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의 소중함
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하나 있다.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인기 걸그룹의 노래다 보니 당시 어딜 가도 이 음악이 흘러나와서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길에서 우연히 주워듣는 음악은 첫 도입부를 듣기 힘들다. 그래서 한동안은 클라이맥스(?) 부분인 '유 메잌미 스페셜~' 이 부분만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큼 값지고 드문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발견하고 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억지로 노력한다고 알 수도 없고, 좀처럼 찾아와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세심한 성격의 남자 친구를 만나며 내가 출퇴근할 때 지나치는 지하철 역 정류장의 순서를 외워주는 것을 좋아한다든지, 쓰던 샴푸가 갑자기 떨어져서 동네 마트에 있는 '아무' 샴푸를 샀는데 그게 하필 풀 향이었고 머리가 바람에 날릴 때마다 퍼지는 산뜻한 냄새에 반해 그 뒤로 풀 향의 샴푸만 찾아 쓰게 된다든지 하는 것들. 트와이스의 Feel Special도 그렇게 갑작스레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한동안 우울했다. 잦은 출장과 빠른 속도로 쌓이는 피로, 밀린 원고(역시나 마감이 문제다.)로 시간과 힘이 없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시간과 힘이 적당량 채워져야지만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출장에 돌아와 짐을 풀고, 방에 들어와 누워서 잠시 눈을 붙인 후 깨어나면 씻고, 출근해서 원고를 쓰고 다시 집에 돌아와 원고를 쓰다 잠드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나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관계와 서서히 일정한 속도로 멀어졌다. 그 느낌은 마치 뭐랄까. '나'라는 점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원이 하나 감싸듯 둘러져 있고, 그다음 가까운 사람, 그다음 가까운 사람 순서로 층층이 원이 커져가는데, 원들은 제자리에 있고 점만 한없이 작아져 가까운 순서대로 멀어지는 기분이랄까. 한 마디로 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마감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없는 '우리'를 발견했다. 그간 공유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사건들이 탁구공처럼 빠르게 오가는 모습을 좇다 지쳐버렸고, 결국 먼저 자리를 떴다.
시간과 힘이 적정량 차올랐는데, 쓸 곳이 없는 기분은 한없이 황량했다. 몸 안에서 모래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따끔하고 건조했다. 쇼핑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집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무작정 찾아갔다. 레스토랑과 카페, 패션 브랜드의 상점이 빼곡한 쇼핑몰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집에서 급하게 뛰쳐나와 행색도 초라했다. 평소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쇼핑도 혼자 즐기는 편인데 그 날은 유독 그런 것들이 거슬렸다. 내가 찾아간 쇼핑몰은 가운데 커다란 광장이 있고 그 주변을 건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쇼핑할 의욕이 도저히 생기지 않아 달달한 바닐라 라테 하나를 사들고 광장 계단에 앉았다. 그때였다. 무슨 뮤지컬 속 주인공처럼 털썩 앉자마자 조용했던 광장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쇼핑몰의 음악 DJ(?)가 나를 발견하고 위로의 뜻으로 건네는 한 조각의 음악 같아서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익숙한 듯 낯선 멜로디가 왜인지 마음을 톡톡 건드렸고, 곧 첫 가사가 뒤따랐다.
"그런 날이 있어. 갑자기 혼자인 것만 같은 날. 어딜 가도 내 자리가 아닌 것만 같고 고갠 떨궈지는 날"
멜로디가 내 귀에서 자동 필터링으로 걸러진 것처럼 가사가 크고 정확하게 쏙쏙 박혔다. 대단히 특별하고 신박한 가사도 아닌데 듣는 순간 사과 하나를 통째로 삼켜 목에 턱 걸린 것처럼 묵직하게 아팠다. 뒤 이어진 가사는 '네'가 이런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너'만 있으면 나는 Nobody가 아닌 Somebody가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조금 더 들으니 내가 아는 '유 메잌 미 스페셜' 부분이 나왔고 그때 아는 노래였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내 그 노래를 들었다.
이처럼 좋아하는 것들은 사소하지만 발굴해내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상황, 분위기, 감정 상태 등등... 아무튼 복합적으로 이뤄지며 그 모든 것들의 교집합에 꼭 맞는 무언가가 시기적절한 때에 우연히 나타나는 행운도 필요하다. 그래서 어쩌다 발견한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