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테이블의 온도

[한식조리사] 제2장 안전규칙

by stamping ink

나의 첫 번째 필기시험은 노력하지 않은 이에 처참한 대가를 보기 좋게 보여주었다.

시험 전 숭배했던 찍신은 얄팍한 신앙을 간파하였다.

신의 응답은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간절했던 요행은 노력을 하라는 응답으로 다시 도전의 길을 걸었다.

60점을 우습게 본 나를 탓하고 기본문제부터 기출문제까지 준비하여 당당히 합격점수를 넘겨주었다.

이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것은 같이 공부를 시작한 딸아이 유치원 엄마인 별이 엄마에게 돌렸다.

"별이 언니~ 같이 두 번째에 붙어서 다행이야."

그녀도 첫 시험에 의리 있게 함께 떨어져 준 것에 감사함을 공개한 지금 그녀의 역정이 눈앞에 선하다.


우리는 필기시험 전우이자 실기시험장에 투입될 전사였다.

필기시험을 어찌 넘겼다지만 실기까지 둘의 힘으로 넘어설 수는 없었다.

우리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로 했다.


"00 요리학원"

학창 시절 이후로 주 5일을 매일 4시간을 소요하며 학원에 출석을 해야 했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 하원 전까지 돌아올 수 있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첫날 수업엔 준비물은 예의상 필기구라 생각하고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가방을 챙겼다.


학원 건물 앞에 다다르자 오랜 경험과 높은 취업률이라는 위상이 넘쳐나는 플래카드가 건물에 나풀거렸다.

학원 로비엔 수많은 트로피와 상장, 메달 등이 나를 실기시험에 붙여줄 거라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습장 유리문을 열었다. 실내에는 조리대와 개수대가 환영하듯 반짝이며 우리를 반겼다.

은색 빛나는 스테인리스 테이블엔 네 명이 한 조로 세팅이 되어있었다.

테이블 수를 세어보니 어름 잡아 40명 즈음은 함께 수업을 할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별이 엄마와 자리를 잡고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니 스테인리스 테이블이 소스라치게 차가웠다.

움찔거릴 틈도 없이 수업 시종이 울렸다.

통통한 풍채의 원장직을 가진 여자와 칼 단발에 붉은 입술의 날카로운 눈매의 강사가 칠판 앞 학생 쪽으로 배치된 조리대 앞에 섰다.

학교나 학원이나 같았다.

칼 단발 강사의 소개로 학원장이 학원에 대한 내역과 우리에 대한 포부를 밝히고 자리를 떠났고 마이크를 건네받은 강사는 첫날 수업을 강행한다고 말했다.

"어색하시겠지만 금방 친해지실 겁니다."


이내 그녀는 분필을 들어 안전사고에 대한 내용을 가르쳐주었다.

불 사용하는 방법, 손을 데거나 칼에 베이는 경우 등등 이곳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절대 뛰지 마시고 차분히 강사의 말에 따라 주시면 됩니다."

칼 단발의 그녀는 군인처럼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분위기를 제압했다.

모두 침 삼키기도 어려운 시간이 지났다.

"첫날은 이렇게 안전사고에 대한 안내 수업으로 마치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본 교육이 실시될 예정이니 오늘 배우신 내용 숙지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90도 되는 인사로 칼 단발 강사는 자리를 떠나갔다.


"어휴. 오줌 마렵다고 말도 못 했네."

의자 밀어 넣는 소리와 여기저기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히 가세요."

누군가 크게 인사를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인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하교, 퇴근, 강의시간 끝... 오랜만에 느끼는 마무리라는 마침표의 즐거움을 느꼈다.

서먹함 대신 또래끼리 친분을 쌓으며 삼삼오오 실습실을 벗어났다.


훗날 종강이 다가와 회식자리에서 칼 단발 강사에게 물었다.

"첫날 안 어울리시게 왜 이렇게 무섭게 대하신 거예요?"

우리의 질문에 입술만큼 눈시울 붉어진 강사가 입을 떼었다.

"여긴 사고가 잦은 곳이라 처음부터 마음이 풀어지면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어쩐지 지금 우리가 아는 선생님이랑 너무 달라서 첨에 얼마나 졸았다고요."

"아마 다음에 또 다른 수업이 개설돼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그렇게 할 거예요. 누가 다치는 건 싫으니까요."

차가운 스테인리스보다 따스한 곳이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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