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똥찬 두통약을 처음 먹던 날
아플 때마다 약국에서 타이레놀 게보린 이지엔... 등을 사먹었었는데, 어느새부턴가 잘 듣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진료를 보고는 이미그란 조믹 나라믹 미가드 같은 트립탄류의 약을 타오게 됩니다.
‘지금 두통은 편두통이라서 일반약은 잘 안 듣지 않을겁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타온 약을 처음 먹어보면, 정말 이마를 탁~ 치게 됩니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니까요.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끈지끈하게 머릿속을 가득히 메우고 있던 시커먼 먹구름들이 스르르~ 슬로우비디오처럼 우아하게 걷히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우와~ 왜 진작에 이런 약을 먹지 않았었지?’하고 그간 진료를 미루던 자신을 책망하면서 그저 신통방통한 트립탄에 열렬히 환호하게 됩니다.
서랍 가득 쟁여놓았던 타이레놀 이지엔 낙센 따위는 저~귀퉁이로 몰아내고, 새로 타온 편두통약들을 손잡이 맨 앞에 모셔두고 약상자를 탁탁 두들기고는 흐뭇하게 서랍을 닫습니다. “앞으론 너야~ 음하~” 그후로는 두통이 와도 든든합니다. 트립탄을 꺼내 먹기만 하면 일상은 다시 상큼해지니까요.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처럼 서랍속 약을 먹고는 이제 됐겠지~하고 레디~고를 준비하는데, 시계 바늘이 30분이 꺾이고 1시간이 지나서도 먹구름은 당최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러지? 이러면 안되는데... 마음은 조급해지고 급기야 한동안 잊고 있던 우울의 그림자에 잡아 먹힐 즈음, 이윽고 구름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럼 그렇지... 이번에는 조금 늦었네...’ 가슴을 싸악싹 쓸어내리며 시계를 보니 2시간이나 지난 즈음입니다. 그래 조금 늦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일이 있고부터, 약이 듣는 시간은 이따금 자꾸만 늦어집니다. 2시간 어떨 때는 3~4시간이 지나서야 듣고, 어쩌다 재깍 듣기도 하지만 듣지 않을 때까지 생깁니다.
왜 이럴까 고민고민하다가 문득 깨닫게 됩니다. 아~ 두통약은 두통이 시작되려고 폼잡을 때 먹어야 하는구나~하고 말이죠. 그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두통인류(만성두통환자)가 기억하는 즐거운 어느 때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약이 들어주는 시점인데, 그 시기를 넘기면 바야흐로 만성두통환자가 됩니다.
만성두통은 약이 잘 듣지 않습니다. 약이 잘 안 듣는 이유는 기존의 NSAIDs나 트립탄이 작용하는 통증경로 이외의 다른 우회통증경로가 생기거나, 수용체 탈감작이나 억제된 통증전달물질의 보상분비증가와 같은 기전일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습니다.(자세한 설명은 지루하실 듯하여 생략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몸 아니 나의 두통이 약을 이겨먹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뇌의 입장에서 통증신호는 반드시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보존을 위해서입니다. (뇌속에는 통증억제시스템도 물론 있습니다만,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잦은 진통제복용이 그걸 약화시키게 됩니다)
만약 인위적으로 신호전달을 막으면? (인류의 자활능력은 보장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 뇌는 학습을 통해서 대책을 세우게 됩니다. 어떻게든 통증신호를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근래에 주사제 형태의 엠겔러티 아조비 그리고 알약형태의 아큅타 같은 CGRP억제약물들도 있지만, 훌륭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성두통은 건재(?)합니다.
두통의 치료는 진통제로 통증신호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신호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어야 하니까요.
만성두통치료를 이어가다보면 안 듣던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는 단계가 옵니다. 그때 우리 두통인류(만성두통환자)는 쾌재를 부릅니다. 약만 들어도 두통은 견딜만하니까요. 사실은 그때가 본격적인 치료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