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쫓는 아이

Step-by-Step

by 제퍼
현재의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에 올인하다 보면 뿌옇게 불투명해 보이던 미래가 한 뼘씩 모습을 드러내며 길이 만들어진다.


대지가 깊은 골을 만들며 둘로 갈라지는 것처럼 찾아온 급격한 성장통으로 몸과 마음이 요동하는 어지러웠던 여섯 번의 계절을 넘어서는 2023년 7월 아들의 중3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다.


기말 시험이 끝났고 시험 기간이라 중단했던 독서도 방학 시작하면 이어가기로 합의하고 아들도 나도 방학 전까지 "no burden days"를 즐기기로 했는데, 해가 져도 후텁지근한 삼복더위에 아들은 하교 후 방문을 굳게 닫고 제 방에 틀어박혀 있기를 며칠 째 하고 있었다.


아들의 물리적인 행동은 문제 될 게 없었다. 본능적으로 긴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의 고요함이었다. 친구들과 또는 혼자 한강으로 이어지는 개천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시험이 끝난 홀가분함을 만끽하겠구나 했던 나의 예상과 다르게 골똘히 무언가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의 짙은 눈빛이 말해주었다.


음악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아들이 불쑥 입을 열었다. "여름 방학 계획을 세웠어." 잠시 침묵. 내가 물었다. "며칠 동안 그거 했어?" 피식 웃으며 "응.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서." 했다. 아들을 향했던 기존의 긴장이 놓이는 동시에 새로운 긴장으로 마음이 살짝 조였다. "그래서 며칠 두문불출한 거네. 어떤 계획인지 궁금하다.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자." 궁금함으로 마음이 쿵쿵 울렸다.


그날 우리는 긴 저녁 식사를 했다. 무슨 동기로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인지에, 계획표를 채워나갈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그리고 잘 실천해서 무엇을 얻어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지에 대해 아들은 나지막이 이야기를 풀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들의 모든 말마디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였다. 놀라웠다. 언제 저렇게 컸지! 마음이 훌쩍 크는 게 보이는구나! 내게 말을 하는 사이사이 깍지를 낀 두 손으로부터 진지함을 보았다. 무엇보다 그의 눈이 깊어졌다.


차갑고 무뚝뚝하게 뒤엉켰던 지난 1년 6개월가량의 아들의 마음이 무엇을 향해 풀어나갈 것인지 그 실마리를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대화를 하는 동안 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아들은 자기 자신을 처음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낯섦과 무지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숱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그 낯섦과 무지로 인해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차갑고 무뚝뚝한 보호색으로 숨기고 치열하게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메타인지 과정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방학 동안의 계획은 심플하면서도 촘촘하게 짜인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계획을 말해주며 내게 작은 도움을 청했다. 실천이 흐트러질 때 바로잡아 달라고 말했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기꺼이 콜!


아들이 자신에 대해 뚜렷한 어떤 한 가닥을 잡은 것이 경이로웠다. 심적으로 나보다 더 힘들게 보냈을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했다. 마음의 혼란을 걷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꿈꾸는 패기를 장착한 것이 고맙고 대견했다.


아들의 변화와 성장의 수면 아래에는 깊어졌지만 여전히 따뜻한 눈빛, 일순간 무장해제하는 미소년 같은 미소, 제법 늠름해졌지만 몸에 배어있는 다정하고 귀여운 동작들이 살아 있는 것에 안도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말없이 아들의 손과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온 느낌이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수 있다"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한 달의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삐걱거리면서도 마지막 날까지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에 길러진 어떤 습관의 힘 때문이었다.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거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온 책 읽기 덕분에 그 계획을 매일 실천하는데 거부감이 없었다고 아들은 언급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독서로 이어지는 하루 네 끼를 먹어온 것이 도움이 되어서 흐뭇하고 다행스러웠다. 독서는 아들에게 비빌 언덕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모습에는 친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했다. 눈빛, 미소, 그리고 언행이 어릴 적 아이 같으면서도 성큼 성숙한 태를 보였다. 한 존재가 퀀텀 점프하는 물리적 현상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일정에 따라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교 두 곳을 방문했었다. 아들은 과학 프로그램과 실험실에 반하여 가고 싶은 학교를 정하고 왔다. 몇 년 전까지 자사고였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오는 학교라고 알려져 있는 그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의 1% 노파심으로 중학교 학업성적을 그대로 유지하기 힘겨우면 안 되는데... 잠시 걱정했지만, 중3 여름 이후를 지내는 아들을 보고 남편과 나는 이제 우리는 아들의 자신에 대한 결정에서 한 발 물러서도 되겠다고 직감했다. 아들은 전적으로 본인이 선택한 고등학교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고 애교심을 발휘하며 성실하고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감추고 있던 아름다움을 펼치는 꽃봉오리처럼 아들의 십 대 후반은 눈부시게 타올랐다. 1학년 학급회장에 이어 2학년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고3은 수험생이라 고2가 전교회장 역할을 해야 해서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는 학업 면에서 고3보다 더 중요한 고2에 회장 역할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려 슬쩍 만류해 볼 생각이었다.


그것도 내 걱정의 일부였을 따름, 남편은 아들의 결정을 지지했고 아들은 도전의사가 확고했다. 그래서 응원하고 지지했다. 소견 발표부터, 유세 활동을 거쳐 압도적 차이의 투표 수로 당선되자 아들은 한껏 고무되었다.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며 가슴 벅차했다. 아들의 항해가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이후 한 해 동안 아들은 스스로의 약속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지켜나갔다. 내신, 수행평가, 생기부 활동과 회장 활동을 병행하느라 늘 수면부족으로 피곤한 얼굴이었다. 지칠까 병날까 걱정되어 "힘들지? 쉬엄쉬엄해도 괜찮아." 위로를 할라치면 아들은 힘든 만큼 보람 있고 좋으며 또 걱정하시는 만큼 힘들지 않다고 역으로 걱정을 덜어주었다. 좋아서 기꺼이 하는 고생에 보탤 말이 없었다.


왕성한 1년을 보내고 지난 12월 차기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고 아들은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기분을 묻는 내게 학교 측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내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말고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후회도 미련도 없고, 학교를 위해 고민하고 일하는 게 정말 재밌고 자랑스러웠으며, 당선된 후배가 이어서 잘하기를 바란다고 맑은 미소로 소회를 밝혔다.


그랬구나! 그래서 너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그토록 푸르게 빛났구나! 할 일을 다한 이에게 찾아오는 평온이 너에게 내려앉았구나! 그만의 멋스러움에 가슴이 저렸다. 아이는 내 손길을 벗어나는 시기에 이르면 스스로 자신의 별을 찾아 질주하기 시작하고 놀랍게 일취월장함을 깨달았다. 어린 생명의 자생력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오며 숙연해졌다. 아이와 함께 하며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였는지 반추의 시간을 되감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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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기로 악명 높은 고3 수험생 대열에 들어간 아들은 겨울방학을 시작으로 자신의 모드를 180도 전환하여 칩거에 들어갔다. 자신의 별을 쫓는 여정을 다시 시작한 줄로 안다. 무척 고되고 힘들 줄 안다. 아들은 수도 없이 흔들리겠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다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리라는 믿음을 내 가슴에 심는다.


장차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진정한 알파 메일(Alpha Male)이 되고픈 그의 꿈과 야망에 나의 폐부로부터 끌어올린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힘차게 쏘아 올린다. 아들의 존재로 인해 나 또한 거듭나게 되고 또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갖는 선물을 받았다. 자신의 별을 쫓는 긴 여정을 시작한 그의 푸른 꿈과 눈부시게 피어날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떨어져 함께 을 것이다. 결코 마르지 않는 무언의 사랑을 전하며 아들이 가는 길에 편안한 동반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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