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보면, 내 마음이 보인다
"산책하러 나갈까?"
일상에 지친 인간을 강아지로 만드는 제안이죠. 그렇게 우리는 점심 식사 후 짧은 시간이나마 햇살을 즐기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소화를 겸해 밤공기를 마시곤 합니다. 썸을 타는 연인이 술자리를 마친 후 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 길이 좀 더 좋네”, “이 동네 산책이 마음에 드네”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분명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인데도, 현대 사회는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그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채 금세 ‘다음’을 생각합니다.
조경은 예술이자 기술이며, 과학적 사실 위에 인문학적 통찰을 더한다. p.35
산책만 그럴까요?
우리는 삶의 여러 장면에서 앞뒤가 바뀐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기 전에 연봉을 기준으로 직장을 고르고,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고민하기도 전에 부동산 시세부터 따집니다. 그러는 사이 부동산은 어느새 투기의 동의어가 되어버렸고요.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바쁘게 걷고, 앉고, 소비합니다. 어떤 감정들이 묻었는지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우리의 일상에는 그에 걸맞는 도시의 경관이 자리합니다. 유럽 도시의 어딘가를 따와서 만들었다는 그 장소는, 이름만 “OO시떼”, “ㅁㅁ르네”일 뿐,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거북함으로 가득합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만들어서, 결국 양쪽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공간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입니다.
현대 도시는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화려한 간판과 전광판이 눈을 자극하지만... 그러나 도시 경험은 결코 한 가지 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공간은 언제나 다중감각적 층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p.119
<조경, 가까운 자연> 은 바로 그 순간들을 다루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지만, 분명 무언가를 느꼈던 그 기분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냅니다. 매일 지나는 길인데도 어딘가 어색하고, 무언가 불편하게 바뀐 그 장소가 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핫하다고 해서 찾아간 공간이 어떤 요소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더 머물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지 차근히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 주는 듯한 묘한 위로이자 발견의 경험이 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가 끌리는 장소에는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하는 공간에는 피하고 싶은 삶의 방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조경은 외부 환경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시의 회복은 기억의 형성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오늘 길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 공원 벤치에서 느낀 계절의 전환, 이웃과 나눈 대화. 이 일상적 순간들이 도시의 기억을 만들고, 미래의 회복력을 키운다. p. 271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산책은 다른 개념이 됩니다.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발견하는 시간이 됩니다. 부동산이 아니라 장소를, 투자가 아니라 삶을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한강으로부터 얼마나 가깝냐보다 내 마음에 얼마나 들어오느냐를 묻게 되죠.
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조경, 가까운 자연>은 그 질문에 답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일상에서 느꼈던 미세한 감정들을 정확하게 포착해 쉽고 담백하게 풀어내니까요. 그래서 무심히 지나쳤던 내 마음,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해줍니다.
읽는 동안, 가만히 내 안쪽에서 작게 일렁이던 감정들과 비로소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도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더 나은 삶을 꿈꾼다 p.39