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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Dec 04. 2021

문과 9년 차, 스타트업 개발자로 전직

01. 개발자가 뭐라고 - 다들 자꾸만 개발자를 하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개발자 광풍이 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 진로상담때문에 이런 저런 업계 이야기를 주워듣는 편이었고, 나도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고 싶었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승전 개발자였다. 마치 성인을 위한 진로선택 가이드가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자.

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좋다.

전공과는 무관할 수 있다.

어떤 기회가 어떻게 올 지 모른다.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할 수 있다.

남들이 뭐라해도 네가 좋으면 좋다.

부모님이 반대해도 나중엔 이해해주실거다.

성과가 잘 나는 일을 선택해도 좋다.

근데 개발자가 제일 좋다. 문과 쓰레기. 개발자 최고.


게다가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직군 간의 차이가 눈에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한 IT 대기업은 개발자들 연봉을 백 단위  이상 올린다고 연신 기사가 나고, 문과 쪽은 그동안 잘 근무하는 사람들마저 쳐 내기 시작했다. 내 목숨은 간당간당한데 남의 연봉은 아무 이유 없이 오른다는 소리만 들으니 좀 기분이  묘했다. 


사회복지와  심리로 일을 하던 나? 업무량은 미친듯이 증가했는데 연봉은 제자리, 아니 깎일 판국이었다. 그래서 일을 때려치우고, 5월쯤부터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은 데이터분석을 하고자 R과 파이썬을 배웠다. 사실 나는 R이 제일 좋다. 개발 공부가 많이 필요없다. R은 수학과  통계다. 파이썬부터는 데이터와 그 망할 조건문과 알고리즘을 알아야했다. 어찌저찌 인맥을 동원해서 스타트업 개발자 자리를  들어가서 React 공부를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그렇지만 첫 계약서는 세전 월 200이었다. 세금 빼면 실수령 월 180이란 소리다.  개발자 연봉이 무조건 높다더니? 나도 그렇게 알고 시작했는데 뻥이다.

 


   문과 9년차,
   개발자 신입이 되면서 통장이 위험해졌다.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개발자로 이직 고민을 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글을 쓴다.
 


라는 게 대외적인 명목이고, 사실  커피값이라도 벌려고 글을 쓴다. 어쩌다보니 이번 회사는 서울에서도 가장 핫한 동네에 있어서 하루 평균 식비가 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요즘 어딜가도 개발자 공부하라며 부추기는 광고가 판을 친다. 부트캠프니 무슨 코딩 수업이니, 유투브에도 코딩 한 시간이면 배워요 하면서 우릴 꼬신다. 


    '쉽게 금방 배울 수 있고'
    '모르는 건 인터넷으로 빨리 검색할 수 있고'
    '이것만 알면 당신도 일할 수 있다 개발자''
    '영어 잘 못 해도 쌉가능'


당연히 4개 다 거짓말이다. 내가 6개월 해 봐서 하는 말인데 진짜진짜 거짓말이다. 하나씩 짚어보자.




1. 쉽게 금방 배울 수 있다.

설명하는 지들만 쉽다고 지랄이다.  듣는 나는 하나도 이해 못 하겠다. 개발자들이 쓰는 말은 마치 7-80년대 신문과도 같다. 명사, 동사가 한자이고 한글로 된  수식어만 겨우 읽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개발자 문장은 한자 대신 영어다. 대충 어떤 말이냐면

                                                                                                                                                                                                                

깃헙에서 풀한 다음에 컴포넌트 수정하고 PR해 주세요.



처음 들었을 때의 감상은

내가 뭔가 수정한 다음에 뭔갈 해야 된다. 근데 뭔지 모르겠다. 였다. 하. 사수가 이야기하면 반드시 꼭 다시 되물어봐야했다. 저 문장을 풀이를 하자면


   깃헙이라는 사이트에 회사에서 사용하는 코드가 있으니, 그걸 내 컴퓨터에 다운로드(풀) 한 다음에,
   요청사항에 맞게 코드를 수정(컴포넌트 수정)하고,
   새로운 브런치를 만들어서 업로드 하고 깃헙사이트에서 PR 기능을 요청해두어라.


아직도 유행하는 회귀빙의환생 이세계물에 가면 난 살아남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작 전직 한 번 했다고 한국말 알아듣는 게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세상에 가서 살아남느냐.


물론  당연하게도 책이나 블로그 글을 먼저 보는 것보다 영상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왜냐면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우리가 한글을 쓰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일하고 2달 뒤 쯤에 깨달았다. 그래서  코드를 작성하는 구조나 흐름, 틀은 정말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많이 보고 듣고 타이핑을 쳐 봐야지 체감하는 것이다.


쉽게, 금방 할 수 있는 건 그저 유투브 강의로 넘쳐나는, 취미로 할 수 있는 단순 기능 구현 뿐이다.




2. 모르는 건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다.

할  수야 있지. 근데 다들 나같이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개발자 코드에 확실한 정답은 없다. 왜냐면 확실한 에러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 싶겠지만 나처럼 개발공부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내 컴퓨터 화면에 뜬 저 빨간색 에러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이 시리즈의 메인 이미지로 걸어둔 이 그림을 이제 이야기해본다.


코드를 작성하다가 에러가 나면 심상치 않은 빨간색 글자로 
ERROR: 이러저러해서 이런 이유로 에러가 났다. 그러니 이 코드 대신 이걸 써봐. 그래도 안 되면 여길 참고하렴.


이란  설명이 영어로 나온다. 안 나오는 코드들도 있는데 요즘 프로그램들은 많이 상냥해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 에러 코드를  그대로 복사해서 구글에 검색한다. 네이버는 안 된다. 구글이여야 한다. 그러면 스택오버플로우라는 사이트가 보통 가장 먼저 뜬다.  그 다음은 깃헙이거나 아무튼 영어 사이트다. 그럼 이제 하나씩 들어가보면서 이 오류가 떴을 때 해결책 1, 2, 3, 4, 5  등등을 다 해 보는 것이다! 왜냐면 에러 코드가 같다고 해서 원인과 해결방법이 같은 건 아니다!!!!

이런 느낌이다.


원인1                                          해결1

원인2          --- 에러코드 ---           해결2

원인3                                          해결3


인터넷의  저 사람은 원인2였고 해결방법은 1로 해결했다. 그 글을 보고 나도 해결 1로 해 보면 안 된다.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보니 얜  해결2로 했다. 나도 해결 2로 해 보지면 당연히 안 된다. 그럼 또 다른 글을 찾아가보면 해결 1이란다. 해 본다. 안 된다.

미친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자고 했다. 이메일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랬다. 검색해보니 이 코드를 입력하면 된다고 한다. 만세.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정도는 금방 수정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근데  그냥 넘어가면 신입이 아니다. 내가 찾은 이 작고 소중하고 귀여운 코드. 과연 어디에 어떻게 넣어야 작동하는건가!! 기존에 있는  코드에 넣어? 그럼 어느 줄에 넣어? 적당히? 적당히가 뭔데?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그런 소리를 없는데?? 그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인터넷 놈들은 그저 해결책만 제시한다.


마치 김치가 너무 시면 설탕을 넣으라는 백종원의 지시 같았다.


요리하는 어느 과정에, 언제쯤, 설탕은 백설탕인지 흑설탕인지 자일리톨도 되는지, 어느 정도의 양을 넣으라곤 말을 안 한다. 그냥 설텅을 넣으란다. 그렇게 내 코드는 또 다시 에러를 띄운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퇴근을 했었다.





3. 이것만 알면 당신도 할 수 있다 개발자.

이거 전형적인 어그로 끌기용 광고성 멘트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말한다. 학부 전공하면 너도 대학원 올 수 있다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미친건가요 교수님? 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저 말을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미친 말이다.





4. 영어 잘 못해도 쌉가능

문과지만  토익점수가 신발사이즈가 나오고, 수능은 영어 포기하고 대학 진학을 하고,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일을 9년이나 했던 나.  개발자 시작하고 1주일동안 토할 거 같았다. 하루종일 영어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사람이 제정신이겠는가.

아래 같은 화면을 매일 봐야한다. 가장 기초적인 설명창이다. 



물론 영어를 잘 하면 괜찮을 수 있겠따.

근데 저건 참고용, 공부용 사이트고 실제 보는 건 이거다. 그나마 아래는 상냥하다. 어디에 무슨 에러가 났는지 상냥하게 이야기 해 주지만, 아무튼 그것도 두통을 일으킨다. 





혹시 대학교 다닐 때 영어 강의를 들어보았는가? 두꺼운 영어 원서로 수업을 하고, 영어로만 모든 의사소통을 하는 곳에서 즐겁게 하하호호 다닐 수 있었는가? 괜찮다면 개발자 시작해도 좋다! 

하지만 나처럼 영어 원서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으로 찾아야하고, 영어 강의는 성적이 좋게 나오서 꾸역꾸역 들었다면 당신... 많이 힘들 것이다. 정말로. 


그럼 나는 그 힘든 걸 어떻게 왜 하냐 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개발자  남자친구를 탈탈 털고 있다. 요즘 데이트를 빙자한 질문폭격 시간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제 그냥 만나면 자꾸 재우려고 한다. 입을  열면 계속 코딩 질문만 하니까. 아니 근데 어떡하나. 나는 회의시간에 개발자들이 하는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해서 계속 모르는  단어만 적어두고 있는데. 당신 주변에 친하고 경력 좀 있는 개발자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회사에 최저시급을 받고서라도 일을 시작한 건 괜찮은 사수가 있어서다. 스타트업에 사수가 있다. 이건 내가 나중에 다른 곳에  이직을 해도 사수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일을 가르쳐 줄 의지가 있는 사수가 있었다. 지금 당장 돈은 손해지만 일을 오래 할  거라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실  퇴근하고도 따로 책과 강의를 보고 공부를 하고 매 주말도 하루 정도만 딱 쉰다. 반나절 이상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연재를 하던 것들도 다 중단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일하던 사고 흐름과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야하니까 겨우 지금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을 잠시라도 쉬면 금방 놓치고 잊어버린다. 


난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부 다 때려칠거라고 했는데, 공부와 멀어지기 힘든 인생이다. 개발자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입모아 하는 말은  기술 발전을 따라가려면 계속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된다고 한다. 그래야지 도태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신들도 주기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고 있다고.



이 모든 게 괜찮다면 당신도 개발자 공부를 주말에 시작해보자. 


문과로 개발자하기? 

정말정말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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