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습격
온도차가 갑자기 커지면 적응하느라 몸살을 치른다.
사람이 내뿜는 마음의 온도 변화는 민감하여 주변으로 발산되는 기운을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 변화가 극적일 때는 당황스럽고 두렵다. 무엇보다 마음이 춥다.
"내가 알아서 할게"를 전조라고 한다면 수개월의 잠복기를 두었다가 중학생 교복이 완연히 익숙해진 그 해 늦가을, 아들에게 소위 말하는 '사춘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은 목소리의 변화였다. 계이름 '솔'에 가까운 하이톤의 맑은 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변성되었다.
중2가 되어서는 사춘기 소년의 흔한 특징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로부터 한동안 나를 들끓게 했던 아들의 사춘기 열병의 두드러진 특징은 '차가움'과 '무뚝뚝함'이었다.
아빠, 엄마와의 외출이나 여행보다는 친구들과 자전거 타는 것을 더 즐거워했다. 뭐, 그 정도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친구들도 자전거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고 아들에게 친구와 자전거는 편안함과 쾌감을 주는 소중한 벗이니 존중해야 마땅했다.
대신 늘 함께 하던 시간들을 차츰 사춘기에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그걸 아들에게 표현하면 오히려 역효과일 수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당시에는 몹시 슬펐다.
함께 했거나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싫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사춘기 특유의 짜증이나 이유 없는 반항은 딱히 없었지만 대신 웃음기 없는 낮은 목소리로 이래서, 저래서 싫다고 논리적으로 무게를 잡았다.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꼼짝없이 그 무게에 짓눌렸다.
아주 다정하고 명랑했어서 말도 마음도 반토막이 난 모습이 너무 차가워 내 마음은 '겨울왕국'에 갇힌 느낌이었다. 자고 나니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180도 돌변한 아들 모습을 어쩌면 좋겠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 왈, 다 한 때고 크고 있다는 거니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고, 호르몬의 힘을 거스를 재간 있느냐고, 물 흐르듯 그냥 두면 다 지나간다고, 그렇게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기라고 위로 겸 충고를 했다.
남편의 말도 적잖이 의지가 되고 사전 학습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이 보이는 흔한 특징들에 해당되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확연히 달라서 몹시 낯설고 냉가슴을 앓았다. 과연 그 한 때가 얼마 동안일까? 언제까지인지를 알면 어떤 것도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을 텐데.
때론 불특정 신을 향해 원망을 던지기도 했다. "이렇게 달라지게 할 거면 어릴 때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어여쁘게 해 주시지, 돌변시켜 나를 꼭 이렇게 춥게 만들어야 하나요, 그 몹쓸 호르몬의 작용을 좀 다스릴 수 없는 건가요? 자식이 딱 한 명인데 날마다 아낌없이 주었던 마음을 무 자르듯 멈추거나 거둬들이는 게 쉽지 않잖아요?" 마구잡이로 속내를 퍼부었다.
사춘기를 맞은 당사자는 아들인데 그 열병을 톡톡히 앓는 사람은 오히려 나였던 것 같다. 아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와 성장을 겪어내기 위해 보호 모드로 바꿔 차분한데, 어쩔 줄 몰라 불안에 휩싸인 건 지켜보는 이의 몫이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격에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십 대의 나는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의 동생 둘을 둔 장녀로, 사춘기가 나를 거쳐 갔는지도 잘 모르겠고 갔더라도 표현하거나 드러낸 기억이 없다. 남동생의 경우를 기억해 봐도 목소리 변화, 여드름, 거울 자주 보기, 왕성해진 식욕, 과묵해짐 정도였지 동생의 내면의 뭔가가 달라져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경험이 부족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들의 변화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기까지 내적으로 한참 걸렸다. 그 낯선 변화에 익숙해지기까지 마음은 혹한기에 걸려 꽁꽁 얼은 체로 아들을 맞이하곤 했다.
핀터레스트
이미지 속 소년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눈을 감고 헤드폰을 쓰고 아마도 음악을 들으며 노란 연필로 스케치북에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편안한 모습에서 난 아들을 보았다. 특히 눈을 감은 모습이 나에게 무언가 어필했다.
자신만의 우주를 생성하는 궤도에 진입한 10대 소년들의 조용하고 차분한 몸부림을 목격했다. 소년도 아들도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때론 주체하기 어려운 마음의 동요에 대응하느라 좌불안석을 음악으로 다스리는지 모른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 성장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느냐에 따라 성장 여부가 달려 있다."라고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10대들의 운명은 그 맥락을 공유한다. 아픔으로부터의 성장. 아들도 그 대열의 일원이 되었음을 그제야 인정했다.
한바탕 몸살을 치르고 나서야 아들을 제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들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남편의 느긋한 태도에 위안을 받으며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어 나갔다.
가정의 울타리 내에서 실컷 방황하고 고민하고 몸부림치거라. 그러면 아무것도 문제 되고 걱정할 거 없다. 나는 그것에 맞게 다른 방법으로 아낌없이 주면 되니까. 난 그의 온도차에 서서히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