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도 서운하고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우주의 기운을 바꾸는 거다.
2020년 12월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주말 아침이었다. 당시 아들은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제법 타서 사이클용 자전거로 바꿔 타던 때다. 그날도 아침을 먹고 숙제인지 독서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 일을 하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탈 거라고 했다.
난 습관대로 날씨가 추우니 옷 따듯하게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마스크와 장갑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대뜸 싫다는 거다. "뭐가?" 물었다. 좀 얇은 옷이 필요하고 장갑은 필요 없단다. "왜?" 재차 물었다. 이유를 짧게 말하더니 "내가 알아서 할게." 라며 정리했다. 거듭 챙겨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국 아들은 알아서 하고 나갔더랬다. OTL
칼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건 무리이지만 그간 몸단속을 잘하고 위험하지 않게 무사고 운행을 해온 걸 믿어서 방한과 안전에 대해서만 외출 전 상기시키곤 했다. 그날 내가 순간 멈칫한 이유는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아 여전히 맑은 목소리의 아들이 "내가 알아서 할게." 때문이었다.
아이에게서 처음 듣는 문장이었다. 나만의 착각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분명히 난 느꼈다. 아이의 문장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지금까지의 판에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당황스러움이 일었다. 뭔가 달라지는 조짐을 느꼈다.
내 느낌이 기우였나 싶게 그러고는 그 해 겨울방학에는 자전거 탈 때의 복장에 대해서만 "내가 알아서 할게"였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당시에는 다행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는 비합리적이고 근시안적인 엄마였다.
좁은 품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여물어서 이제 좀 넓은 세상으로 나가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신호였을텐데 먼저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 아니었겠는가. 더구나 나쁜 일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뭐가 다행이었는지 내가 무척 겁쟁이 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겨울을 지나며 내가 왜 걱정에 가까운 마음에 갇혀 불편하게 지내고 있지? 가끔씩 자문해 보았다. 급성장을 할 때라는 긍정의 신호인데 나는 무엇이 걱정스러운 건지 말이다. 급-한 성장을 감당하기 버거운 건가? 혹시 아이의 성장보다 내 품에서 나가는 것이 서운한 건가? 막연히 불안한 마음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가르기 어려웠다.
해가 바뀌었으니 3월이면 중학생이 될 터이고, 아이는 엄마 그리고 집안의 품 밖으로 성큼 발을 내디딜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 단계에서 내게 선전포고를 한 것인지도 몰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말이다.
호르몬의 작용이므로 본인이 작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내가 기꺼이 어떻게 해보겠다고 될 일은 더더군다나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그 시기의 아이들은 어떤 성장 단계인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충분히 학습도 하고 또래 엄마들로부터 실전 정보와 팁도 얻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정말 그 시작임을 알리는 첫 순간을 만나니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차분히 생각하면 여기까지 무탈하게 잘 자란 것에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 다음 단계의 성장으로 나아가는 건 아이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니 반가워할 일인데... 뒤늦게 마음을 수습하는 소심하고 촌스러운 엄마였던 게 낯 뜨겁다.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품에서 벗어나갈지 모르겠다. 아무리 마음을 의연하고 굳건하게 먹고 속으로 무수히 예행연습을 해도 실제 하나씩 겪게 되면 나의 준비가 무색해질 공산이 클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굴러가는데,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식의 일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의 소명을 엉성하고 어리석게 할 수는 없을 테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 아이의 성장이 마냥 신기하고 어여쁘기만 한 시절은 지났고,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 발돋움하기 위해 알을 깨기 시작했다는 거다. 우주의 기운이 바뀌기 시작한 거다.
그 시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걱정과 서운함은 축복하는 마음에 자리를 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 자식을 키운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엄마이지 않을까. 머리는 또렷하고 냉철한데 마음은 아직 왔다 갔다 하며 들끓었다.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