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푸른색, 청동색.... 다채로운 색이 펼쳐진 산호숲을 지난다. 그 부근을 통과할 때면 바닷물을 투과하는 빛살과 산호초 군집이 만들어내는 색들의 높은 채도와 명도에 눈을 찡그린다. 왠지 나의 몸은 움츠러든다. 산호초 숲의 밝은 풍경은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발길에 힘을 싣게 한다. 나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이 밝음에 대한 저주의 말을 쏟아낸다. 산호숲을 지나자 바다풀들이 살랑대는 연안에 다다랐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머리를 물 밖으로 들어 올린다. 인간들이 보인다. 물밖의 세상도 물속과 다를 바가 없다. 아름다운 것들을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나는 저곳에서 물속에서의 황폐한 내 삶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인간들의 발걸음과 몸짓을 관찰하다가 뒤돌아 나의 안식처로 돌아가기로 한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면 앞으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굳은 의지를 담아 빠른 속도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 헤엄친다. 풀숲과 산호숲을 지나 바위산이 나타난다. 채울 수 없는 나의 욕망을 가로지르듯 가장 가파른 길을 따라 하행한다.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바위를 만나면 그 꼭짓점에 이마를 맞닿을 듯이 속도를 내어본다. 나의 다리들을 거세게 오므렸다 펴자 바다는 반작용을 일으켜 나를 숨 막히도록 감싸 안는다. 더 내밀한 장소에 자리 잡은 집으로 가기 위해 바위가 만들어내는 미로를 통과한다. 이곳은 우울로 가는 길목이며 내면으로 향하는 종교적 순례길이다.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빛은 줄어든다. 어둠이 지배하는 이곳에서야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진다. 어둠 속에서 유영하는 나. 검은 바위틈으로 비추는 푸른색 빛줄기에는 엄숙함이 흐른다.
나는 8개의 다리를 갖고 있는 마녀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마녀로 불려 왔다. 모든 바다 생물들은 나를 보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꼬리를 살랑이는 매혹적인 움직임도, 찬란하게 빛나는 비늘의 우아함도 없는 나의 여러 갈래의 다리는 그들의 숨을 멈추게 한다. 무언가를 향한 집착을 드러낸다며 내 빨판을 보고 뒷걸음친다. 나의 다리는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의 여러 갈래이며 빨판은 사랑에 대한 의지라는 것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마법을 배워왔다. 배고픈 자에게 대접하는 한 끼의 음식처럼 욕망을 갖은 이에게 베푸는 마법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그들을 향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었고 그들로부터 받고자 하는 것은 진심이 담긴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법은 가까이하기 힘든 선득한 외모로 인해 선함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마법을 자연을 거스르는 탐욕의 증거라고 말했다. 나는 상처 받았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덧나고 덧나서 옹이가 지고 나서야 나는 그들을 향한 마음을 거두어들였다. 그들은 그저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나는 바다 세계를 지켜보았다. 인어들은 아름다움으로 인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그들은 선함의 표본이었다. 나는 인어들의 물살에 따라 우아한 춤을 추는 머릿결과 총천연색 빛을 뿜어내는 비늘을 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배워갔다. 그리고 질투의 씨앗에 줄기를 틔워 올렸다. 그것은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그 마음을 농밀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영혼의 부피를 키우는 것이었다.
“너의 목소리를 다오.”
인간의 다리를 얻고자 하는 막내 인어공주에게 목소리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나는 세이렌의 목소리에 비견되는 막내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얻었다. 목소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도구 중 하나이다. 목소리를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라고 착각한다.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 목소리라고 여기고 마음을 들여다보았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갈구했다. 내게 목소리를 건네고 이제 막내 인어공주에게도 ‘결여’라는 것이 생겼다. 자신이 이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이제 그녀의 삶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가 빠진 아름다움에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바라볼 줄 아는 자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이해한다. 세상은 결국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와도 같다. 나는 사랑을 얻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결여된’ 아름다움을 갖은 막내 인어공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사랑을 얻지 못하여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막내 인어공주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 있다며 나는 그녀의 언니들에게 덫을 놓았다. 막내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찾아왔다. 왕자를 찌를 단검을 주는 대가로 첫째 인어공주에게는 심연과도 같은 반짝이고 깊은 눈을, 둘째 인어공주에게서는 풍만한 가슴을, 셋째 인어공주에게서는 잘록한 허리를, 넷째 인어공주에게서는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카락을 요구했다. 그들은 고민했다.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란 그동안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그것들을 주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영리하지 못하다.
막내 공주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희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다니 그녀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이제 나는 왕자와 결혼한 이웃나라 공주가 나를 찾아오게 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다. 그 공주의 매끈한 다리를 얻을 수 있다면 물 밖으로 나갈 준비는 끝난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물속의 인어들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외모는 이제 인간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가진 아름다움이란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사랑받고 싶은 나의 의지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만을 원한다면 내가 맞출 수밖에.
아름다움은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닌 한 나에게 어떤 시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더 수집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