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중독, 매일의 카페라테

by 김범인

중학생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커피와 함께 살아왔다. 커피는 내게 산소와도 같아서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특히 아침 커피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데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오늘의 시작이 계속 연기되는, 오늘이란 그저 어제의 연장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굉장히 많이 커피를 사랑하지만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대단한 미각이나 후각을 갖고 있어서 커피를 즐기는 커피 애호가라기보다는 커피의 각성효과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원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커피 블랜딩이나 머신 사용법에 대해서 묻는다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나의 커피 사랑이 시작된 과거를 돌아보면 나의 커피 사랑은 내가 어린 시절 아빠가 마시던 다방커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빠는 커피, 프림, 설탕 둘둘둘로 달짝지근하게 탄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곤 하셨다. 그때는 아빠가 커피잔의 손잡이, 그 동그란 구멍에 검지를 넣어 말아 쥐고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근사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동생들과 역할놀이를 한다면 꼭 커피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아빠가 커피잔을 테이블에 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실 때면 한 모금씩 몰래 마시곤 했는데 그때 마시는 커피의 달콤한 맛은 어른이 되는 놀이를 넘어 진짜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왜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어른들만 마셔야 하는지 진정 이해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 고등학생 시절이다.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도서관에서 한두 잔씩 마시던 달디 단 믹스커피의 맛은 공부의 쓴 맛을 잊게 해 주기 충분했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조바심과 좌절감을 수없이 느끼던 그때는 마치 인생의 쓴 맛을 미리 겪는 것 같던 수험생이었으니까. 어른이 되면 마시라던 많은 이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커피는 아직 미성숙해도 용인될, 수험생이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마시는 믹스커피의 그 쓰고 단맛을 입 안에서 느끼며 나는 어른으로 가는 과정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쓰고 단 커피를 마시며 어른에 대한 동경을 하던 시기를 거쳐 드디어 카페인이 내 몸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커피전문점의 카페라테에 푹 빠지게 되었다. 믹스커피의 달달함을 빼고 우유의 부드러움을 더한 카페라테는 카페인의 강인함과 조화를 이룬다. 그 조화는 각성효과라는 커피의 장점을 편안하게 전달해주는 것만 같다. 그리고 부드러움으로 인해 내 바쁘고 소란스러운 일상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뇌가 깨이고 마음이 넓어지는 그 첫 모금에 주변의 소음들이 음소거되고 나를 괴롭히던 빽빽한 배경이 커피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웃포커싱 되는 그 순간이 좋다.


카페라테에 마음을 홀딱 뺏긴 이후, 현재의 나는 카페라테의 노예이다. 여러 커피전문점을 수시로 드나들던 커피 유목민의 시기를 지나 커피머신이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 드디어 내 커피 인생에 카페라테 시대가 열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의 하루는 늘 카페라테와 함께 시작된다. 에스프레소는 너무 쓰고 아메리카노는 묽다. 아침에 카페인을 날 것으로 받아들이면 나의 몸은 성급한 각성에 화들짝 놀란다. 그러므로 나는 우유의 부드러움으로 완충효과를 노린다. 온몸의 조직들이 천천히, 부드럽게 자극되고 깨어난다. 아직 가족들이 잠에서 깨기 전, 혼자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카페라테를 마시는 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내면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이 외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낮에도 매일 카페라테를 마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른한 오후 또다시 나는 자극을 원한다. 맑은 정신과 명쾌한 언어능력을 되살려 줄 각성효과가 필요하다. 이때 카페라테는 온몸의 나른함에 친밀하게 다가와 일상의 마찰을 줄여주는 윤활제의 역할을 한다. 나는 저녁에도 카페라테를 마시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밤을 일분일초라도 더 즐기고 싶다. 카페라테라면 나의 밤도 무리 없이 편안한 시간으로 연장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카페인이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의 커피는 극히 자제하고 있다. 오늘의 시작을 열어주는 아침 커피의 효과처럼 오늘 밤의 연장을 통해 내일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가 자제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다니. 아이러니다.


‘중독’이라는 말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쓰이는 말이지만 내게 ‘커피 중독’이란 말은 오로지 긍정적인 단어다. 커피는 끊임없는 도전과 부지런함의 사이에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무력함을 각성시키는 마법의 음료다. 나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후회 없는 하루가 되도록 몸과 정신을 깨워주는 커피가 좋다. 나는 내일 아침에 카페라테를 마실 것이다. 커피와 함께 내일을 열고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커피는 내 삶의 일부다.

이전 09화서툴게 전하는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