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증권거래위원회는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기 위해 기관투자자들에 여러 가지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억 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들이 분기별로 포트폴리오 내역을 공개하는 13F이다. 시장의 큰손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일종의 보유 현황 보고서인 셈이다. 또 다른 중요 보고서 가운데 하나가 내부자의 거래를 알리는 Form4이다. Form4는 이사회 이사, 10% 이상의 대주주 그리고 CFO와 CEO 등 주요 경영진이 주식을 거래한 경우 2 영업일 안에 매매 사실을 신고하는 서류이다.
지난달 말 연차 보고서를 발간 이후 이달 초 신임 CEO 그레그 에이블은 CNBC와 인터뷰에서 자사주 매입 재개 사실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는 버크셔 해서웨이 호의 선장이 된 이후 대중을 상대로 한 에이블의 첫 번째 행보이자 주제가 자사주 매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자사주 매입 재개의 의미를 짚어 봤다.
2026년은 버크셔 해서웨이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구조적 변곡점이다. 1965년 이후 60여 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레그 에이블(Greg Abel)이 새로운 CEO로 공식 취임하며 본격적인 포스트 버핏 시대가 개막했다. 워런 버핏은 이사회 의장(Chairman)으로서 여전히 주요 자본 배치와 보험 인수 업무에 조언을 제공하고 있으나, 기업의 실질적인 운영은 온전히 에이블의 지휘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리더십 전환기는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시점과 맞물려 있다. 시장은 인플레이션 고착화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불확실성,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극심한 변동성을 겪고 있다. 특히 버크셔 해서웨이는 2025년 말 기준으로 현금과 미국 단기 국채 보유량이 약 3,733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고점에 달해 마땅한 대규모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을 방증한다. 시장은 그동안 막대한 현금 요새를 구축한 버크셔가 이 자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리고 이달 초에 시장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놨다.
에이블은 CNBC와의 첫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사주 매입 재개 사실을 다음날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버핏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내재가치 기준을 충족할 때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원칙을 따랐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에이블 개인의 주식 매수다. SEC Form4에 따르면 에이블은 3월 4일에 취소가 가능한 신탁을 통해 자신의 연봉 실수령액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버크셔 주식을 매수했다. 세금을 제외한 연봉은 대략 1,500만 달러 정도이다. 그는 또 자신이 CEO로 재직하는 동안 해마다 급여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자신과 버크셔의 주주는 재무적으로 운명 공동체이며 버크셔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알리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언론 보도 & SEC 공시 종합
에이블의 개인 차원의 자사주 매입과 별개로 버크셔 해서웨이 법인도 같은 날 2억 달러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버크셔의 본사가 있는 오마하의 오마하투데이(Omaha Today)는 지난 3월 14일에 버크셔 해서웨이가 프록시(Proxy) 공시를 통해 3월 4일에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주식 종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클래스 A 주식 309주에 상당하는 2억 2,600만 달러라고 전했다.
버크셔의 자사주 매수는 2024년 5월 이후 22개월 만에 처음이다. 버크셔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을 때 자사주를 매규모로 매수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만 270억 달러의 자사주를 매수했고 이후 2023년과 2024년 5월까지도 120억 달러 이상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2024년 5월 이후에는 미국 시장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금까지 자사주 매입이 전면 중단됐었다.
출처: 언론보도 & SEC 공시자료 종합
월가와 투자 커뮤니티의 반응은 엇갈린다. 투자은행 UBS는 3월 4일 기준 버크셔 주식이 내재가치 대비 약 5%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2018년 3분기 대규모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이 시작될 당시의 평균 15% 할인율과 비교하면, 이번 자사주 매입이 주가에 미치는 단기적인 방어력은 과거 대비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투자 커뮤니티인 심플리 월스트리트는 이번 자사주 매입 재개와 에이블의 개인 주식 매수가 단순히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이는 포스트 버핏 시대에 자본이 어떻게 운용될 것인지, 그리고 신임 CEO가 주주들과 어떻게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투자 전문 매체 모틀리 풀은 에이블이 월가에 버크셔 주식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신호를 보냈다고 극찬했다.
CNBC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버크셔의 자사주 매입 재개와 에이블의 개인적 주식 매수는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니라 버크셔와 자신이 주주들과 경제적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번 자사주 매입의 재개는 버크셔의 확고한 철학과 자본 배분 원칙이 발현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에이블이 지난달 28일에 주주들에게 공개한 서한의 행간을 보면 이런 철학과 원칙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이블은 주주 서한에서 버크셔의 문화를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규정했다. 특히 찰리 멍거가 생전에 “그레그가 문화를 지켜낼 사람”이라는 발언을 언급하면서 창업자들이 구축한 주주와의 동반자 관계를 영구히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에이블이 세후 급여 전액을 회사 주식 매입에 투입한 것은 CEO 스스로 주주들과 완벽하게 동일한 재무적 운명을 공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실천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출처: 그레그 에이블의 주주서한
이번 자사주 매입은 또 버크셔의 철저한 자본 배분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에이블은 서한에서 내재가치를 보수적으로 산정하여 그보다 아래에서 거래될 때만 버크셔 주식을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에 발표한 자사주 매입 재개라고 할 수 있다. 버크셔는 2025년 4분기를 기준으로 약 3,730억 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규모 주식 매수나 M&A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여전히 주식 시장이 고평가 돼 있고 코끼리 사냥을 통한 효율적 M&A가 어렵다는 판단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싸게 주식을 매수하거나 M&A로 자금을 낭비하는 대신 자사주 매입이 자본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경영진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그레그 에이블의 주주서한
실제로 미국 개인 투자자 플랫폼인 시킹 알파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버크셔의 시가총액은 버크셔의 내재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시킹 알파의 분석에 따르면 버크셔의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은 약 1.4~1.5배 수준으로 과거에 자사주 매입에 나섰던 수준과 비슷한 구간에 머물러 있다. 복합 기업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여러 자산군을 합산 가치 평가 방식으로 쪼개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아래와 같다.
사업 부문 가치: 2025년 영업이익은 444억 8,600만 달러에 S&P500 시장 평균 멀티플인 28.67배를 적용할 경우, 비상장 영업 자회사의 적정 가치는 약 1조 2,750억 달러로 산출된다.
상장 주식 포트폴리오: 애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등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형주와 기타 보유 종목 그리고 일본 5대 상사의 지분을 포함한 주식 가치는 약 2,740억 달러에 달한다.
현금 및 단기 국채: 2025년 말 기준 약 3,733억 달러로 집계된다.
보험 플로트(미래에 지급해야 할 부채): 약 1,760억 달러.
총 내재가치: 사업, 포트폴리오 그리고 현금성 자산의 합계에서 미래의 부채인 보험 플로트를 뺀 순 가치는 약 1조 7,463억 달러이다.
위에서 계산한 1조 7,463억 달러의 내재가치는 3월 20일 기준 1조 400억 달러에 달하는 버크셔의 시가총액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에이블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 가치보다 순자산 가치가 더 높은 버크셔의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이 고평가 된 다른 기업의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거나 새로운 기업을 비싼 가격에 인수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그만큼 주주가 보유한 개별 주식의 가격이 올라가는 가치 창출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 막대한 현금 가운데 일부를 배당금으로 지급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에이블은 주주 서한을 통해 이익 잉여금 1달러가 주주를 위해 1달러 이상의 시장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있는 한 배당은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배당금 지급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세금 부담을 안기고 회사의 자본 유연성을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을 비축하여 시장 하락할 때 유동성 공급자로 나서거나, 주가가 저평가되었을 때 자사주를 매입하여 기존 주주들의 소유 지분을 증대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주주가치 창출 방식이라는 버핏의 기존 방침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2026년 3월 4일 공시된 자사주 매입 재개와 내부자 매수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여전히 버핏의 철학을 계승하는 가운데 철저한 원칙과 펀더멘털에 기반한 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블은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가치의 상승을 선호하고, 막대한 현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버크셔가 선호하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을 때만 방망이를 휘두를 것이라는 버핏과 멍거의 원칙을 다시금 각인시켜 주었다.
특히 급여 전액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행동은 에이블이 주주 서한에서 강조한 것처럼 주주들의 이익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으며 직원들이 주주들의 자산을 마치 자신의 자산처럼 관리한다는 기업 문화를 경영진 스스로 실천한 사례이다. 이는 임직원과 주주의 가치를 완벽히 동일시하는 동반자 정신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에이블의 새로운 리더십과 주주를 동반자로 생각하는 정신은 다가오는 2026년 5월 2일 오마하에서 열릴 연례 주주총회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날 전망이다. 에이블은 이번 주총을 주주들의 날(Owners' day)로 규정하고 본인과 아지트 자인(보험)은 물론 케이티 파머(BNSF), 아담 존슨(소비재·서비스·소매) 등 핵심 자회사 책임자들도 함께 단상에 올라 각 사업 부문의 도전과 기회에 대해 대본 없는 열린 소통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험, 철도(BNSF), 에너지(BHE) 등 거대한 실물 경제 자산들이 만들어내는 튼튼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1조 7,463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지닌 거대한 항공모함이다.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이라는 폭풍이 다가오는 망망대해에서 에이블 함장이 지휘하는 버크셔 호는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복리의 마법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힘찬 첫 출항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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