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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영 Jan 23. 2024

케언즈 첫 인상

뭐 이런, 이 21세기 시대의 이런 시대착오적인 마을이.

 인천-시드니 비행기는 아시아나를 이용했지만 시드니-케언즈는 젯스타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그때까지 젯스타에 대한 소문만 들었지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었길래 좀 쫄아있는 상태였는데 지연이나 취소같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옆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던 가족이 앉아 조금 시끄러웠고 잠을 자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좌석도 좀 불편했던 것 같고, 그러니까 사소한 문제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긴 통로를 지나 마침내 밖으로 나왔을때 그 먹먹한 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이 비슷한 걸 이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다. 제주도에 배에서 내리는 순간 차 안의 유리창을 내렸을 때의 그 습기, 같지만 10배 농축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운 게 싫다 습한 건 더더욱 싫다. 이 곳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우버를 부르고 공항에서 시티로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고 푸르러서 기사에게 안 되는 영어로 여기 정말 아름답네요, 저는 이전에 시드니에 있었는데 거기에 비해 여기는 건물도 그렇게 높지 않고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그 기사분은 내가 호스텔에 잘 들어가는지 확인한 뒤 돌아가셨다. 가끔 호주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삶을 즐기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오버액션을 취할 때가 많아 부담스러운데 그 분은 즐길 만큼 즐기고 가렴, 이러는 인상좋은 민박집 아주머니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오면 다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란 생각이 드는 것일까? 시드니에서의 이틀은 짧기도 했고 여행이었기에 별로 외롭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케언즈는 도착한 날부터 외롭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백팩커 친구와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금세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럽다. 다들 워킹홀리데이 초반 정착할 때 그렇게 시간이 안 가고 우울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 우울감을 그대로 안고 센트럴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원주민들이 길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대낮에! 길가에! 이 35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 내 앞에 먼저 걸어가고 있던 라틴계 여자에게 욕을 하던 것을 보았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인 것이다. 나는 조금 설렜다. 역시 아시안일까? 아시안이라고 욕하려는 걸까?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내가 지나가자 나를 보고 Fucking Asian!이라고 했다. 사실 더 말했는데 역시 못 알아들었다. 마치 회전초밥처럼 지나가는 사람마다 골라잡아 욕을 하는 그들. 호스텔로 걸어오면서 무언가 하나의 통과의례를 거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욕 대신 나에게 웰컴 투 케언즈라고 한 듯 했다. 푸르게 빛나는 라군을 보고도 청명한 수풀을 보고도 들지 않았던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지금 케언즈에 있다. 앞으로 긴 시간동안 있으며 오래 있을 집도 바라마지 않는 일도 구하게 되겠지. 무엇도 기대되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 앞에 있을 무언가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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