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공부 안 해도 붙는다고?
[한식조리사] 제1장 불안해서 딴 자격증-필기시험
by
stamping ink
Nov 23. 2021
"육아에 힘쓰려 회사를 그만두려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임신의 기쁨은 부어가는 다리로 잠 못 들고 쉴틈 없는 입덧에 퇴색해가고 있었다.
엄마로서 첫 번째 의무, 아이의 건강 지키기를 위해 정기적인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 병원 문 앞에 섰다.
산부인과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전시관 같은 인테리어, 부드러운 클래식 연주가 흡사 콘서트라도 하듯 흘러나오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매번 늘 떨리고 어색한 공간이었다.
스물다섯의 예비엄마는 방금 마치고 나온 의사의 말이 계속 맘에 걸렸다.
"아이가 자리를 못 잡고 막달에도 움직이네요. 일 다니시나요? 스트레스가 많으신가요? 이러다가 탯줄이 엉키면 큰일 나겠어요. 스트레스를 줄이고 다음 검사에도 아래로 앉아있지 않으면 제왕절개를 진행해야 하겠어요."
임신과 동시에 퇴사의 수순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고 버텨보려고 했던 사직서를 끝내 제출하고 말았다.
떠나가는 나에게 남겨진 직원들은 아쉬움과 격려가 이어졌다.
"빈자리가 커서 어떻게 해요."
"애 키우는 게 돈 버는 거래요."
아쉬워하는 것인지 임산부의 업무를 도왔던 것을 떨쳐내는 것이 시원한 것인지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과 야속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새로운 직업, 육아에 내 능력을 쏟아보리라 다짐했다.
아이는 선물 같았다. 하지만 선물이란 알지 못하는 것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내가 알던 텔레비전 분유 광고의 나오는 아이는 '남의 아이'였다.
하루 종일 방긋방긋 웃고 쌔근쌔근 잠든 천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까칠함을 탑재한 나의 아이는 낮과 밤을 넘나들며 체력을 과시했고 짧디 짧은 입과 먹은 것보다 많은 양의 대소변 배출량은 스물여섯 체력의 엄마마저 근근이 버텨냈다.
물론 주변 어른들의 소름 끼치는 위로도 이어졌다.
"지금이 좋을 때야. 걷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단다."
남편과 공동육아라 했지만 아무래도 직장까지 던져두고 육아로 이직한 이상 나의 업무량이 훨씬 많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젊은 부부는 응급실도 뛰어가고 예방접종에 울먹이며 어디서 난 상처인지도 모를 상처에 죄책감, 아이의 작은 재롱 하나의 기쁨 등 버라이어티 한 감정이 쉴 새 없이 느껴졌다.
멀쩡하다가도 쓰러지게 하는 것도 다시 일으켜 세워 기쁨을 주는 이도 모두 아이였다.
아이와 손을 잡고 제법 자기 이야기를 하던 다섯 살배기 아이가 내게 말을 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는 우리 딸이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
"다른 엄마들은 유치원 끝나고 예쁜 옷 입고 예쁜 구두 신고 오는데 엄마는 나중에도 내 엄마만 할 거야?"
마음 구석 제일 불안했던 사회로 돌아가기에 대한 일격이 날아왔다.
그날 밤, 인터넷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기웃거렸다.
경력직 업무로 아이가 있는 낮시간만 근무할 형태의 근무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와 친언니만큼 친해져 있던 시기였었다.
그녀에게 나의 불안함을 꺼냈다.
"별이 언니, 나 뭐든 배우고 싶은데 뭐를 시작해볼까?"
"경력단절녀를 위해 지원해지는 프로그램이 많던데. 너 요리하는 거 좋아하지? 조리사 자격증은 어때?"
"조리사?"
"난 나중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차리고 싶거든. 미리 따두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던 차인데. 같이 할래?"
"요리학과 학생 아이들이 많을 텐데 우리가 괜찮을까?"
"우리 그럼 필기만 공부해 보고 할 만하면 프로그램을 신청해보자."
추진력 좋은 언니 덕분에 어쩌다 보니 수험장에 앉아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장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탄탄한 준비과정이 없었기에 마지막까지 기출문제집을 붙잡았다.
황급히 인간의 능력 중 구석에 몰렸을 때 나오는 집중력으로 무아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정장 차림의 감독관이 익숙하게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함께 들어온 다른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십 년도 더 지난 고등학생 시절 가사수업에 배웠던 시험지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시험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기출문제 본 걸로 붙었어요.'
'전날 잠깐 답만 보고 왔는데 60점은 그냥 넘던걸요? 어려운 시험 아니에요.'
인터넷에 적혀있던 글을 쓴 이를 잡아오고 싶었다.
그래도 한두 개 시험문제가 기출문제로 나와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기괴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식중독, 식품위생법, 공중보건.'
아뿔싸.. 답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좌절보단 제왕절개 전신마취자였기에 두뇌 세포가 많이 퇴화되었다고 자기 위안을 삼고 찍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 30분이 지났을 때, 스물 안팎의 간지 나는 젊은이들이 답지를 내곤 시험장을 유유히 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이 부러웠다.
함께 간 언니와 나는 시험시간을 꽉 채워 찍신님께 마지막 기도를 올리며 시험지를 제출했다.
너무 안일하게 시험을 대비한 나를 자책하며 필기구를 정비하는데 옆자리에 돋보기를 챙기는 어르신과 눈을 마주하였다.
그녀는 예쁜 실 뜨개가방에 필기구와 소지품을 담으며 내게 말을 했다.
"한창 젊어서 좋겠어요."
그제야 주변의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뻘의 어른들과 더 윗 나이의 어르신들이 자리를 정비하며 밖으로 나가고 계셨다.
서른 명 가까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젊은이였다.
이 세계는... 이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무엇보다 이 필기시험 붙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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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쉽대, 한식조리사 도전기
01
누구냐? 공부 안 해도 붙는다고?
02
스테인리스 테이블의 온도
03
칼의 노래
04
계란물의 역할
05
비나이다 북어보푸라기
누가 쉽대, 한식조리사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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