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머리를 묶어주는 시간

by 김범인

요즘 아홉 살 딸아이와의 말다툼이 잦다. 일상을 공유하는 모녀의 관계에서 말다툼의 소재는 늘 사소하다. 학교 숙제 채점을 미리 해두지 않아서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지 못해서와 같은 별것 아닌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둘은 서로의 의견을 전하며 날을 세운다. 가끔은 아홉 살 딸과 이렇게 싸우는 것을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딸과의 말다툼은 유치하고 끈질기게 이어진다. 특히 아침시간의 다툼은 언제나 끝이 없는 쳇바퀴다. 등교 준비를 서두르는 딸과 천천히 제대로 준비하라는 나의 대화는 항상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어린 딸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가족들이 자신을 아기처럼 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혼자 해내려고 하고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작은 몸으로 한 사람의 몫을 다 해내려는 딸의 기특한 모습에 흐뭇하다. 그러나 응원하는 한편으로는 아직도 아기로만 보이는 딸을 엄마의 마음으로 챙겨주고 도와주고 싶기도 하다. 이런 나의 태도가 딸은 못마땅한가 보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고 고집을 부리게 되는데 이것이 말다툼의 발단이 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그 마음이 격해지면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인다. 최근 점점 어른의 어휘와 말투를 배워가는 딸은 나름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말을 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 딸의 말꼬리를 물고 있다. 엄마와의 다툼에서 지고 싶지 않아 하는 딸은 나와 평등한 존재가 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 역시 양보를 하지 않아서 유치한 말다툼은 끝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서로에게 감정이 상했어도 아침의 다툼 뒤엔 늘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딸이 먼저 말을 꺼낼 때도 있고 내가 먼저 이야기할 때도 있다.

"머리 묶자."

조금 전의 다툼으로 서로의 말투와 태도에 어색함이 담기지만 건너뛸 수 없는 이 시간이 찾아오면 긴장감이 감도는 평화가 찾아온다. 마치 휴전과도 같다. 우리는 얼굴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한 곳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는다. 머리를 묶을 때만큼은 서로의 몸을 가까이하고 서로의 손길과 몸짓에 마음을 내맡긴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게 긴장감이란 사라지고 평화만이 남는다. 조금 전의 격렬한 말다툼이 무색할 만큼 온전히 아이를 쓰다듬는 시간이고 아이에게 사랑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씻겨준다거나 얼굴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다. 아이는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고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쓸어준다. 머리를 빗겨주는 이때는 대화가 중요한 시간은 아니다. 아무리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였어도 머리를 묶는 이때에는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 서운함에 대한 투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를 빗겨주며 내가 "이렇게 이쁜 딸이랑 왜 싸웠지?" 하면 딸도 금방 웃음을 터뜨린다. 머리를 묶어주고 "우리 딸 얼굴 좀 보자."라고 말하면 딸은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딸을 보며 나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차오른다. 작은 아이라고 내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기도 한다.

하루하루 커가는 딸을 보며 머리를 빗겨주는 이런 시간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에 애틋해진다. 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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