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작가가 되겠어!"라고 마음먹은 지는 7개월, "책을 하나 써보자!"라며 패기 있게 집필을 시작한 지는 4개월 만에 브런치북을 하나 완성했다. 처음에 목차를 적을 때만 해도 간단한 습작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쓰면서 독서도 꾸준히 하고 공부도 하다 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더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결국 책이 처음인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좀 큰일이 되어버렸다.
적당한 하나의 주제 아래 평소에 쓴 산문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것만 해도 내 재주에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인생 서사를 담은 소설 같은 정보성 에세이를 쓰겠다고 덤벼들었으니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4개월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좌충우돌 헤매며 습득하게 된 것이 세 가지 있다.
1. 책의 뼈대인 목차/개요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야 한다.
초고를 근 4개월을 쓰다 보니 처음에 뭘 썼는지, 이 책을 애초에 내가 왜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날들이 많았다. 목차 없이 시작했다면 내용이 전부 산으로 가서 도저히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목차 각각의 항목마다 쓰고 싶은 내용을 되도록 자세하게 적은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책의 중반부가 넘어가니 지구력이 떨어지면서 뇌에 과부하가 오는 순간들이 생겼는데, 그때마다 개요를 자세히 적어놓은 과거의 의욕적인 내가 어찌나 기특하고 고맙던지...
그럼에도 여태 후회로 남는 부분은, 빨리 집필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개요를 잡는 기획 단계에 세심하게 공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보성 에세이집이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의 흐름을 따라가는 큰 줄기의 서사와 기승전결이 있는 작품이다. 층이 많은 구성이다 보니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도우려면 세심한 기획이 중요했다.
성급하게 집필을 시작한 탓에, 약 80%를 써 내려간 다음에야 내가 결말의 방향을 매우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방향을 틀자니 아무래도 쓴 것들을 많이 지우고 새로운 결말을 위한 구상을 다시 해야 해서 시간 낭비가 많았다. 물론 책을 만드는 것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고, 수정 없이 한 번에 훌륭하게 완성되는 창작품은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야기를 신중하게 구성한다면, 초고 단계에서 나처럼 뒤늦게 결말의 방향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하는 착잡한 곤경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2. 초고는 부담 갖지 말고 대충 빠르게 써야 한다.
이 조언은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백만번은 들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느릿느릿 오래 썼는데, 내가 써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꾸 다시 읽다가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무리 초고를 대충 쓰라지만 내 마음에 들 정도로는 써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도가 영 빨리 나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내가 글을 너무 못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4개월쯤 계속 하나의 글을 끝까지 쓰기 위해 끙끙대다 보니,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지만 지겨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아이디어들도 자꾸 떠오르고 해보고 싶은 새로운 일들도 생기는데 이거 하나에 묶여있자니 좀이 쑤셨다. 스스로 질려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고는 정말 되도록 빠르게 써야 한다. 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길게 메모하는 느낌으로 머릿속에 있는 쓰고픈 이야기를 전부 글자로 풀어 펼쳐놓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래도 긴 시간 공들여 썼으니 퇴고할 때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퇴고를 시작함과 동시에 머리를 망치로 두드려 맞는 듯한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글쓰기를 조언하는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지 않는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4개월 전의 나는, 4개월 후에 보면 쓰레기일 글 한 편에 1-2주씩 미련하게 공을 들이던 멍청이였다.
3.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체력과 맑은 정신.
지난 20년간 디자인이 본진이었던 상업예술인으로서 충격이었던 건 글과 그림의 창작 과정은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예술인들이 영감을 받아 창의적인 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상상해 보라. 영화 등에서도 자주 묘사된다. 방이 떠나가라 틀어놓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술과 담배에 몸을 맡긴 채 심신의 고통과 삶의 애환을 붓 끝 (혹은 마우스 끝...)에 담는 장면들. 과장되긴 하지만 그 또한 예술인의 로망이기에 그렇다.
나는 감성적인 글도 뭔가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리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글이 가장 훌륭하게 써지는 조건은: 맑고 뾰족한 정신 상태, 충분한 체력, 방해되지 않는 조용한 음악 혹은 정적, 그리고 깔끔하게 고립된 작업환경이다. 배도 부르면 안 된다. 좋은 재료의 식사를 마친, 공복에 가까운 소식 상태가 좋다.
체력이 좋지 못한 편이고 건강관리를 칼같이 하는 편도 못되지만 디자인 계열의 창작활동을 하고 업무를 보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글을 쓰기 시작하니, 글 1편을 2-3일 간 쓰고 2-3일을 앓아눕는 패턴이 수개월 반복되었고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집필을 위해 마라톤까지 뛴다는 것이 의아했었는데, 막상 고된 경험을 해보니 그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쓰기 위해 간단한 유산소라도 시작해야 했다.
체력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로 브런치북을 썼더라면 아마 더 질 좋은 글을 빨리 썼을 것 같다. 다음번엔 이렇게 아쉽지 않도록, 이젠 건강과 체력관리에 온 힘을 쏟아보려 한다.
모두 멋진 작가분들이 이미 수백만 번 강조한 것들이니 새로울 건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지가 않아 실천하지 못하고선 집필 과정 중에 뼈저리게 후회했고, 이 실패의 경험을 함께 전하고 싶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굳이 힘든 길로 돌아가는 아픈 경험을 최소화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