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메모 #3: "미묘한 메모의 묘미"
- 제퍼의 메모:
이 책 마지막 페이지 '나오는 말'에서 작가는 말한다.
"메모를 시작하는 순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알고 있던 게 새로워진다."(p. 198)
이 문장을 읽으니 숨결이 낮아지며 가슴속에 햇빛이 만드는 윤슬이 가득한 잔잔한 호수가 들어찬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을 통해 나를 비춰보기 위해 메모했던 게 아닐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도태되고 싶지 않아서 그것으로부터 나와의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적고, 쓰고, 기록해 온 것은 아닐까! 렌즈의 방향이 달라지면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서로 다른 시•공간 위에서 하나의 소우주인 '나'라는 존재로부터 비롯되어 쓰는 행위에는 세상을 바라보고 포용하는 내 마음이 담기고, 나의 시각이 미치는 거리만큼 나를 둘러싼 주변에 클론(clone)과도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으로 뻗는 손짓, 몸짓이고, 그것의 농도와 길이가 짙고 커질수록 나는 세상 속으로 깊게 멀리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메모의 주체는 '나'여야 하고 '나'로부터 세상으로 확장되어야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알고 있던 게 새로워지는 순기능이 이루어질 거라고 이번 기회에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는다.
4. 메모하는 사람: 메모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여행에서의 메모>
- 여행에서의 메모가 특별한 이유는 공간을 함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여행지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노트는 여행 중인 나의 눈이 담겨 있다. 사진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저장한다면, 노트로는 '어떻게' 보았는지 저장하게 된다. (p.145)
- 제퍼의 메모: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어도, 아무리 훌륭한 사진이어도 낯섦이 가득한 어리둥절한 내 눈, 호기심과 황홀함이 흘러넘치는 내 눈에 담기는 것만큼 여행하는 장소를 온전히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무엇'이라는 사실을 보고 알게 되지만, 여행하면서 남긴 메모에는 그 '무엇'을 내 생각, 기분에 따라 소위 내 맘대로, 나 편한 대로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자유와 변수가 작용하니까. 타인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여행지 또는 실물과 나의 렌즈(눈) 간의 직거래랄까! 여행에서의 메모는 '레알(real)'의 참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든다.
5. 메모에 관한 단상: 호모 스크립터 Homo Scripter
<나는 메모한다, 존재한다>
- 글을 시작하기 위해 키보드에 두 손을 얹으면 피아니스트가 된 것 같다. ~ 혼자 앉아서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다. (p. 170)
- 제퍼의 메모:
초등학교 4학년 크리스마스 즈음 겨울방학이 시작된 그다음 날, 매서운 칼바람이 살갗을 에이는 어스름한 이른 아침 나는 털외투, 털모자, 벙어리 털장갑으로 중무장하고 무거운 피아노 책가방을 들고 옆동네 피아노 선생님댁으로 향한다. 몹시 추웠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둥실거리고 발걸음은 신나서 날아갈 듯 가볍다. 방학이 되면 선생님께서는 내 레슨 시간을 아침 8시로 정해주셨다. 그즈음 나는 소나타 레슨을 집중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피아노 위에 메트로놈(metronome)을 작동시키고 곡의 템포를 몸으로 느끼고 익히게 하셨고 소나타 연주곡이 담긴 오디오테이프를 틀어 곡을 감상하는 시간을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등 어마어마한 소나타의 거장들을 만나는 것에 손에 땀이 배일 정도로 긴장되었다. 떨림과 벅참이 공존하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물러설 자리가 없는 도전을 마주한 이의 외로운 느낌과 신 세계로 들어가는 이의 담대함이 가슴속 양쪽 저울에서 평형을 이루며 어린 시절 피아노 실력에서도 정신적인 면에서도 퀀텀점프를 경험했던 잊지 못할 귀중한 선물이었다.
한편 그때는 어려서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싸늘하고 촉촉한 겨울 아침의 공기를 마시며 꽤 긴 거리를 걸어가서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늘 긴장감과 저변에 두려움과 얼마간의 외로움 비슷한 것을 가졌던 것 같다. 소나타곡을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하여 연습을 충실히 하고 싶다는 어린 나의 바람에 마음이 나지막이 달그락거렸다. 그래서 아직 따스한 이불속에서 방학의 특권인 늦잠을 즐길 동생들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사고의 힘과 실력은 외로움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외롭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시간이 주는 선물은 그 과정을 꿋꿋이 이겨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다. 많든 적든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속의 갈등과 번뇌를 이겨내는 단련으로 글쓰기와 피아노 연습은 적절하고 바람직한 예다. 작가의 문장 "글을 시작하기 위해 키보드에 두 손을 얹으면 피아니스트가 된 것 같다."는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어린 시절 한 때를 불러일으켰다.
<궁극의 메모 앱을 찾아서>
- 중요한 아이디어는 다시 찾아오게 돼 있다. ~ 종이 위에 뭔가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새로운 생각을 시작한다 ~ 종이는 우주와 같다. ~ 결국 우리 모두 종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p.184)
- 제퍼의 메모:
대학교 다닐 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책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을 읽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미래 사회는 '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가 될 거라고 했다.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속으로 비난도 했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맥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읽고 생각해 보기도 전에 그 여섯 글자가 마치 주홍 글씨처럼 무시무시하게 느껴졌고 그런 사회를 상상하니 두려움이 음습했다.
종이에 쓰인 문자로 책 읽고 공부한 것을 종이에 쏟아내며 사람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과 성숙을 하는데 그 필수불가결한 종이가 없어진다니. . .책벌레까진 아니어도 책 또는 종이 없이 하루라도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나에게, 엄청 많은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고 같았다, 그랬을 것이다. 우주와 같은 종이였기 때문이다. 종이에 박힌 글자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머릿속에 축적된 것들을 종이에 또박또박 꺼내놓으며 우리는 한 인간으로 영글어가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이 있는 사회'여서 다행이고, 책의 위상이 꺾이지 않아서 흐뭇하며, 읽고 쓰기의 저력이 건재해서 든든하다. 종이의 불멸을 바란다. 모두가 종이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작가의 예언이 적중하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바닷가 모래알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원초적인 방법으로 메모하는 나래를 언제까지나 펼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공간은 작가의 경험과 노력의 밑거름으로부터의 통찰과 사색, 창의성으로 촘촘하다. 긴 시간에 걸쳐 게으르거나 지치지 않고 부단히 읽고, 생각하고, 적고, 쓰고, 기록하는 작가의 집념과 실천의 힘을 체감할 수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지는 못해도 제목이 눈에 들어와 읽으면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행운의 느낌이 가슴에 밀려온다. 이번 책도 그러해서 마음이 넉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