다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정상을 열망하고 노력을 지침으로 삼으며 그렇지 않은 상태를 경멸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성공 신화는 구조에 의한 패배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극소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건 나의 잘못이다. 



그건 내가 약한 탓이다. 나의 질병엔 어떤 안 좋은 생활습관 혹은 예민한 성질머리와 깊은 연관이 있을 거다. 그건 아주 희소하다. ‘거의 모든’ 청년은 기운이 넘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원래 그 나이는 철도 씹어 먹을 때다. 술집에서 밤새 달리고 조조 영화를 보러 가도 괜찮은 나이다. 

철도 못 씹고 자정을 넘어 에너지를 불사를 체력도 없고 그런 취미도 없는 나는 청춘을 즐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외에 불과한가.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없다. 때론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 이건 무력감이나 자기 불신이 아니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정말 인고의 시간을 쏟아야 이뤄지는 일이 있고, 적당히 노력을 기울이면 손에 익는 일이 있겠지.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있겠지. 



……정말 있겠지? 



자발적 무소득자 상태도 1년 반째고, 슬슬 재취업을 해야 한다. 이직이 아니라 전직이라 열심히 전직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나는 기업의 눈에 하지 않는 허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착취당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를 먼저 고민한다. 농담이 아니라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생활이 반복되면 맥락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 거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할 수 있고, 아파서 회사를 며칠 빠지더라도 비난받지 않고, 나의 건강하지 않은 몸을 미워하지 않고 내 몫의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일 인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안다. ‘20대’라는 단어에서 오는 막연한 열정 따위, 지치지 않는 체력 혹은 팽팽 도는 아이디어, 발랄하고 사근사근한- 어떤 정형화된 모습.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건강한’ 상태는 무엇인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결국 다치지도 아프지도 쉬지도 않는 ‘사지 멀쩡’하며 ‘특정 질환이 없는’ 청년이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리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의 체력을 대출하거나 안간힘을 다해 ‘괜찮음’을 가장하여 생존확률을 높인다. 아파도 안 아픈 척, 울고 싶어도 울지 않고 괜찮지 않아도 평소처럼 굴고. 여전히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건 가장 인간답지 않은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가장 인간답지 않은 상태를 기본값으로 두면서 ‘인간성’ 있는 인재를 요구하다니, 양심 없는 행패가 이 정도면 죄다.



젊고 아픈 몸은 개인의 관리 부족으로 여겨지기 쉽다. 우리는 흔히 질병을 나이 듦과 연결한다. 그 견고한 믿음은 ‘젊음=아프지 않음’으로 치환되어 다양한 몸을 지워버린다. 네 나이 때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지! 아니요, 못 하고요. 예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못 합니다. 아무튼 못 한다고요. 못 해, 못 해!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할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왜 그렇게 사고가 극단적인가요……. 당연하다는 듯 몸을 갈아서 과로하지 않고 내 몸을 돌보며 지치지 않을 만큼 야금야금해나가고 싶은데요…….  


질병은 단순히 낫고 안 낫고의 문제가 아니다. 수술이 끝났으면, 그 후 5년 동안 전이가 없으면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을 순 있겠지. 하지만 내 몸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도려내면 뚝딱 해결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란 말이다. 내 몸은 여전히 자주 아프고, 까다롭고,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까딱 무리하면 금세 컨디션이 안 좋아져 하루 내지는 며칠 일정이 틀어진다. 낫고 낫지 않음으로 이분할 수 없는 영역이 이렇게 존재한다. 내 몸 안에, 그들이 선망하는 젊은 20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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