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이, 내가 보기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휘어짐에 보답하듯 나도 고개를 꺾는다
고여가는 피를 의식할 무렵,
"78 쯤 되려나?"
그러곤 포근하면서도 무거운 손이 어깨를 주무른다
탑을 촘촘히 이루는 아치 하나가 78cm인 건가 시야를 가리는 회랑의 아치가 78m인 건가 내 어깨 근육이 78mm인 건가
오른쪽 어깨가 풀릴수록 뭉친 왼쪽 어깨가 선명해진다
지금 벌떡 일어선다면 손이 나를 놓칠 터요 사탑의 꼭대기만이라도 눈에 담을 방법이 생각날 것 같기도 한데
어째 회랑을 못 벗어날듯하며 하찮은 미동마저 나를 드리운 이를 언짢게 할 듯하다
따라서 나는 목을 꺾은 채, 소외된 어깨의 눈치를 보며, 철장에 갇힌 사탑을, 계속 바라본다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