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만에 넘긴 마의 8주
환한 빛줄기가 나를 감싸는 줄 알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턱을 약간 들어 빛이 오는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런데 일순 눈앞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눈을 떴다. 먹색의 널따란 보자기 같은 것이 흐물거리며 나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쉬지 않고 도리질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필사적인 마음으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 검은 정체는 나를 완전히 장악했다. "안 돼요. 그러지 말아요. 내 아기 데려가지 말아요." 아무리 소리치고, 애원했지만 그 검은 그림자는 나를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키니 방안 침대 위였다. 깊은 밤이었고, 이마와 손바닥이 촉촉하게 땀에 젖어 있었다. 몸이 후들거렸다. 옆에는 남편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몇 번이고 떠올렸다. 또 악몽이었다. 이번에도?
슬픈 예감이 비수처럼 꽂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날짜를 세어보니 정확히 8주 차였다. 아~! 절망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비슷한 악몽을 세 번째 꿨다. 이번에도 임신 8주를 무사히 지나지 못했다는 걸 암시한다. 며칠 후, 서늘한 수술대에 누워 세 번째 수술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정했다.
첫 번 째 자연 임신 이후 내 수정란은 고집스럽게 8주의 고비에서 착상을 하지 못했다. 첫 유산 후 병원에서 배란일 조정을 권유하여 그 후 몇 년 동안 매 달 두어 번씩 산부인과를 드나들었다. 수 십 번의 수정 실패로 인해 몇 곱절의 실망과 상실감을 겪어내야 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상황을 정리했다. 통상 28일 배란주기를 맞추기 위해 몸이 불편해지는 주사를 그만 맞고, 처음에 자연 임신이었으니 나와 세상과 인연이 있는 생명이면 다시 자연스럽게 올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단정했다. 그러고는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 대신 남편과 여행을 다녔다. 2006년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임신을 위한 인위적인 노력에서 벗어나 본래의 리듬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일에 열중하는 시간들이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렇게 2년 여를 지내던 어느 무르익어 가는 봄날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무언가 나를 향해 왔다. 달려왔다. 그러나 달랐다. 무섭지 않았다. 도리질도 손사래도 필요 없었다. 두 팔 벌려 품으면 되었다. 큰 모션으로 안았다. 그것이 내 품에 흡수된 듯하다고 느낀 순간 눈이 떠졌다.
까만 밤, 방안 침대 위였다. 벌떡 일어나지 않고 누운 체였다 고개를 돌리니 남편은 아무 기척 없이 자고 있었다. 얼굴과 손바닥을 더듬었다. 식은땀에 젖어있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청량했다. 직감했다. 확실한 태몽이었다. 너무도 선명했다. 이번엔 생명의 인연이 내 몸에 무사히 안착했다는 거다. 이렇게도 다르구나! 삶과 죽음의 신호는 극명하게 달랐다. 빛과 어둠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태몽은 소름 돋게 선명한 거구나. 슬로 모션으로 내게 생명의 잉태를 명확하게 알려주는구나.
그렇게 나는 마의 8주를 넘기고 고약한 입덧의 세상으로 안내되었다. 임신기간 내내 누워있어야만 하는 불합리한 덤도 있었지만 2008년 11월 그간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꽤 견딜만한 13시간가량의 진통 후 별다른 난관 없이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간의 고생들로 응어리져있던 감정들이 눈 녹듯 녹아 온데간데없었다. 순조로운 자연분만을 보상으로, 건강한 아기를 선물 받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새롭게 다가올 날들을 맞이하기 위해 머릿속 일부 기억을 리셋했다.
핀터레스트
삶이라는 장은 문제의 연속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나름의 해답을 갖고 있다. 첫 임신으로부터 무사 출산에 이르는 8년의 시간을 지나며 내가 확실하게 느끼고 깨달은 바다. 문제의 경중에 따라 해결하는 법은 달라진다. 때론 해결하지 않고 흘러가게 두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문제 그 자체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그로 인해 마음속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도 상황도 그 중심에는 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도 나여야 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힘겨워도 문제를 겪어내는 것은 위대하다. 그 과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답을 찾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