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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Aug 19. 2020

시리아, 국경의 담배 밀수꾼


allepo, syria, 2009

시리아의 8월은 지독했다. 한낮에는 돌아다니지 못했고, 밤에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천장에 달려 느릿느릿하게 돌아가는 선풍기의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잠을 청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가장 차가운 쪽으로 돌리고 그 물을 몸에 몇 번이고 끼얹었다. 아주 약간의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던 미지근한 물은 잠시나마 시원함을 느끼게 해줬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팔과 다리에 망울망울 맺힌 물방울이 금세 증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자꾸만 내가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사람 같이 느껴졌다. 일주일에 걸친 시리아 여행이 끝이 나고 우린 다시 터키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골목 골목에 빼곡히 쌓인 수천 년의 흔적을 온전히 더듬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린 더위에 완전히 진력이 나 있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터키 안타키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두 편이 있는데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allepo, syria, 2009


“우린 국경으로 가서 터키 안타키야에 가고 싶어. 갈 수 있어?” 


“물론이지” 


일이 이렇게 빨리 풀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시리아를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택시를 올라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알레포의 거리는 낯설었다. 며칠 전 과일을 사 먹었던 과일 가게도,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다고 감탄하던 케밥 가게도, 갈까 말까 고민하던 식당도 전부 문이 닫혀 있었고 거리도 고요했다. 


“왜 모든 가게들의 문이 닫혀있어?” 


“라마단이야” 


라마단은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무슬림들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하고 하루 5번의 기도를 하는 기간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람들이 아무것도 먹을 수 없기에 가게들도 전부 문을 닫은 것이었다. 며칠 동안 살을 부비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것 같은 낯선 알레포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고 있다 보니 오래지 않아 국경에 도착했다. 시리아 출입국 사무실이 보이자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내리라고 손짓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노노”


 “우리 금방 도장 찍고 올 거 예요.”


 “노 패스포트” 


“우리는 패스포트가 있어요”


 “미, 노 패스포트”


 “뭐라고요? 아까 분명 터키 안타키야 까지 가기로 했잖아요?” 


“노 잉글리쉬” 


분명 아까까지 짧은 영어를 하던 택시 기사는 “노노”만을 외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우리는 터키까지 꼭 가야만 한다고 택시 기사를 붙잡고 애원도 하고 화도 냈으나 돌아오는 답은 “노 패스포트” 란 답변뿐이었다. 


“타바코! 타바코! 바이 바이”


차를 돌려 나가는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면세점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타바코를 연거푸 외치고 사라졌다. 벙 찐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고 얼떨떨해 있는 동안 택시는 떠났다. 넋이 나가 있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무슨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아유 오케이?" 


적막을 깬 건 터키인 부부였다. 펑퍼짐한 옷으로 푸짐한 몸매를 숨긴 중년 여자와 썩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중년 남자. 택시가 우리를 버리고 간 사연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자 그들은 서투른 영어로 자신들의 차에 태워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 했다.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차가 있었고 젊은 남자 둘과 어린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터키인 중년 부부와 아이, 삼촌들이 함께 시리아로 나들이라도 나온 듯했다. 여행은 이래서 재미있다. 어떻게 이 일을 헤쳐나갈까 좌절스러운 순간에 늘 우리를 구원하러 온 듯한 사람들이 꼭 나타났다. 방금 전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던 일은 이 친절한 가족을 만나기 위한 관문이자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승격했다. 


“진짜 진짜 너무 고마워.” 


우리는 부부의 손을 잡고 고마움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고맙다는 터키어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짧은 단어로는 우리가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를 표현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연신 숙이며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간절한 표정도 함께 지었다. 우리는 출국 도장을 찍으러 가면서 고마움의 표시라도 할까 싶어 작은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물품이 많지 않았는데, 유독 담배를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리아의 담배는 터키에 비해 1/2~1/3 정도로 싼 가격이였다. 그러고 보니 택시 아저씨가 떠나며 “타바코, 타바코” 외쳤던 건, 싸니까 꼭 사라는 의미였던가 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외침은 일종의 사죄가 아니었을까 싶다. 담배가 싸다 하니까 한 보루를 선물로 살까 했지만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는지도 모르고 이게 뭐 좋은 거라고 선물까지 하나 싶은 마음에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출국 도장을 찍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의 절차만 끝나면 바로 차를 타고 국경을 떠나는 줄만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들은 한참을 동분서주하게 돌아다니며 우리를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다. 


“근데, 뭘 하길래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걸까?”


“그러게 우리보다 출국 심사도 빨리 받을 거 같은데. 뭔가 사정이 있겠지?.”


 “차라리 택시를 잡고 싶은 심정이야.” 


“좀만 더 기다리자.”


꽤나 길고 지루한 기다림에 지친 우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자연스럽게 새어 나왔다. 하.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조금 전에는 간도 쓸개도 다 줄 것처럼 그들의 호의에 감사하더니 몇 시간의 기다림에 그 고마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정말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때쯤 아줌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시 우리 일행은 4명이었는데 아줌마는 나와 j만을 가리키며 자신을 따라 오라는 몸짓을 했다. 


“네?? 우리 둘 만이요?? 그럼 이 둘은요?” 


뒤이어 따라온 젊은 남자가 나머지 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 가족에게는 두 대의 자동차가 있었고 한대는 승용차, 한대는 봉고차였다. 젊은 남자는 한꺼번에 한 차에 탈 수 없으니 나눠서 타야 한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승용차로 이끌었다. 아까도 아줌마의 몸이 작은 얼굴에 비해 비정상적이리 만큼 크다고 언뜻 생각했지만, 나란히 걸으니 그 괴리감이 더 컸다. 봉고차가 먼저 출발하고 우리가 뒤이어 출발했다. 우리 차에 배정된 사람은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j와 나 이렇게 넷이었다. 아줌마와 우리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아줌마와 눈이 마주칠 때 마다 그냥 “헤~” 하고 바보 같은 웃음만을 지어 보였는데, “헤~”하고 웃는 것이 힘들어질 때면 경치를 보는 척 반대편 창을 바라보았다. 국경을 넘고 몇십 분이 지났을까? 조용하던 차 안에 부부의 대화가 이어진다. ‘저녁 식사를 뭘 할까?’에 대한 이야기인 건지, 오늘 나들이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는 건지,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둘의 대화는 사뭇 진지하다. 


“뭐지? 둘이 싸우는 건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무슨 일일까?” 


진지한 대화가 끝이 나고 허허벌판에 차가 멈춰 섰다.


 “뭐야? 진짜 싸운 거야? 설마 아줌마를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부부는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을 밖으로 뻗으며 내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들은 분명 우리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밖을 유심히 봐도 보니 버스는커녕 택시도 잡을 수 없는 외진 도로 한복판이었다. 고작 이곳까지 차를 얻어 탈 요령이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거고 그렇게 고마워하지도 않았을 거다.


 “너희가 우리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기로 했잖아. 여기에서는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너희가 한 말을 지켜.” 


우리의 영어를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노! 노!”를 외쳤다. 우리보다 먼저 가던 일행의 차 역시 멈춰 선 채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강경한 태도를 예상치 못했다는 듯 아저씨는 앞차의 젊은 남자들과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는 돌아와서 검지 손가락을 허공에 가리키며 ‘홈’ 하고 말하고 그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겨 ‘버스터미널’이라고 말하고 다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자신의 집에 갔다가, 버스터미널에 데려다주겠다는 것 같아.” 


“근데, 갑자기 왜 여기서 내리라고 한 걸까? 너무 이상해.” 


기분이 나빠졌다.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그들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먼저 호의를 베풀겠다고 나서고서는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차 안은 급격히 싸늘해졌다. 나는 아줌마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적당히 번화가 같은 곳이 나오면 내리자고 입을 모았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길을 지나면서 차는 심하게 덜컹거렸고, 나는 아줌마와 다리가 살짝 닿았다. 당연히 푹신푹신 할거라 생각했던 아줌마의 몸은 딱딱했다. “의외로 근육질인가?”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인위적인 딱딱함이었다. 그녀의 다리 주변에는 살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내가 다리를 가리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씨익 웃으며 헐렁한 바지를 올렸다. 그녀의 다리는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담배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의아했던 모든 궁금증이 한 번에 풀리며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들은 담배 밀수꾼이었던 거다. 터키보다 담뱃값이 현저하게 싼 시리아에서 담배를 대량 구매해서 몇 배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족여행 인척 위장한 것도 모자라, 외국인인 우리와 함께하면 의심을 덜 받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를 이용한 거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국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으나, 이용당하는 사실도 모르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고마워하던 우리의 꼴이 우스워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부의 집은 마당이 딸린 넓은 집이었다. 마당에는 아이들이 소리를 내며 뛰어놀고 있었다. 부부와 함께 나타난 이방인이 신기한 듯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버스터미널까지는 우리가 알아서 갈게요.” 


우리가 가려고 하자 아줌마는 우리 손을 이끌고 집 안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괜찮다고 그 초대를 만류했으나, 우리를 따라 우르르 쫓아 들어오는 아이들과 해맑게 웃는 아줌마를 끝내 이길 수는 없었다. 집에는 두 명의 여자가 더 있었고 마당에서 놀다 우리를 보고 따라 들어온 아이와 집에 있던 아이들은 합쳐서 여섯이었다. 세 명의 부인과 여섯 명의 아이라고 우리는 자연스레 추측했다. 가장 젊은 여자가 우리에게 환타를 가져다줬다. 우리는 네 명, 컵의 개수도 네 개. 나는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에게 같이 먹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아저씨는 썩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노!! 라마단.”


아저씨는 법은 지키지 않아도 라마단은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목이 마른 지 입을 자꾸만 다시면서도 그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아저씨 뒤로는 부인이라 추정되는 두 명의 여자들이 몰래 밀수한 담배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추를 널 듯 바닥에 한가득 널려있는 담배를 보자니 그 모습은 범죄라기보다는 가내수공업에 더 가까워 보였다. 우리는 그 기묘한 장면을 바라보며 환타를 계속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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