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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Jul 08. 2023

깍두기를 담는 날

현재의 삶에 충실한다는 핑계로 내 인생의 많은 것을 잊은 채로 살았다. 내가 이루어낸 작고 소중한 성취들, 무모하면서 세심하기도 했던 생각들, 내가 믿던 사람들, 나를 사랑한 사람들. 이런 것들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가 티끌과도 같은 사소한 이유로 인해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것들은 서서히 나의 감각들을 일깨우고 나를 잊고 있던 기억 속으로 이끈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나를 되찾기도 하고 나를 사랑한 사람들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흩어져있던 내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지금의 나 자신과 연결하기도 한다.


어느 날 나를 기억 속의 그 장면으로 이끈 것은 깍두기였다. 한입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잘린 무들이 양념들과 한데 어우러져 빨간 물이 들어있는 깍두기. 입에 넣어 우물거리면 아삭하고 매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워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다. 따끈한 흰밥과 함께 먹는 깍두기는 늘 나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김치가 떨어진 어느 날 식사시간의 소담한 식탁을 위해 깍두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재료들은 집에 있으니 간단하게 빨리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저녁식사 때에 상에 올리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깍둑썰기를 한 무를 잠시 소금에 절이고 다른 양념들을 준비했다. 파를 송송 썰고 마늘을 빻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 재료들을 준비하여 한데 버무려 깍두기를 완성했다. 김치통 안에 그득히 담긴 깍두기를 보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저녁은 이 깍두기만 있으면 가족들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겠지라는 든든함에 오랜 시간 서서 만들었음에도 힘든 것도 잊었다. 그리고는 깍두기가 익었나 확인해 본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주방을 오가며 김치통을 열어 깍두기를 집어먹었다. 익지 않은 깍두기 무를 하도 많이 집어 먹어서 속이 쓰린 것 같았지만 무의 아리게 매운맛과 새콤달콤한 양념의 맛이 나를 자꾸만 부엌으로 이끌었다. 깍두기의 유혹에 끝없이 굴복하는 이런 내 모습이 잠시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후 시간을 온통 깍두기의 빨갛고 아린 맛으로 채운 나의 마음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가게를 했던 우리 집은 많은 끼니를 배달 음식이나 레토르트 음식들로 해결했다. 나에게 집에서 먹은 음식의 기억은 중국음식점의 자장면이나 볶음밥, 백반집의 찌개정식들이 가장 많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께서는 바쁜 와중에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밥을 지으시기도 했지만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언제나 두세 가지였고 그마저도 늘 한 끼면 끝이 나서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가 음식을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네 명의 아이들이 먹는 양이 어마어마해서 음식이 한 번의 식사면 남아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에는 엄마의 요리를 늘 고파했었다.


그러나 엄마께서 깍두기를 만드시는 날은 좋아하는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다른 음식과 다르게 깍두기는 커다란 김치통에 한가득 만들어두는 반찬이었고 어린 나에게 그것은 흉년이 지나고 곳간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마음 설레는 일이었다. 엄마께서 깍두기를 담그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옆에서 무를 하나 둘 집어먹었다. 맵고 짜고 단 맛이 무의 아삭함과 조화를 이루어 나의 입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엄마는 김치통에 완성된 깍두기를 담으며 ‘익혀서 이따 저녁에 먹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깍두기의 아삭함과 양념의 자극을 잊지 못하고 낮동안 자꾸만 부엌을 오갔다. 김치통 앞에서는 늘 망설였지만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김치통을 열어서 손으로 하나씩, 두 개씩 입안에 깍두기를 넣곤 했다. 이렇게 깍두기를 오후 내내 집어먹다 보면 시간이 지나며 맛이 서서히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 역시 나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이유였다. 만들자마자 먹었던 깍두기의 자극적인 맵고 짠맛은 실온에서 급하게 익어서 새콤달콤해졌다. 점점 더 맛있어져 가는 깍두기는 나를 부엌으로 더 유혹했다. 엄마는 '그러다 다 먹겠다. 그만 먹어라.'라는 말을 하면서도 나를 말리지 못하셨다. 말리기에는 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을 것이다.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엄마를 바라보았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깍두기를 담근 날에는 늘 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은 붉게 물들어있곤 했다. 부엌을 수도 없이 오가며 먹는 엄마의 깍두기는 맛있었고 엄마의 요리를 먹는다는 생각에 마음도 배불렀다.


늘 바쁘셨던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고 단정했던 나는 집밥의 기억이 애틋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 싸가는 도시락 반찬으로는 참치캔과 포장된 김을 제일 많이 싸주셨고 대학생이 되어 자취하던 시절에도 반찬은 사 먹으라고 하시던 엄마였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들에 길들여지면서 엄마가 해주신 냄비밥과 두세 가지의 특별할 것 없었던 반찬들이 문득 그리워지곤 했다. 콩나물볶음, 멸치볶음, 김치어묵찌개와 같은 평범한 반찬이지만 다른 집과는 다른 엄마만의 특별한 맛이 입과 코,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올랐다.

나의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그리운 엄마의 반찬들을 흉내 내어 만들어 보고 소담하게 담아 나의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 맛을 나중에 기억해 줄까? 특별하지 않은 반찬이라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무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커서 깍두기를 담가보니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엄마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가게일을 하며 바쁜 와중에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틈틈이 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마. 그 마음은 지금의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의 마음을 위로하고 아이들을 살 찌우기 위해 나의 마음을 담은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나의 모습이 엄마의 마음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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