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루(see-through)

by 김범인

나는 정말 쉽게 읽히는 사람이다. 지금 나의 감정이 좋은지 싫은지, 편안한지 괴로운지, 만족스러운지 불행한지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감정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무던한 편이라 누군가를 먼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반대의 경우에 나는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해주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눈꼬리에서도 묻어나고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을 향한 불편한 마음이 나의 손끝에서도 느껴지게 행동한다. 의도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감정이 쉽게 드러나니 누군가와는 급속도로 친밀해지고 누군가와는 가까워지기도 전에 멀어지기도 한다. 나는 나의 이런 면이 너무 싫었다. 실제로 나의 감정이 최종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수천, 수만 개의 과정을 거친 결과값인데 표정과 행동에는 너무 가볍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사거나 상처받는 경우가 발생하면 나는 억울했다.


나는 조금씩 나를 감추는 노력을 해왔다. 나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위를 연기하는 것은 내게는 힘겨운 일이라 그저 시선을 피하고 말을 줄이는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어 나갔다. 시선을 피하는 것은 나의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었고 말을 줄이는 것은 나에 대한 해석을 굳이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상처받는 나를 지키려는 하나의 애씀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적극적인 성격인 것 같지만 내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사람이 되어갔다.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벽이 느껴진다고 했고 특히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은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 역시 나를 찌르는 바늘 같이 느껴졌지만 긴장하고 경직된 나의 마음가짐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어느 순간 그 바늘도 무뎌지는 순간에 닿곤 한다. 감정표현에 서툴지만 감정의 샘이 마르지 않는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을 담아두지 못함을 알아차린다. 내 원래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은 시간의 축적이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켜버린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나의 성향상 다른 사람과 솔직해지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이 되면 본래의 나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느껴지면 나는 솔직해지고 작은 티끌마저도 꺼내어 보여준다. 깊이 담아둔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고 유치하고 장난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해 보인다. 물론 이때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고 실망하는 사람이 있다.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면 나의 진짜 모습인 유치하고 미숙한 모습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일 테고 실망하는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은 것 같은 그동안의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서 내가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원래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나를 감추는 나의 소심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내게 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 표정을 보면서도 말한다.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도 내게 누군가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하고 누군가는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너무나도 다르다. 사실은 나도 자연스럽고 꾸밈없이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내가 되고 싶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다 보이는 내가 나도 어렵다. 자꾸만 나를 향한 상대방의 마음을 재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나는 속이 다 비칠지라도, 단지 나를 감싸는 얇은 한 겹의 막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더라도 그것으로 나를 보호하려 애쓸 것이다. 이 보호막이라는 안전한 느낌을 포기할 용기가 아직은 부족하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의 이 보호막을 그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나의 겁 많고 소심한 모습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나를 감추려고 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표현의 한 방식이었을 뿐 진심으로 나를 감추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을 주길 원하고 사랑받길 기대한다. 이런 나의 본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감추려는 사람이 아니라 내 본연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전 10화커피 중독, 매일의 카페라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