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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16. 2017

정말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 걸까?

주변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드는 의문. 내게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살다 보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 삶이 복잡하게 엉켜 버릴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아주 가끔이거나 전무한 사람들은 도와야 하네마네 남의 일에 참 쉽게 '조언'이란 걸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야 하는 거잖아"

"그 문제는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내버려 둬."


그렇지만 누가 내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온다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쉽게 결론을 짓는 것도 섣부른 행동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함부로 조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 복잡한 일들을 계속 감내하며 살아내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무조건 도와주면 안 되니 내버려 두라는 조언을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을까? 그 상황이 '가족'이라는 끈으로 맺어졌다면 그 결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가족 누군가 끊임없이 사고를 친다고 하자. 가족들은 돌아가며 수습을 해주었지만 그 후로도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 관계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심하면 더 이상 '가족 아닌 가족'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고를 친 당사자는 수습을 해 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돕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찾아와 협박을 하거나 원망을 해대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세상일은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린 가족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따뜻하고 안락한 그늘이 되기도 하지만 끝도 없이 발목을 죄는 '양날의 검'일 수도 있는 이 관계는 언제든 개인의 삶까지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다. 가족은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몇십 년을 떨어져 살다가도 혈족으로서 해야 할 의무 같은 것에 따라야만 할 때도 있고, 할 도리는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거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따르기도 한다.








자라면서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벅찰 만큼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어쩜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던 건지 나는 그 복잡한 일들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나설 수 있는 범위의 한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스스로 누군가를 도울만한 대단한 능력도 없었지만, 설령 돕는다 해도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거절해야 할 것은 거절하려고 노력했고 때론 잠시 연락을 차단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 내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 없었던 건 참 다행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걱정까지 함께 떠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의 삶 조차 버거운데 누구를 돌볼 수 있단 말인가. 좀 더 일찍부터 거절하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멘탈붕괴'가 올만큼 난감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바로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몰아칠 때이다. 복잡한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으나 답은 떠오르지 않고, 왜 다들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지 화가 치밀기만 했다. 마치 내가 인생을 크게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억울함과 서러움이 밀려들기도 했다. 


남들은 평안한데 내 주변에서만 자꾸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그 일들로 내 생활까지 복잡해질 때마다 나는 묻고 싶었다. 내 삶은 왜 늘 이모양인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이런 일을 계속 겪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것은 내 문제일까, 내 주변의 문제일까? 나도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닐까?



정말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외면하고 살아본다면 그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게 문제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내 주변의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고 내 삶 전체에 결부시켜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 걸까? 



나는 거절하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거리를 두고 지냈다. 내가 그런 말을 던진 게 처음이라 힘들다는 말에 공감했던 걸까? 다들 조금 서운한 눈치였지만 이해해주었다. 얼마간 나는 진짜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이들의 문제와 동떨어져 홀로 지내보기로 했다. 그사이 그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각자의 방법대로 해결하고 있었고, 나는 아주 평온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내게 매달리거나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해 전화하지 않았다. 인생 최고로 단조로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뻤다. 나는 전과 달리 아주 온순해졌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 마냥 고요함과 평안이 느껴지는 일상이 참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들었던 생각들을 나열하면

주변 사람의 문제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할 수 없는 건 못한다 말하고 '개입'하지 말자.

내가 거절해도 각자 다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

복잡한 사람 옆에 있으면 계속 복잡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다.

'조언'하지 말자. '오지랖' 금지. 주변은 거들뿐.

나는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달렸다.



힘들 때는 힘들다 말하고, 거절해야 할 때는 웃으며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인간관계 또한 소홀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내 문제와 주변의 문제를 구별하고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와 당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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