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한식조리사] 제3장 숨은 고수

by stamping ink

학창 시절 위생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삼십 년 전 과거에 중고등 시절을 겪은 이들 중에는 경험해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시점검이던 위생검사는 대비하지 못한 채 '왜? 하필? 오늘?'만 탓하는 시간이었다.

위생검사의 날에는 아이들은 모두 책상 옆에 선채로 감독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선생님은 타슬이 달린 기다랗고 둥근 뿔 모양의 지휘봉을 어깨에 걸고 나타났다.

지휘봉이 하늘을 가르며 손톱 길이와 여학생의 두발 길이, 와이셔츠 칼라 깃의 청결상태 등을 짚어댔다.

우리는 청결을 강요당했지만 그 시절 몸에 베인 손수건 습관이나 손톱 짧게 깎기 훈련은 익숙하게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리를 위한 수강생은 학창 시절의 학생만큼 청결을 유지해야 했다.

수강생들은 교복을 입듯 공동으로 흰색 요리복을 구매해 입었다.

동그란 매듭이 더블 단추처럼 달려 있었고 하얀 앞치마는 펼쳐 둘러 입고 허리춤에 예쁜 리본으로 묶어 마무리했다.

유니폼을 입으면 마음가짐이 불타올랐다.


같은 유니폼 아래에서도 우등생과 열등생이 나타났다.

교육실습장도 돋보이는 우등생과 열등생이 있었다.


암묵적 열등생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어린 나이의 남자아이였다.

실습실의 몇 안 되는 남자들 중에 제일 어리고 수강생 중에서도 막내였다.

녀석은 잠이 많아 지각이 일수였고 매일 입어 익숙해져 가는 실습복의 매무새도 매번 지적 대상이었다.

누이 같은 마음으로 나와 별이 엄마를 비롯해 엄마 또래의 이모님들까지 녀석을 챙겨 함께했다.


그 녀석과는 상반되게 우등생, 아니 의욕과다에 나서기 대장 우등생이 있었다.

50대의 그녀는 실습복을 칼로 베일듯한 주름을 잡아왔고 머리도 언제나 단정하게 묶어 올렸다.

특히 그녀의 열의가 돋보이던 날은 그녀가 남편이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며 사다 준 칼을 꺼낸 날이었다.

칼을 담은 가방은 영화 007 가방에서 총기구를 조립하는 가방처럼 화려했다.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명인의 이름을 새긴 각인도 있었다.


실습 요리에 앞서 간단히 채 썰기와 야채 다듬기를 배우는 과정이었는데 그녀는 자신만의 칼을 꺼내 들었다.

실습실에 있는 칼은 허름하고 날이 잘 서지 않아 개인적으로 자신의 조리도구를 하나씩 구비하고 있던 때였다.

시범을 위해 우등생의 칼을 잠시 잡아본 강사마저도 절삭력에 칭송을 했다.


"이렇게 다듬으시면 됩니다. 모두 2미리 간격으로 채를 썰어보세요."

우등생은 칼 가방에서 멋진 칼을 골라 당근을 채썰기 시작했다.

옆자리 열등생은 다른 실습생이 앞다투어 실습생용 칼을 가져버려서 당근만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이거 써."

채를 썰던 실습생들은 우등생이 열등생에게 자신의 칼 중 하나를 빌려주는 것을 보았다.

반짝이며 손잡이의 원목 결이 흐르는 멋진 칼이었다.

그 순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저거... 저 아이 손에 칼이 망가지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물론 우등생도 같은 마음인지 조심해서 쓰라는 말을 쉬지 않고 열등생에게 퍼부었다.

"이거 칼이 아주 날카로워. 칼질이란 말이지 너무 힘을 주면 안 되거든. 모양이 예쁘려면 간격도 잘 잡아야 해. 내가 썰듯이 이렇게 힘을 주고 썰면 되니까 천천히 해봐."

우등생은 자신이 시범을 보이며 칼질보다 조심하란 말을 더 많이 했다.


"촥촥촥"

열등생 손에서 칼이 춤을 추었다.

그의 신기에 가까운 칼질에 모두 놀랐고 강사 역시 그의 솜씨에 대단하다는 칭찬을 하자 모두 그 자리로 몰려들었다.

열등생은 가지런하고 얇은 채를 쉬지 않고 만들었다.

우등생의 손의 같은 칼이 썰어낸 당근과는 격이 달랐다.


"저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해봤거든요. 양파 당근 많이 썰어봤어요."

열등생이 고수 같은 실력의 이유를 알려주자 모두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다.

"칼이 임자를 만났네.. 칼이 노래를 부르는데? 싹싹싹 하고..."

우등생은 그 날이후로 일본에서 건너온 각인 새긴 칼을 더 이상 가져오지 않았다.

이전 02화스테인리스 테이블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