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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May 12. 2023

비의 선율, 라벤더의 초대

차가운 빗방울이 맨 얼굴을 억울하게 때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일상에 대수롭지 않은 균열이라도 이는 날이면, 반드시 그 틈을 비집고 비가 들이친다.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 같은, 무너지기 직전의 젠가 같은 평화여서 그런 것일까. 살짝 얼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아침, 윤곽이 거친 먹구름과 푸른 하늘을 머금은 하얀 뭉게구름이 공존하던 산책길. 잠시 멈추어 눈을 감으니 서글픈 쓸쓸함이 알프스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졌다. 차가운 빗방울이 맨 얼굴을 억울하게 때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후드모자를 덮어쓰거나 손으로 어눌하게 막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플 때는 아픔의 끝까지, 기쁠 때는 기쁨의 끝까지. 나는 도망가는 재주가 없다.   


빗방울이 살갗에 닿아 톡톡 터질 때마다 청아한 피아노 건반 소리가 났다. 나와 함께 비가 쏟아지는 심연의 숲 속 어딘가로 달려주는 빠른 단조의 선율. 두려운 곳을 내달리며, 온 마음이 눈이 빠질 것 같은 어둠에 먹히도록 심장까지 내어놓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여간해서는 길을 잃거나 정체 모를 생물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을 것을 안다. 비겁한 불행인가 싶었다. 하지만 절망의 앙칼짐에 오감을 잃어갈 때 나를 인도하는 음악소리조차 없다면, 나는 오래전에 죽어버렸을 텐데. 나의 불행을 다각도로 비난하는 이들은, 나의 삶의 가치라던가 행복할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이 없다.  


건반이 음을 짚어감과 함께 피부 속으로 빗물이 번져 들었다. 느리고 꼼꼼하게. 라벤더향이었다. 나와 내가 존재하는 공간,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서서히 라벤더의 영롱한 보랏빛 색조로 물들었고 그 향이 진동했다. 한 폭의 명화가 21세기의 꿈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 감동에 찬 물을 끼얹을 의도는 아니지만, 역시 내가 라벤더의 향을 내켜하지 않는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 매력도 느끼지 못할뿐더러 너무나도 흔하다. 게다가 인류가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라벤더의 보라색을 화장실 비누향 같은 것에 영원히 연결 지어 버렸다는 점에 늘 심기가 불편한지라,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그 향을 나는 아마 영원히 좋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벤더에 흠뻑 젖은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공교롭다. 평범한 대중보다는 특별한 개인이고 싶은 고집과 열망, 그와는 별개로 몰개성 하게 여기는 익숙한 것에 둘러싸여 있음으로 위로받는 것. 비범함의 단일화, 광기 어린 획일감은 독특하지만, 나는 단정한 라벤더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히 쭉정이 같은 내가 보랏빛 담요를 함께 덮어보는 것이 감개무량하여 마음이 풀린 것이다.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되면 어떨까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침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무서워지겠지. 다정하고 따뜻한 연보랏빛 손을 애써 뿌리치며 나를 보내달라 했다.  


흔쾌히 수락하였다. 앞뒤 없이 모순된 나이기에 그 아쉬움 없는 모습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이게 옳다. 하늘은 말끔히 개었고, 나는 천연색의 봄날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각기 다른 색과 향의 사람들이 함께 봄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는 모습이 자유로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득한 피아노 선율에 놀라 심장이 두근거린다. 숨 막히는 라벤더향을 떠올리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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