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와 온몸으로 소통하고 만나기_작업 소개
*<고유한 몸, 고유한 언어>는 장애 어린이의 몸과 움직임 언어 연구 프로젝트의 제목입니다. 본 연구는 저를 비롯하여 배민경, 안소담 2인의 연구자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프로젝트는 서울 소재 한 특수학교에서 매주 2시간 1학년 어린이들과 만나는 수업을 통해 진행됩니다. 본 브런치 매거진에는 이 수업에 대한 기록을 게시할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몸과 움직임을 통해 ‘나’를 배우고, 배움을 통해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온몸'의 대표자 최희범입니다.
저는 2022년 6월부터 약 6개월 간 A 특수학교에서 연극과 움직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A 학교는 지체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특수학교로 발달 장애 등 복합적인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부 어린이들과는 주로 연극 수업을, 중고등부 학생들 중 중증 장애로 움직임과 의사소통이 모두 어려운 청소년들과는 움직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는 중고등부 움직임 수업에서의 경험에 크게 기초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움직임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움직임을 거의 하지 않는 이상한 수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수업을 저와 함께 한 학생들은 표현적인 움직임은 물론 일상생활을 위한 기능적 움직임이 거의 불가능하고, 언어를 통한 소통 역시 상당 부분 제한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 하는 등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움직임 수업의 형태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움직임을 할 수 없다는 전제로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제가 익히 알고 의미화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하는 대부분의 몸짓은 무작위적이고 코드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때로 리드미컬한 반복 움직임과 소리를 내는 학생도 있었지만, 이것은 저에게 강박적인 ‘문제 행동’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을 보는 저의 시선을 함께 자각하며 저는 ‘움직임’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움직임들은 ‘움직임’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중도 중복 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움직임은 어떤 것이고, 그렇게 함께 움직여 보는 과정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를 말입니다.
-몸과 능력(ability)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소매틱스
저는 학생들과 소매틱스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소매틱스(Somatics)는 육체와 정신이 통합된 전인적 주체로서 ‘몸’이 작동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자 실천법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인간의 몸과 움직임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이 겉으로 드러나는 몸짓, 소리 등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소매틱스에서는 감각과 지각으로부터 그에 따른 의식적/무의식적 반응과 동작까지 전체를 연속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로써 기존에는 무엇을 주체적으로 ‘한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감각/지각 과정과 그에 따른 몸의 반응/행동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소매틱스에서는 누군가 그저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거나 능동적이지 않다고 치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각하고, 몸 밖의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자극에 반응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매우 주체적으로 세상과 만나고 반응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몸과 행동을 바라봅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을지 궁금해하고,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각 자극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는 자극들을 더 주기도 하면서 이에 각각의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몸이 자꾸 경직되고 꼬이는 아이는 조금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편안히 잠들기도 하고, 몸이 무력하게 늘어지는 아이는 스스로 움직이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외부 세계에 관심이 없는 듯 스스로의 몸에만 반복 자극을 주던 아이가 외부 자극에 더 많이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모두 눈여겨 볼만한 작업의 효과였지만, 저는 이 작업의 의미가 단편적인 결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직접 그 과정을 이끌고 경험한 저 역시 아이들의 몸이 풍성하게 반응하는 순간순간을 기억하기 쉽지 않았고, 학교와 수업이라는 틀 안에서는 수업 성과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습니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몸과 만나고 그 과정을 풍성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2023년에는 동료 예술가 및 소매틱 프랙티셔너와 함께 팀을 꾸려 이 작업을 확장한 수업이자 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