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음의 쓸모 -나의 소비생활에 대한 변명

by 김범인

채소나 고기와 같은 식재료를 살 때에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을 선호하는 나는 굳이 마트에 가서 신선도나 모양을 확인하고 산다. 옷이나 신발도 직접 착용해보고 잘 맞는지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이들 학용품이나 준비물을 구입할 때에도 문구점에 가서 사려던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구입한다. 필요한 물건을 고를 때나 일을 처리할 때에 일부러 발걸음을 하는 이유는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할애하더라도 '쓸모'를 직접 확인하고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구입할 경우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여 사려던 것이 아닌 쓸모없는 물건으로 잘못 주문하거나, 배송비를 줄이려고 필요보다 더 많은 양을 사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것들을 구입하며 값을 치를 때에 판매자와 마주치는 눈인사의 정서적 교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게 아날로그 라이프스타일이라며 한마디 하면 난 "얼굴 보고 일처리를 해야지~"라는 말로 웃어넘기곤 한다. 일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누군가는 참 쓸데없다 말할 수도 있지만 내겐 이것들이 참 쓸모 있는 행위들로 느껴진다.

이렇게 물건의 쓸모를 충분히 고민하고 구입하려는 나이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우리 집에는 쓸데없는 물건들이 택배로 많이 온다. 도착하는 택배들의 품목을 보면 참 다양하다. 취미 부자답게 책, 뜨개실, 식기부터 연필, 수첩과 같은 문구류, 핫한 냉동식품이나 군것질거리, 식물,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과 같은 예쁜 쓰레기까지. 택배로 주문하는 물건들은 거의 다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생필품을 사는 오프라인 쇼핑과는 다르게 온라인에서는 이런 것들을 별로 고민하지 않고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곤 한다. '쓸모'를 직접 확인하고 소비를 하려는 내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무언가를 사들이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이것 역시 쓸모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쓸데없는 것을 사는 것에 대한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취미에 몰두하는 것이다. 나의 취미활동은 뜨개인데 한동안 뜨태기(뜨개 권태기)에 빠져 뜨개마저 안 하고 거실 바닥에 흘러내려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액체화 된 내 몸이 증발하려나 싶던 순간 문득 필요하진 않지만 궁금했던 뜨개실을 구입했다. 실 창고에 실이 가득 쌓여있음은 가볍게 무시한다. 이삼일 뒤 도착한 실꾸러미를 받아 들고는 뇌 속에 스파크가 튀고 온 몸의 근육들이 거칠게 일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난 이제 행복해질 준비가 되었다, 움직이자.' 나는 새로 도착한 실의 색감과 촉감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뜨개를 하기 시작한다. 바닥에 누워있다가 소파로 옮기기만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뜨개를 하는 것은 온몸의 미세근육마저도 활발히 활동하고 오감이 열리는 순간이다. 내가 산 '뜨개실'은 그동안의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날려버리는 쓸모 있는 소비였다.

이런 예는 어떤가. 요즘 나는 베이킹에 관심을 쏟고 있다. 당연히 이제 막 눈을 뜬 참이라서 베이킹 장비는 갖추고 있지 않다. 인터넷에서 호두파이 레시피를 찾아보다가 집에 있는 커다란 사각 베이킹 틀에 대충 흉내만 내어 구워보았다. '아... 생각보다 맛있네?'라고 생각하다가 잘라놓은 파이의 모양을 보니 이것은 마치 울퉁불퉁 화석처럼 보였다. 모양만 그럴듯하면 내가 만든 파이도 꽤 괜찮을 것 같아서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틀의 옆면이 구불구불 주름이 있는 타르트 틀을 구입했다. 과연 몇 번이나 파이를 구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다. 택배가 도착하자 다시 호두파이를 구워 보였다. 제법 예쁘게 완성된 호두파이를 삼각형으로 잘라서 커피와 함께 먹으며 '아, 커피숍 갈 필요 없다.' 하며 행복감에 빠졌다. 내가 산 '타르트 틀'은 오후의 나른함을 풀어주며 달콤함을 채워주는 쓸모 있는 소비였다.

가끔은 당장 읽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주문하기도 한다. 책을 보고 한숨을 쉬고 책장에 넣어두고는 '왜 샀을까?'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기분이 울적한 어느 날 책장을 훑다가 무심코 든 책을 읽고는 유쾌한 행복감을 느낀 적도,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이다. '책'은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각을 깨우는 쓸모 있는 소비였다.

혼자 드라마를 보며 '마라탕 컵라면'을 먹는 밤의 정취는 어떠한가. 고요함 속에 뜨거움을 일깨우는 희열이다. 열린 땀구멍과 붉은 얼굴은 기쁨을 표현하는 고요 속의 외침이다. 나는 다만 다음날 부대끼는 속을 감당하기만 하면 된다. '마라탕 컵라면'은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친구와도 같은 쓸모 있는 소비였다.


이렇듯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주문한 것 같지만 나는 그것들이 결국에는 '쓸모' 있음을 찾곤 한다. 모든 것들이 그것 나름대로 나의 감성과 감정에 일조한 물건들이다. 나는 그것들이 내게 온 '쓸모'를 인정한다. 어쩌면 내가 흥청망청 소비생활을 하는 지각없는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나는 감당할 만큼만 온라인 쇼핑을 함을 밝혀둔다. 가끔 카드빚에 허덕일 때도 있지만 내 소비 가능 액수는 늘 그렇듯 소박하다. 그 안에서 나름대로 물 쓰듯 돈을 쓰는 기분을 낸다고 핑계를 대본다.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구입하며 나는 나름대로 재벌가의 손녀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핫하다는 아이템을 구입하며 유행을 따르고 만드는 트렌드 세터가 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어찌 나의 쇼핑에 대해 쓸데없는 소비라고만 폄하할 수 있겠는가. 나는 구입한 물건뿐 아니라 이 행위에도 쓸모를 발견한다.

글을 쓰다 보니 포켓몬 카드를 사들고 들어오며 행복한 아들에게 쓸데없는 것을 사느라 돈을 낭비한다고 야단치던 나의 경솔함을 반성한다. 그 종이카드가 가진 에너지가 높다며 일주일 용돈을 탕진하고도 싱글벙글 자랑하는 아들에게 '쯧쯧쯧' 혀를 차며 용돈 줄인다고 말한 나의 몰이해를 꾸짖는다.


요즘은 모든 것에서 '쓸모'를 찾으려고 한다. 도구나 수단들의 쓸모에 대해서 배우고 역사나 철학과 같은 학문의 쓸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역사나 공부나 수학과 같은 위대한 학문에서의 쓸모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구입하는 소비행태의 쓸모를 찾아보려는 가벼움에 조금은 부끄럽다. 그러나 가끔은 100일 동안의 정신 수양보다 30초의 결재 타임으로 천국이나 열반을 발견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행복이 별건가, 내가 가진 것이나 내가 하는 행위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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